어느 날 낯 모르는 고양이가 나의 집 베란다를 차지하고 앉았다. 재활용할 종이들만 모아 담으려고 종이 상자를 베란다에 놓아두었는데, 어느 날 밤 택배를 풀고 난 박스를 담으려 나갔다가 화들짝 놀랐다. 상자 안에 고양이가 들어가 있었다. 저녁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어느새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상자가 그리 크지도 않다. 폭이 좁아서 종이를 담아 내놓기에 좋아서 둔 것이었는데 고양이가 제자리인 양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으니 나는 들고나간 박스를 담지 못하고 다시 들고 들어왔다.
그런데 고양이 한 마리가 아니었다. 어미 고양이였다. 어디서 새끼를 낳았는지 모르겠지만 새끼들을 데리고 집을 찾았었나 보다. 새끼를 낳은 지도 며칠 안 된 것 같았다. 보통은 사람을 피해 달아나는 들고양이가 사람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종이 박스 안이 안전하게 보였나? 그런데 나는 어쩌나, 저 고양이들을 계속 책임져줄 수 없을 것 같은데, 하는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쟤네들을 모른척할 수도 없고. 새끼가 있어 곁을 꼭 지키고 있는 어미가 물은 어떻게 먹고 먹이는 어디서 구할 것이지, 자꾸 신경이 쓰여 우선 물을 그릇에 담아 들고나갔다. 천천히, 조용히 다가갔음에도 어미가 온통 날을 세우고 하악거리며 나를 심하게 경계했다. 겁을 주고 싶지 않아 멀찍이 물그릇을 놓아두었다.
새끼를 낳은 어미이면 잘 먹어야 할 텐데 내게는 고양이 줄 만한 음식이 없었다. 넌 네 새끼들 어미지만 난 네 어미도 아닌데 너 먹을 걸 걱정하고 있다. 결국 고양이 줄 사료와 참치, 닭가슴살 캔을 사 오고 말았다. 사료와 참치를 섞어서 담은 그릇을 들고나갔다. 역시 나를 경계하며 위협한다. 야옹아, 여긴 네 집이 아니고 내 집이라고! 엄밀히 말하면 네가 들어앉은 그 상자도 내 거라고! 제 집인 양 구는 고양이에게 물그릇 옆에 사료 그릇을 밀어 놓고 들어왔다.
고양이가 들어온 지 이틀이 지난 날 하늘은 잿빛으로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일기예보도 그렇고 비가 많이 올 것 같은데 어찌 된 영문인지 고양이 집이 처마가 없는 곳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옮겨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미가 들어앉아 있어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아니다 다를까 비가 오기 시작했다. 종이 상자는 눅눅하게 젖으면서 형태를 잃고 고양이집이 무너져 버렸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 고양이를 보호하느라 몸으로 품고 비를 맞고 있었다. 처마 밑으로 들어오면 비를 피할 수 있을 텐데 왜 베란다 모퉁이에서 꼼짝 않고 비를 맞고 있는 건지. 어찌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집이 될 만한 옷상자를 꺼내 부드러운 방석을 깔고 베란다에 놓아주었다. 그런데 고양이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여전히 비를 맞고 있었다. 방석을 보니 고양이 발자국이 묻어 있긴 한데 내 손을 거친 집이라 사람 냄새가 났나 보다. 그래서 그 집을 치우고 고양이가 편히 들어갈 만한 크기의 종이 상자를 놓아두었다. 그랬더니 어미와 새끼들이 상자로 들어갔다. 다행이다 싶어 나도 좀 안심이 되었다.
다음 날 간식을 주려 나갔더니 어미가 자리를 비웠다. 화장실에 간 모양이다. 고양이는 자는 곳, 먹는 곳, 배변하는 곳을 따로 두는 깨끗한 동물이라고 하니까. 웬만한 사람보다 더 깔끔하게 사는 것 같다. 어미가 화장실을 간 덕에 나는 그제야 새끼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어미 고양이가 언제 올지 눈치를 보면서 말이다. 모두 네 마리이다! 새끼들이 눈도 뜨지 못한 채 꼬물꼬물 움직이며 서로 포개어져 있었다. 맹수이든 야생 동물이든 새끼들은 모두 귀엽고 소중한 존재들인 것 같다.
고양이에게 물과 먹이를 주고, 간식을 줄 때도 겁먹지 않게 하려 눈치를 보며 준다. 베란다를 나갈 때마다 졸지에 눈치 밥을 먹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어미도 먹을 걸 챙겨주는 나에게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나를 봐도 늘어지게 누워있다. 심지어 내가 서서 새끼들을 보고 있어도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다. 손바닥만 하던 새끼들이 좀 자랐다. 어떤 애는 눈을 뜨고, 어떤 애는 한쪽 눈만 떴다.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아기 고양이들. 좀 더 좋은 집을 놓아주고 싶지만 내가 건드리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될까 봐 막상 하지는 않는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제멋대로 나의 집에 찾아든 고양이 손님. 손님은 손님이니 손님 대접을 해야 할 것 같다. 배고프지 않게 줄 테니 잘 먹고 튼튼하게 잘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