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해무익한 감정

by YS

분노는 몸이나 마음의 어떤 곳에도 위치하지 않는다. 분노는 허공에 부는 바람과 같다. 치밀어 오르는 생각에 매여 그 노예가 되지 말고, 그 생각들의 본질이 텅 비었음을 깨달으라!

- 딜고 켄체 린포체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는 가능한 한 어떠한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유가 궁금한가? 일단 화가 나면 그 순간에는 어떤 짓이라도 하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 세네카

따뜻한 햇살이 밝게 빛나던 봄을 나는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하지 못했다. 마음이 어두웠다.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계절, 엄마와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갈 일이 많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로. 엄마의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결혼 얘기를 꺼냈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친구도 잘 못 사귀고 결혼도 못하고 성격이 이상해서 그렇다며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에 순간 화가 났다. 뭐 저런 이상한 논리가 있나. 결혼 안 하고 혼자 살면 성격이 이상한 사람인가? 게다가 병원 모시고 왔다 갔다 하는 내게 꼭 저런 말을 해야 하나? 화가 나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엄마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샐쭉한 마음이 금방 풀어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말일 수도 있다. 만약 이것이 내 친구의 일이기만 하더라도 ‘나이 드신 어른들의 생각이 그렇지, 뭐’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나고 또 생각나면 또 화가 나고 그랬는지 모른다.

처음에 나는 그렇게 말한 엄마가 잘못이라고 엄마 탓을 했다. 남 탓을 하니 화가 풀어질 리 없다. 달라이 라마는 나를 화나게 하거나 고통이나 시련을 주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면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했다. 시련을 통해 인격 수양을 하고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니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이 감정에 치우치면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감정을 상하게 했던 작은 일에만 몰두해서 시야도 좁아져 폭넓게 생각하지 못하고 마음은 더 옹졸해진다. 나도 내 감정을 다스리려 노력했지만 마음대로 되진 않았다. 친구에게 엄마는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나를 이해해 주고 “나도 혼자 사니까 성격 이상한 사람이네. 하하”하며 맞장구를 쳐 주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고 나니 기분도 좀 풀어졌다. 마음이 무거워질 때 이야기를 함으로써 감정의 무게를 좀 덜어낼 필요가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적정 선을 지켜야 하는 것도 맞다. 화라는 감정은 화를 낸다고 해서 풀어지거나 사그라들지 않는다. 화는 마치 불과 같아서 감정에 불을 붙여 주면 더 격렬해져서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화가 났을 때 하는 말은 통제할 수 없고 격해지기 마련이라 결국 남는 건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한 후회뿐이다.

나 역시 하소연한답시고 감정을 토로하고 말을 쏟아냈지만 당연하게도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친구이니까 들어주는 거지. 말을 하면서 감정이 고조되어 말과 어휘가 평소보다 과격해졌다. 지나고 나니 이런 나의 모습이 참으로 못마땅하고, ‘그러지 말 걸……’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내 말을 들어준 친구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뭐 듣기 좋은 말이라고. 화가 났을 때 하는 말이나 행동은 좋을 것이 하나 없다. 누구에게도 이로운 것이 없다. 아니, 화를 다스리고 자신을 돌아보고 평정을 찾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나는 후회할 일을 저지르고 나서야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지금은 엄마가 했던 말이 아무렇지도 않다. 나이 드신 분의 관점이 나와 다른 것뿐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비난할 일도 아니고 말이다. 엄마의 입장을 고려해 보면,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니 그렇게 못할 말도 아닌 것 같다. 우리도 모두 올바른 말만 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나쁜 의도 없이 말을 툭 내뱉는 경우들이 있지 않은가?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말이 별것으로 들린 건 결국은 내 탓인 것 같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나의 심리적 상태는 평온하지 못했다. 삶에 대한 걱정과 불안, 자책, 여러 감정들로 마음이 차분하지 못하고 서성서성 부유하듯 집중력을 잃었던 상태였으니까. 마음이 취약한 상태라서 엄마의 말이 더 화살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화가 나는 모든 원인은 내 안에 있다고 한 달라이 라마의 말씀이 맞는 것인가?

불교 수행자들은 일부러 감정을 자극하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고 한다. 사원에 들어가 몇 년씩 수행을 해서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수행자에게 기분이 상할 말을 건네면 버럭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나는 한낱 범속한 인간이라 경지에 이른 수행자들을 따라가기는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실수를 또 하고 또 하는 한이 있더라도 조금씩 성장하는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다.

이제는 따뜻한 봄날을 지나 여름일 정도로 뜨겁고 화사한 날씨를 즐길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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