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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화양연화

김종학, 만개한 상처의 풍경을 그리다

75세의 엄마는 눈을 천천히 껌뻑 거리며 말했다. “현아, 너는 너고 나는 나야.” 암을 떼어내고 독한 항암제를 투여했지만 사라졌던 암은 다른 장기에서 재발을 했다. 기존 항암제에는 내성이 생겨 매번 약을 바꿔야 했고 거듭 바꾸다 보니 더 이상 바꿀 약이 없어진 최악을 견디고 있던 엄마였다. 의사는 많이 힘들 거라고 했지만 단 한 번도 엄살을 부리지 않고 다 괜찮다고 하던 엄마의 숨이 흐릿해지고 있음을 나도 엄마도 느끼고 있었다. 엄마가 죽는 건 내가 죽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옆에 붙어있는 막내딸에게 우리 엄마라는 사람은 저런 말을 하고 만다. 저 말인즉슨, “네가 아무리 슬퍼도 나는 죽는다. 그러니 엄마만 챙기지 말고 너무 슬퍼만 말고 현실적인 생각도 하고 너의 생활도 하고 너의 앞날도 챙겨라. 그게 엄마를 위하는 거야.” 이 말이었다.

암인 줄 모르고 처음 병원에 가실 때는 ‘귀찮으니 따라오지 말라’며 내치다가 암이라는 걸 알고 겁이 난 엄마는 아이처럼 내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종일 나를 불러서 이런 증상이 있고 저런 증상이 있다고 줄줄이 말하고 나의 보살핌을 순순히 받으셨다. 희한하게도 엄마가 내게 의지할수록 그동안 엄마에게 섭섭했던 자잘한 마음들은 무효가 되었다. 엄마의 꺼멓고 착한 눈에 가득하던 두려움은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엄마를 부른 만큼 엄마가 나를 불렀다. 그렇게, 병원 서류 보호자 란에 내 이름이 적혔던 날들도 이제 모두 과거지사가 되고 말았다. 벌써 수년이 흘렀고 엄마가 내 깊은 사랑을 충분히 느끼고 가신 것만은 지금도 그나마 유일한 위로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라는 말은 아직까지도, 자식의 깊은 사랑을 느낀 사람의 대답으로서만 유효할 뿐이지 동의할 수는 없는 말이다. 엄마와 딸의 인연은 돌아가시고 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학 화백이 밝힌 그의 개인사에는 달리 가슴 아픈 장면이 있다. 그가 44세이던 어느 날, 아

내로부터 이혼을 통보받고 아내와 딸과 아들이 있는 집에서 자신의 짐을 챙겨 홀로 트럭을 타고 설악산으로 떠나는 장면이다. 이 날, 어른들의 사정을 잘 모르는 꼬마이던 화백님의 딸은 아빠의 슬픈 표정을 보고 가지고 있던 주머니 돈으로 비누랑 샴푸를 사서 아빠에게 건넸다고 한다. 아빠의 눈과 딸의 눈이 서로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이 순간에 김종학 화백의 깊은 상처는 먼 훗날의 '만개'를 준비하지 않았을까 짐작을 해 본다. ‘그때 문간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네 모습과 눈빛을 영원히 잊지 않았고 참으로 고마웠다’고 지금은 세계적인 화백이 된 그는 말하고 있다. 설악산의 텅 빈 집에서 심수봉 노래를 틀어놓고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버림받은 실패한 가장의 마음속에 100장의 훌륭한 그림을 남기겠다는 다짐이 새겨지는 대목이다. 설악산의 다양한 모습을 기세등등하고 원시적인 색채로 표현하는 화가라는 공식적인 성취는 이렇게 한없이 쓸쓸한 독거로부터 시작되었다.   


 설악에 온 김종학은 김종학의 길을 갔고 붓은 붓의 길을 갔다. 붓가는 대로 그린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그의 그림은 보여준다. 스케치도 없이 머릿속에 맺힌 설악의 풍광을 일필휘지처럼 갈겨서 그린다.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다는 듯이, 과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듯이 땅에 뿌리를 박고 정명을 다 할 때까지 햇빛을 받고 바람에 흔들리고 비와 눈을 맞아가며 꽃을 피우고 벌레에게 빨리는 들꽃과 풀들의 생명력을 그려내면서 그의 깊은 슬픔도 꽃처럼 만개했다가 노을처럼 지는 나날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박꽃의 수줍음도 달맞이꽃의 소박함도 목련의 관능도 호박꽃의 무심함도 맨드라미의 뻔뻔함도 복숭아꽃의 심드렁함도 나팔꽃의 화려함도 엉겅퀴의 발랄함도 모두 깊은 뿌리를 딛고 하늘에 고개를 쳐들어 흐드러졌다가 어느 달밤 고개를 숙이는 일을 무한반복 하였고 그 곁에서 화백도 어느 날은 화폭 위를 날아가고 어느 날은 괴로운 대로 하루하루를 쌓아나갔다.

 그는 설악시절부터 추상을 버리고 야화와 소나무, 바다 등 구체적인 대상을 그렸지만 생김새를 그린 것이 아니라 유한한 존재들의 무한한 생명에너지를 그려나가며 거칠고 아름다운 파동을 완성해 나갔다. 캔버스를 뚫고 나온 것은 원시적인 생명의 기운들과그리운 딸과 아들에 대한 애틋한 붓질이었다.

내가 본 엄마의 눈빛과 김종학이 기억하는 딸의 눈빛이 각자의 꿈속에서 같은 파장으로 흔들렸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보며 모르는 화가로부터 받은 선물치고는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초연결시대임에도 진정으로 연결되기란 아주 힘들다는 것을 매번 느끼는데 놀랍게도 산기슭에서 온 몸에 물감을 묻히고 사는 초로의 노인에게 속절없이 연결되고 말았다.  눈물로 이어진 마음들을 애지중지 해야겠다.

김종학은 미술계에 이중섭과 박수근의 가치에 대해 거듭 말했고 장욱진을 섬겼으며 이념을 중시하는 시대의 화조를 따랐다가 인생의 풍파를 견디는 시간 동안 남이 가지 않은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간 화백이며 무엇보다 사랑이 가득한 아버지이다. 거대한 벽 같은 캔버스를 혼자 힘으로 감당해 내는 그의 화실에 아직 그리지 않은 그림들이 가득 그려지기를...더 많은 캔버스를 원도 한도 없이 채워나가시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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