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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 Jul 02. 2022

밑져야 본전! 내 인생 실험의 첫 과제는 책 읽기다

내가 읽은 책이 나의 우주다. -장석주-

37살이었던 과거의 어느 날, 독서에 대한 동경을 간직하고 있던 나는 문득 지금까지 제대로 된 독서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20대, 30대 초반만 해도 나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는 알량한 자부심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거나 책 읽기를 거부했던 것 같다. 급기야 30대 중반에는 책을 읽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난독증인가 보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우선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의 결론밖에 얻을 수 없었다. '나는 아는 것이 없다'라는 사실이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인정하는 수밖에... 직장 내 업무 수행에 필요한 매뉴얼만 숙지하고 있을 뿐 이 넓은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은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부끄럽지만 이렇게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후 나는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렇게 독서를 한지 이제 8년 차가 되었다.


무미건조했던 내 삶은 지금 완벽하게 변했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이 찬란하다.




( 도전을 시작하다 )


책을 읽기 전의 나의 모습은 한심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 갈 준비를 한다. 오전에 아이들과 씨름하며 아등바등 준비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간다. 가는 내내 일 생각이다. 오늘 할 일은 무엇인지, 팀장님께 어떤 보고를 해야 할지 생각하다 보면 직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덧 퇴근시간이다. 눈치를 보며 가방을 싸들고 부리나케 집으로 향한다. 아이들 숙제 챙길게 뭐가 있는지, 혹시나 학교 알리미에 뜬 내용이 없는지 스마트폰으로 확인한다. 가끔 지하철에서 여유를 부리고 싶을 때면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쇼핑몰 사이트를 둘러본다. 눈에 띄는 제품이 있는지 찾다 보면, 어느새 집 앞 지하철역에 도착!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내일 회사에서 무엇을 할지 살짝 고민을 해다가 잠자리에 든다.


무미건조하다. 집, 회사 밖에 소속된 게 없다. 내 머릿속은 집안일과 회사일로 가득 차 있다. 매일이 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남편에게 여행을 가자고 한다. 그나마 여행이 이 무미건조한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이벤트다. 여행이 없으면 일상을 버텨나갈 동기가 그때는 없었다.


힘들긴 하지만 여행은 좋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면 또 재미없는 삶은 계속된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이다 보니 삶은 안정적이다. 만 60세까지 이런 삶이 지속되겠지.. 아니다.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다. 그래서 그랬다. 내가 너무 한심하다. 그래서 그랬다. 실험이 필요했다. 내 삶에 관한 실험.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장기 실험을 한번 해보자. 실패해도 어차피  무미건조한 삶인데, 밑져야 본전이다. 내 인생 실험의 첫 과제는 책 읽기다.




( 우왕좌왕하다 ) 


어떤 책을 읽을지, 어디서 읽을지, 언제 읽을지 영 감이 오지 않는다. 독서를 하자고 다짐했지만 한동안 우왕좌왕했다. 도서관 혹은 서점에 가면 멀미가 났다. 어마어마한 책들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진다. 나는 작아지고 책장은 점점 커져 나를 압도하는 장면이 항상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호흡이 가빠지고 숨을 쉴 수가 없다. 책을 한 권 빼 들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책을 주문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내 돈을 주고 사는 책이니만큼 실패하면 안 된다. 그러니 내용은 재밌고 교훈도 있어야 하고, 소장을 하기 위해서 디자인도 이뻐야 하고... 아이고 머리야. 책을 사는 게 이리도 어렵다.


서점에서 책 사길 포기 했다. 그냥 욕심부리지 말자. 회사에서 자그마하게 운영하는 도서관이 있다. 소장 중인 책이 매우 적다. 좌우 약 4m 남짓 되는 공간에는 책장들과 사서의 책상이 다다. 책장의 대부분은 2010년 이전의 책이다. 하물며 1900년대 책들도 상당하다. 그나마 한 달에 한 번씩 직원들로부터 신청을 받아서 책을 구매하는데, 그 책들이 한쪽 책장에 모여있다. 도서관 안에서 가장 최신 책들이다. 그 공간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했다. 나를 위협하는 책장과 넘쳐나는 책이 없다.


책을 3권 골랐다. 도서 상태가 멀쩡하고 최근에 구입된 것으로 보이는 책들,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데일 카네기 <인간 관계론>, 그리고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 책들을 고른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콤플렉스와 관련이 있다. 재미없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나는 말을 잘하고 싶었고,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는 모습을 극복하고 싶었고, 책을 읽겠다고 다짐했으니 독서에 관한 책 한 권쯤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책은 무엇보다 제목이 맘에 들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고..


그런데 진짜 난독증인가 보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딴생각이다. '오늘 주문한 원피스가 어디까지 왔을까?', '아 맞다. 딸아이 준비물 사러 문구점에 가야 하는구나', '오늘 저녁은 뭘 먹지?' 그냥 책 읽기를 포기할까?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짓을 하는 건지. 우리 집엔 책 읽을 공간도 없다. 30평대 아파트에 맞벌이 부부와 초등생 딸아이, 유치원생 아들 그리고 아이들을 봐주는 우리 엄마. 작은방 하나는 엄마에게 내드렸고, 안방은 4명이 잠자는 방, 그리고 나머지 방 하나는 초등생 딸아이의 공부 방이다. 이 방은 드레스룸 행거가 있어 옷방을 겸하는 복합적인 공간이다. 유일하게 있는 책상 하나가 딸아이 방에 있다. 그래서 딸이 잠들고 나면 그 책상을 그나마 쓸 수 있는데, 이 또한 남편과 경쟁이다.


그냥 책을 읽지 말아야겠다. 음.. 아니다. 작정을 했으니 뭐가 되든 한번 제대로 시작은 해보자.




( 한 권 두 권.. 책을 읽다 )


남편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냥 혼자 짬짬이 책을 읽었다. 식구가 다 잠든 밤에 딸아이의 책상에서 책을 읽고, 엄마가 지방에 내려가시는 주말에는 엄마방에서 몰래몰래 책을 읽었다.


작정하고 책을 읽으니 의외로 재미있다.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는 말하기에 관한 조언으로 가득했다. 게다가 강사인 그녀의 대단함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도 내가 간과하고 있던 인관관계에 관한 좋은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고전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인류 역사 속 천재들의 사고 혁명을 이루는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독서에 대한 열의를 불러일으켰다. 이 책을 덮었을 때의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책이다.


그렇게 나의 책 읽기는 시작되었다. 다음에 읽을 책을 고르는  어렵지 않았다. 한 권의 책을 재미있게 읽고 나면 다음으로 읽고 싶은 책들이 줄을 이었다. 책 내용에 소개된 책일 수도 있고, 해당 작가의 또 다른 책이 될 수도 있고, 동일한 주제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도 좋은 후보다. 점점 “읽고 싶은 책” 목록은 쌓여만 갔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시간이 짧음을 아쉬워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다 )


곧바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책은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내용이 없다. 큰 줄거리도 생각나지 않는다. 속은 기분이다. 나 자신에게 속은 느낌. 책을 읽는 동안 그렇게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었는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다니. 목차를 다시 살펴보고 책장을 스르르 넘겨보았다. 책 목차를 보니, 내가 읽은 내용이 기억났고 혹시나 밑줄을 친 경우, 그 밑줄을 칠 때의 기분과 느낌이 다시 떠올랐다.


만약 내가 다시 목차를 들쳐보거나 밑줄을 다시 챙겨보지 않았다면 아마 기억의 저편에 간당간당 달려있다가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릴 것들. 억울했다. 몇 시간, 며칠을 두고 읽었는데 남는 게 없다니. 다시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필사와 서평이었다.


큰맘 먹고 시작한 도전이니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되겠다. '필사'와 '서평'을 해보기로 했다. 필사는 어디에 쓸 것이며, 서평은 어디에 남길 것인가? 고민이다. 큰 연습장을 샀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에 몰래 책상에 앉아 필사를 했다. 책장을 넘기며 맘에 든 문장을 하나하나 베껴 적었다. 내용이 상당하다. 몇 시간을 들여 다 쓰고 나니 팔이 아팠다. 그런데 연습장에 쓴 것들을 바라보니 다시 펼쳐볼 것 같지 다. 계속 숨어서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실패다. 이 방법이 아니다.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문득 블로그에 글을 남겨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들이 혹시나 나의 글을 보고 험담하거나(아직 남의 시선이 무지 신경 쓰이던 시절이었다) 내 이야기를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까.. 고민이 한두 개가 아니다. 불현듯 새로운 계정으로 블로그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아이디는 스스로에게 의미 있을만한 것으로 만들고 네이버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철저하게 익명을 유지하며 독서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오래된 나의 고민은 블로그로 해결되었다.




( 안정적인 책 읽기 습관을 들이다 )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다. 책을 읽는 동안 스멀스멀 올라오는 영감이나 생각들은 스마트폰 메모 앱에 기록한다. 책에 그은 밑줄과 메모해둔 내 생각을 추리고 정리하여 블로그에 기록한다.


(1) 책 읽기 -> (2) 밑줄 긋기, 생각 기록 -> (3) 블로그에 독서기록 남기기

이 세 가지 활동이 완성되지 않으면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다. 특히 독서기록이 가장 중요한 단계다. 책은 대충 읽을 수 있지만, 독서기록은 대충 할 수가 없다. 책은 읽었으나 기록을 남기지 못한 책이 있을 경우엔 불안하다. 그만큼 독서기록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활동이 되었다.


나는 이제 이 루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경, 아닌 경지에 이르렀다. 안정적인 책 읽기 습관을 만들었다. 내 삶에 대한 첫 번째 도전에서 나는 성공했다고 본다. 성공의 여부는 그것이 나의 삶의 루틴으로 자리잡혔느냐에 달렸다. 책 읽기가, 그것도 안정적인 책 읽기 습관이 내 삶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불안했던 내 삶은 이제 하루하루 찬란한 삶을 위한 기본기를 장착한 것이다.




( 내가 읽은 책이 나의 우주다 )


안정적 책 읽기 습관, 그 자체는 달리기를 위해 출발선에 선 것과 다름 아니다. '내가 읽은 책이 나의 우주다'는 장석주 작가님의 책 제목인데, 이 문구가 삶의 진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 우주를 넓히는 활동인 책 읽기. 이제는 콘텐츠에 관심을 두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 출발선에 섰으면 달려야 한다. 그럼 내 우주는 무엇으로 넓힐 것인가. 행복한 고민이다.


몇 년에 걸쳐 읽은 책들이 누적되다 보니 나의 우주를 채우고 싶은 큼직한 주제들이 드러난다. 그것은 내 삶의 화두다. 그것들만 챙겨도 내 삶의 찬란함은 지속될 것이다. 운동, 휴식, 루틴(습관), 여행, 가족, 소통(대화), 공부, 생각, 공감, 자아, 뇌, 감정, 역사, 새벽 기상, 글쓰기 등이 그것이다. 이 주제에 관한 책들만 보면 끌린다. 내 삶에 재미와 의미를 주는 주제들이다.


한 권 한 권 책을 읽을 때마다 나의 우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한다. 최근에 읽은 채사장의 <지대넓얕>, 머리 스타인의 <융의 영혼의 지도>, 그리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데이비드 이글먼의 <더 브레인> 등은 나의 우주를 상식, 심리학, 천문학(혹은 인류학), 뇌과학 영역으로 넓혀주었다. '불교'를 알고 싶어서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 수업>도 구매해서 읽는다. 내 우주가 넓어지는 이 경험, 정말 짜릿한 경험이며 평생 간직하고 싶은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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