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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 Jul 04. 2022

타인의 삶을 경험하며 그들의 감정을 느끼고 성장하다

용숙이 과부가 됨으로써 한실 댁의 첫 꿈은 부서졌다 -김약국의 딸들-

소설을 읽다 보면 수많은 군상들을 만나고 나는 그중 누군가에 이입되어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삶을 산다. 현실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인생이다. 주인공의 행동은 나의 행동이고 그가 느끼는 슬픔은 나의 슬픔이 된다. 신열이 나고 괴로움에 울부짖을 때 내 가슴은 아리고 머리는 혼미해진다.


특히, 고전문학을 읽을 때 이러한 몰입이 잘 일어난다.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이반, 미챠, 알료사, <안나까레리나>의 안나와 레빈, <농담>의 루드비크, 그리고 여자라면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나오는 로제에 가슴 절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국내 소설인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김훈의 <칼의 노래>, 조남주의 <82녀생 김지영>을 읽는 동안 나는 주인공들의 삶을 경험한다.




( 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


이 소설의 배경은 통영의 명정동에 있는 충렬사 주변지역이다. 통영은 나의 고향이다. 어릴 적 초등학생 때 사생대회를 하러 여러 번 들어가 본 적이 있는 충렬사다. 앞 도로에는 통영의 명물 오미사 꿀빵의 본점이 있기도 하다. 바로 그 주변이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이다. 아련하다.


첫 문장이 맘에 든다. 조촐하지만 이 소설을 시작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첫 문장은 없을 것 같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가끔 내 고향이 통영이라고 얘기하면 “근데, 통영이 왜 조선의 나폴리’야”라고 물어오는 친구들이 있다. 그럴 땐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을 읽어보라고 해야겠다.


주인공은 본명 '김성수'인 김약국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3인칭 작가 시점이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시대 배경으로 한다. 통영의 오랜 지주로 살아온 봉제와 봉룡 두 형제. 봉제는 김약국을 운영하는 온화한 성품의 형인 반면 봉룡은 성미가 불같고 안하무인에 충동적인 사내다. 봉룡과 그의 아내 숙정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이 책의 주인공 김성수이다. 숙정을 한때 사모했던 남자가 찾아오는데... 이를 발견한 봉룡은 숙정을 구타하고 그 남자를 끝까지 쫓아가 죽인다. 이에 숙정은 누명을 벗기 위해 비상을 먹고 자살하고 봉룡은 자취를 감춘다. 결국 그들의 갓난쟁이 아들은 봉룡의 형인 봉제가 키운다.


첫 장부터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다. 죽고, 죽이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속이고... 김성수의 윗대 이야기는 그야말로 스릴이 넘친다. 결국 세월은 흐르고 김성수는 결혼하고 김약국을 물려받으며 부유한 삶을 살게 된다. 비록 첫 아이인 아들이 어린 나이에 돌림병으로 죽지만 슬하에 다섯 딸을 둔다. 이야기는 어느덧 김약국의 아내인 한실 댁과 그들의 다섯 딸 이야기로 옮겨간다. 김성수는 약국을 접고 어장을 운영하지만 여전히 김약국으로 불린다. 그는 사랑방에서 두문불출한다. 반면에 한실 댁은 아들 못 낳은 설움 때문인지, 김약국과 소원한 상태로 묵묵히 집안을 꾸려간다.


한실 댁의 딸 사랑은 극진하다. 하지만 그녀의 딸에 대한 기대는 순조롭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실 댁은 그 많은 딸들을 하늘만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딸을 기를 때 큰딸 용숙은 샘이 많고 만사가 칠칠하여 대갓집 맏며느리가 될 거라고 했다. 둘째 딸 용빈은 영민하고 훤칠하여 뉘 집 아들자식과 바꿀까 보냐 싶었다. 셋째 딸 용란은 옷고름 한 짝 달아 입지 못하는 말괄량이지만 달나라 항아같이 어여쁘니 으레 남들이 다 시중들 것이요, 남편 사랑을 독차지하리라 생각하였다. 넷째 딸 용옥은 딸 중에서 제일 인물이 떨어지지만 손끝이 야물고, 말리 적고 심정이 고와서 없는 살림이라도 알뜰히 꾸며나갈 것이니 걱정 없다고 했다. 막내둥이 용혜는 어리광꾼이요, 엄마 옆이 아니면 잠을 못 잔다. 그러나 연한 배 같이 상냥하고 귀염성스러워 어느 집 막내며느리가 되어 호강을 할 거라는 것이다. 용숙이 과부가 됨으로써 한실 댁의 첫 꿈은 부서졌다."


새로운 어장 사업이 실패로 끝나고 가산은 조금씩 기울어 가고, 엎친대 덮친 격으로 딸들의 수난이 끝이질 않는다. 무엇보다 셋째 딸 용란은 집안의 몰락에 그 어느 딸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실 댁이 그리 어여뻐한 딸이었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용란은 하인과 애욕에 빠졌다가 가문에 수치를 남기고 결국 원치도 않은 아편쟁이의 아내가 되는데.. 결국 그 아편쟁이의 도끼질에 한실 댁은 희생되고, 용란은 정신병자가 된다.


넷째 딸 용옥은 심성이 너무도 고운 집안의 살림꾼이다. 남편이 없는 밤 시아버님은 용옥을 욕보이고 이에 경악한 그녀는 부산으로 남편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남편을 만나지 못한 그녀는 갓난아이를 안고 돌아오는 배를 타는데.. 배는 침몰하여 결국 그녀는 갓난아이와 함께 죽는다. 식구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너무 애절하고 슬프다.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삶의 무게가 너무 크다. 책을 읽으며 느낀 답답함은 그 시대 모든 사람들이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벗어날 방법도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에 내가 자포자기되기 때문일까? 헤어 나오고 싶으나 헤어 나올 수 없는 삶의 굴레... 용옥에게 추태를 부렸다가 용옥이 죽은 걸 알게 된 용옥의 시아버지가 안도해하는 모습이 너무도 추악스럽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태어난 걸 감사히 여긴다.


그래도 남은 사람은 남아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영민하고 공부를 잘하는, 지금은 서울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는 둘째 딸 영빈을 통해 슬프지만 그래도 남은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싶다.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갔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 살해혐의로 경철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 그것은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반대했으니까요. 그는 처녀가 아니라는 흠 때문에 아편쟁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결국 그 아편쟁이 남편은 어머니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었습니다. 그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됐죠. 다음 동생이 이번에 죽은 거예요. 오늘 아침에 그 편지를 받았습니다"


통영에서 서울로 공부하러 온 나와 비슷한 인생 경로를 가진 영빈에게 시대적인 배경은 다르지만 묵묵히 삶에 대한 응원을 하며 책을 덮는다. 책을 덮어도 김약국 집안에 대한 가슴 절절한 슬픔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박경리 작가의 대단함이 이 한 권의 책으로 설명되는 듯하다. 26년에 걸쳐 써졌다는 <토지>를 읽고 싶긴 하나 감히 엄두가 나진 않는다. 언젠가 다시 그녀의 소설 속 또 다른 인물의 삶을 살러 가봐야지.




( 칼의 노래, 김훈 )


"이순신은 임진왜란 중에 '난중일기'를 남겼다. 그의 기록정신은 치열하다. 그는 빠뜨리지 않고, 그는 중언부언하지 않았다. 이순신의 문장은 수사를 배제한다. 그는 매일매일 바다의 날씨를 꼼꼼히 살폈고 적과 아군의 형편을 기록했다. 그의 글은 무인다운 글쓰기의 전범이라 할 만한다."

- <칼의 노래> '난중일기' 소개 부분 -


"임금의 교서는 장려한 수사로 넘친다. 그 교서들은 무력한 조정의 고뇌와 슬픔을 남쪽 바다의 수군 진영에 전한다. 권력은 무력하기 때문에 사악할 수 있다."

- <칼의 노래> '선조의 국문 교서' 소개 부분 -


김훈의 <칼의 노래>는 또 하나의 <난중일기>다. 김훈의 문장은 수사를 배제한다.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글쓰기의 전범이다. 선조의 수사로 넘쳐나는 교서와 대조적이다.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던 것도 이를 확인해보기 위함이었다. 내용과 문장의 탁월함에 놀란다. 문장 하나하나 내용이나 기교면 어디로나 허투루 읽을 부분이 없다. 놀라울 따름이다. 가끔 생소한 단어가 나오기도 한다. 전령, 격군, 만호, 사부, 장계, 축선, 전령, 토병, 교서, 망궐례, 색리, 장사진, 막사, 호종, 청병, 망군, 도감... 사전을 찾아가며, 그리고 수군의 이동경로를 뒷페이지 지도를 확인해가며 천천히 내가 이순신 인양 읽어간다.


임금의 명령에 불복종한 죄로 의금부에 투옥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 뒤, 다시 백의종군하는 이순신의 모습부터 그려진다. 정유년(1579년) 7월 23일, 조정이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 노량 앞바다에서 전사하기까지 약 1년 4개월의 기간이다.


두 개의 큰 맥락으로 이 책을 읽는다. 하나는 이순신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 무수히 많은 이순신의 고뇌가 그려진다. 뒤에는 임금이, 앞에는 적이 있다.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다. 방책을 찾아야 한다. 새벽마다 잠을 설친다. 나의 끝은 자연사다. 전쟁 중에 죽는 자연사. 감당하기 어려운 운명 앞에 그를 옥죄는 수많은 고민과 고통, 슬픔과 분노, 그리고 처절함이 김훈의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전해진다. 무엇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통곡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무심한 어투로 그려내면서 이순신의 말 못 하는 슬픔을 느낀다. 나도 슬픔에 눈물을 훔친다.


두 번째 이 책을 대하는 맥락은 기교이다. 기교를 챙겨보지 않으면 이 책의 재미는 반감한다. 간결함의 극치, 대구를 이루는 탁월한 문장들, 단순하지만 핵심을 담고 있는 적확한 표현들을 만난다.

- 표적은 흔들렸다. 바람은 계통 없이 불어댔다. 화살은 거의 맞지 않았다. 어두워져서 사정에서 내려왔다. 표적은 비어 있었다

-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었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이었다.

- 물러설 자리는 넓었지만, 물러서서 살 자리는 없었다

-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 임금은 장수의 용맹이 필요했고 장수의 용맹이 두려웠다

- 나를 죽이면 나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은 나를 풀어준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를 살려준 것은 결국은 적이었다. 살아서, 나는 다시 나를 살려준 적 앞으로 나아갔다

- 나는 통제할 수군이 없는 수군통제사였다

- 내 적에 의하여 자리 매겨지는 나의 위치가 피할 수 없는 나의 자리였다

-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

- 백성들은 함대가 나아갈 때 울었고 돌아올 때 울었다. 백성들은 늘 울었다


"이순신의 죽음은 전투가 끝난 뒤에 알려졌다. 통곡이 바다를 덮었다. 이 날 전쟁은 끝났다"

책을 덮으며, 마지막 문장에서 느껴지는 허무함에 크게 한숨을 쉬어본다.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내 표현력의 한계를 책망한다. 이.순.신. 폐허가 된 국토, 무능한 임금과 조정, 그 와중에 이순신은 보잘것없는 수군 병력으로 꿋꿋이, 묵묵히, 한 건 한 건 전세를 역전시키며 나라를 지켜나간다.  그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이순신의 감정과 고뇌를 함께 느꼈고 먹먹한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한동안 이순신의 감정에 이입된 상태가 해소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만큼 충만한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은 책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인정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의 하나다.




(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


말 그대로 주인공은 82년생 김지영이다. 내가 76년 생이니 나보다 6살이 어리다. 나에겐 80년대생은 어린 친구 혹은 아직 젊은 친구로 여겨진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나의 어릴 적 모습 그리고 내가 거쳐온 청년기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회사 다니며 출산과 육아로 힘들었던 나의 과거와 참 많이 오버랩된다.


책을 읽으며 계속 불편한 마음이다. 과거의 일상이겠지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과거가 아니다. 계속 진행 중이다. 여자로서, 딸로서, 엄마로서,  여성 직장인으로서 참 많은 걸 생각나게 한다. 그동안 여자로서 내 권리를 말하지 못하고 꾹꾹 참아왔던 모습이 하나씩 떠오른다.


특히, 첫째 아이 출산을 위해 여자 선배에게 육아휴직에 대해 물었을 때 육아휴직 전례가 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던 일. 둘째를 유산하고 이 사실을 알렸을 때 휴가는 쓰지 말고 출근해서 여자휴게실에서 쉬면 안 되겠냐던, 팀장님이 그걸 원하신다고 말을 전하던 남자 차장님. 유산했다는 사실은 소문나면 안 되는구나 싶어 그 말을 따르며, 거의 폐기되어야 할 상태의 허름한 여자 휴게실 소파에 누워서 힘들어했던 그때를.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은 착잡해진다. 나보다 6년이 지나 태어난 김지영의 상황도 다를 바가 없다. 점점 마음이 우울해진다. 책 표지 속에 그려진 여자의 큰 그림자가 계속 머릿속을 떠다닌다.


82년에 태어난 김지영에게는 언니 그리고 다섯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엄마가 김지영 씨 밑으로 아이를 가졌지만 이번에도 딸이란 걸 알고 지운다. 아들을 바라는 시어머니가 계셔서. 그런 김지영 씨는 아들 상위시대, 남자 우위시대를 몸소 느끼고 경험하며, 학창 시절과 직장생활을 이어간다. 불쑥불쑥 김지영 씨는 여성이란 이유로 자신에게 주어지는 불합리한 상황들을 납득할 수가 없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다. 화를 내고 싶고, 소리치고 싶으나, 정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잘못이라거나 적극적으로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간간이 들려주는 김지영 씨 주변의 남자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 속 일상적인 남자들의 모습이다. 눈치 보는 남편, 옛날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진 아빠, 그리고 직장 남자 동료들, 거래처 남자 직원들. 모두 우리 일상 속 남자들 그대로의 모습이다. 간간히 한숨을 쉰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게 참 힘.들.구.나.


저자가 말하듯, 소설 속 김지영 씨는 우리 사회 어디에서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녀가 처한 현실이 그만큼 현실적이다. 우리 아이들 세대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 그대로 존중받는 사회, 차이는 숨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당당히 들려줘야 하고 받아들이는 사회.

지금까지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 책의 끝부분에서 밝혀진다.


김지영 씨는 결국 다른 사람으로 가끔 빙의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등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는데, 이를 치료하기 위해 다니는 정신과 담당 의사 선생님이 바로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다. 마지막까지 힘들었던 이유는 이 책의 화자로 밝혀지는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 또한 여성 차별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사 선생님의 독백이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마지막까지..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가 쉽지 않은 우리 나리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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