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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 Jul 02. 2022

소설은 삶의 오아시스이자 무궁무진한 재미의 원천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불편한 편의점-

과거에는 지식의 습득이 책을 읽는 주된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깊이가 얇고 흥미 위주의 글로만 보였다. 하지만 책을 제대로 읽게 되면서 지식이나 정보의 습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독서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타자의 인생에 대한 간접 경험이 얼마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제 소설은 그야말로 나에겐 오아시스고 무궁무진한 재미의 원천이다.


책을 읽는 주된 이유는 '자기 스스로의 독자 되기'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모두 각자 서로 다른 경험치와 서로 다른 지식으로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며 책을 읽는다. 동일한 책을 읽어도 독자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깨달음은 모두 다르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 동안 자기 스스로의 독자가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독자가 되는데 좋은 방법이 바로 소설 읽기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이 없이 이어지는 경험, 그리고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경험을 하기에 소설만 한 게 없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으며 나는 살인자 김병수가 된다.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을 읽으며 주인공인 노숙자 독거가 되기도 하고 독거 주위의 수많은 근심 걱정을 가진 주변 인물이 되기도 한다. 온다 리쿠의 <천둥과 꿀벌>을 읽으면서는 나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주인공이 되어 그들과 동일한 감정을 따라가고 혹은 청자가 되어 눈을 감고 가슴속에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를 온전히 음미하며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


연쇄 살인범 김병수. 이제는 살인을 그만 둔지 26년이 지나고 70세에 이른 노인이다. 과거, 보다 완벽한 살인을 하기 위해 일지를 쓰고자 했지만 일지가 쉽게 쓰이지 않자 그는 문화센터의 시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그가 강사와 주고받는 대화가 참 재밌다. 독자를 키득거리게 만들지만 팩트가 숨겨져 있는 대화들. 작가가 심어놓은 장치에 걸려든 나는, 주인공을 보다 인간적인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자세를 편안히 고쳐 앉아 책을 읽게 된다.


김병수는 자신이 살해한 한 부부의 딸 은희를 데리고 산다. 살인을 멈춘 지 26년간 은희를 키우며 살았고 이제 은희는 어엿한 아가씨가 되었다. 살인자 김병수는 아이러니하게도 은희를 통하여 그나마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마을에 연쇄살인이 일어난다. 은희가 걱정된다. 마을에 수상한 민태주가 나타난다. 김병수는 살인자의 촉으로 민태주가 연쇄살인범임을 직감한다. 그 시기 은희에게 남자가 생긴다. 바로 민태주다. 민태주가 의도적으로 은희에게 접근한 것 같다. 은희를 살려야 한다. 내가 먼저 민태주를 죽여야 한다.


김병수는 알츠하이머에 걸렸고 점점 그 정도가 심해진다. 최근의 기억부터 머릿속에서 지워진다. 방금 전 아니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도 기억할 수가 없다. 기억해야 한다. 기억해야 한다. 은희를 지켜야 한다. 김병수는 메모, 녹음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의 기억을 부여잡으려 노력한다. 오로지 은희를 살리기 위해, 민태주를 죽이기 위해..


여기까지 몰입하고 책을 있다가 '탁'하는 느낌과 함께..  내가 치매에 걸린 듯하다. 갑자기 지금까지의 설정과 플롯이 모두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김병수를 통한 1인칭 주인공 시점인 소설인데.. 그는 치매다.  지금까지 독자들이 믿었던 어떤 것도 진실인 것이 없다. 혼돈스럽다. 허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랍다.


김병수가 믿고 있던, 자신의 행동과 계획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도 결국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인간 모두의 믿음이 허상은 아닐까? 반야경과 니체의 인용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모든 것이 허상이고 무이다. 인간은 그저 한갓 우주 속의 작은 점에 지나지 않으며 이도 사라질 것이다. 감옥에서 김병수가 깨닫는 이 생각이 작가 김영하가 그려내고자 했던 주제가 아닐까. 작가는 말한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아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던 때를 잊을 수가 없다. 한창 김영하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많이 화자 될 때 읽은 첫 번째 책인데, 그때 받은 인상은 너무도 강렬했다. 마지막 부분을 읽던 때가, 야근한 후 퇴근하면서 집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 딱 그 느낌이었다. 카프카가 말한 "도끼"로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웃음이 났다. 김영하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쩜 이런 시나리오로 글을 쓰다니. 소설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생각되었다.


철이 없었을 때 나는 답이 없으면 불안했다. '그래서 뭐?' 항상 답이 필요했다. 수학과 물리학을 좋아하던 나는, 그래서 국어와 사회를 싫어했다. 이제는 문학, 철학, 인문학 등 답이 없는 과목이 좋다. 김영하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미를 넘어서 정신의 미로에 기분 좋게 헤매는 경험, 급기야 자아분열로 이어지는 반가운 경험이다.


특히, 고전소설은 가장 헤매기 좋다. 정신적 미로와 자아분열을 경험하지만 결코 슬프지 않고 오히려 탐닉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카프카의 문구와 일맥상통한다."책은 얼어붙은 감수성을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책을 읽으며 이 책은 나에게 도끼가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도끼가 된 책은 높이 평가한다. 즉, 자아분열로 이어지게 만든 책을 높이 평가한다.


소설을 한 권 끝내고 나면 항상 다음으로 읽을 소설을 탐색한다. 내 감수성에 도끼와도 같은 책. 기분 좋게 헤매는 경험을 선사해줄 만한 책. 나에게 또 다른 <살인자의 기업법>이 될만한 책을 행복한 마음으로 찾는다. 항상 "지금 읽는 책" 목록에는 소설이 한 권씩 들어가 있다.




(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


염영숙 여사는 청파동에서 ALWAYS라는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는 일흔 나이의, 퇴직한 교사다. 부산행 KTX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자신의 지갑과 신분증이 든 분홍 파우치를 분실한 걸 깨닫는다. 평택 부근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그때 걸려온 전화 한 통. 노숙자임에 틀림없다. 본인의 파우치를 들고 있단다. 염여사는 냉큼 반대편 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미련 곰탱이 같은 '독고'를 만난다.


냄새나고 수염이 덥수룩하고 피와 콧물이 범벅된, 말을 더듬는 천상 노숙자다. 하지만 행동들이 모두 경우가 있고 올바르다. 이름도 모르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는 자신을 '독거'라고 소개했다. 여차여차하여 '독고'는 비어있던 편의점의 야간 알바가 되어 저녁 10시부터 오전 8시까지 염여사의 편의점에서 일하게 된다. 기본적인 접객 업무에 더해, 진열대 상품 채우기, 폐기 상품 정리 등을 척척 해낸다.


아르바이트생의 생계를 지켜주기 위해 편의점을 운영하는 염여사를 포함하여 편의점을 중심으로 그 주변인들은 독고와의 관계를 통해 하나둘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아간다. 훈훈하다. 훈훈해도 너무 훈훈하다^^ 미련 곰탱이 '독고'의 경우 있음과 성실함 그리고 예의 바름과 배려심은 별거 아닌 듯 시나브로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낮시간대 아르바이트생인 시현은 다른 편의점 정직원으로 스카우트되고, 오전 시간대 아르바이트생인 까칠한 오여사는 아들과 '대화'라는 걸 시작한다. 의료기기 영업직원인 밤 11시 참참참 단골손님 경만은 가족이 다시 화목해지고, 배우에서 작가로 전향했지만 이렇다 할 작품을 쓰지 못하던 인경은 '독거'라는 인물에 영감을 얻어 작품을 쓰고 출판 계약까지 따낸다. 염여사의 아들이 '독고'를 내쫓기 위해 고용한 곽 노인은 '독거'의 편이 되고, 노후를 걱정하는 곽 노인은 월 200이 넘는 편의점 야간 알바를 시작하게 된다. '독거'가 자신의 과거 기억을 찾고 다시 새로운 삶을 찾아 대구로 떠나기 때문이다.


마지막 챕터인 'ALWAYS'는 우리의 주인공 '독거'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왜 과거의 기억을 잊고 노숙자가 된 건지 그리고 왜 이번 겨울을 편의점에서 따뜻하게 지내다가 봄이 되면 한강 다리에서 삶을 마감하려 했는지....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을 읽는 내내 흐뭇했고 벅찼다.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작가님께 고마운 마음이 마구마구 솟아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구 또한 나의 인생 모토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재미와 감동을 주는 책이란 바로 이런 책이다.


자기 계발서에서 소통하라라고 아무리 외쳐도 와닿지가 않을 때가 있다. ‘네 말이 정말 맞아?’라는 검열의 시선을 켠 채로 자기 계발서를 읽게 되어서가 아닐까. 하지만 소설은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며 순수히 등장인물의 감정에 이입된다. 그들의 깨달음이 나의 깨달음이 된다. 소설을 읽고 나면 내 삶이 한층 풍요로워지고 지혜로워지는 이유이다.




( 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


국제적인 피아노 콩쿠르 중 하나인 일본의 요시가에 콩쿠르의 예선전에서부터 본선까지의 며칠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참가자들의 곡을 평가하고 심사하는 심사위원으로 미에코와 너새니얼이 등장한다. 그리고 콩쿠르 참가자로 4명의 인물이 중점적으로 그려진다.


어릴 적 피아노 천재 소녀로 등극했다가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에 모든 것의 의미를 상실하고 홀연히 사라졌던, 이제는 어느덧 20살이 된 에이덴 아야. 너새니얼의 제자로 혜성처럼 나타난 인간적인 면목까지 갖춘 18세의 일본 혼혈이자 미국 국적의 천재 피아니스트 마사루 카를로스. 그리고 엉뚱하면서도 기이한 천재 꿀벌 소년 가자마 진! 특히 가자마 진은 시작에서도 그려졌지만 음악계에 대 이변이 될 수도 있는 존재다. 입상하게 되면 바라고 바라던 피아노를 아빠가 사준다고 약속했다. 피아노가 없지만 이 세상 모든 소리를 분별하는 능력을 지닌 천재이자 엉뚱한,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소년이다. 음악을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오겠다는, 돌아가신 스승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민하고 고민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28세라는 고령의 나이로 콩쿠르에 참가한 다카시마 아카시. 아카시의 눈을 통해 음악에 대한 열정이 함께 타오른다.


소설은 각 곡들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피아노 연주를 듣는 청자가 세상의 어디에 놓이게 되는지, 음악을 통하여 참가자 그리고 청중이 어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적 극치를 느끼고 경험하는지가 묘사된다. 예선 1차 2차, 3차 그리고 본선의 과정을 통하여 참가자들이 감정적으로, 인간적으로, 한 단계씩 성장해 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정말 뭉클함의 진수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타고 흐른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것과 동일하게 책을 읽는 동안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행복하다. 그렇다. 책을 읽으며 황홀한 행복을 경험한다. 이 책을 읽으며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음악에 대해 청각이 맡았을 역할을 활자에 대해 시각이 담당할 수도 있구나 깨닫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말이다. 글자를 통하여 음악에 매료되었다. 예술성과 인간미와 재미 등 다양한 요소를 한데 어울려 놓은 좋은 소설이다. 소설을 읽어야 되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캐나다 중앙은행과 미국 연방중앙은행(FRB)을 동시에 방문하는 출장이 잡혔다. 오랜만에 장시간의 비행기를 탄다. 출장에 데리고 간 책 <꿀벌과 천둥>. 출장 기간 동안 나에게 즐거움을 준 책이다. 시차적 응이 안되어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눈만 멀뚱멀뚱했다. 차라리 책을 읽자. 옆에 잠든 동료를 깨울까 봐 책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간다.


화장실에서 나올 수가 없다. 에이덴 아야가 콩클 곡을 치는 장면에서 그려지는 그녀의 감정들. 활자에 매료되어 황홀한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 에이덴 아야가 느끼는 슬픔이 그대로 전해지며 가슴이 아려온다. 그렇게 미국의 호텔방 화장실에는 나는 아른 가슴을 부여잡고 충혈된 눈으로 책에 탐닉했다.


내가 에이덴 아야가 되었나 보다. 미국 출장을 기억할 때면 화장실에서 밤새도록 읽었던 <천둥과 꿀벌>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삶의 틈새에 파고든 행복함은 많은 것들이 책 읽기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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