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것은 느낀다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잘 느낀다는 것이다. 행복과 즐거움만 느낄 수는 없다. 다양한 느낌(feeling)과 기분(mood)과 감정(emotion)들의 조합 안에서 세상을 흘려보내지 않고 촘촘하게 바라보며 이들을 경험할 때 우리는 잘 살아가는 것이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과 같은 다양한 감각들에 의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모든 신호들이 감정을 유발한다. 풍요로운 감정 생활이란 이 감각들이 느낄 수 있는 건강한 감각들을 늘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하고 풍부한 감각의 원천을 나에게 제공하려고 한다.
시각적으로 즐겁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많이 바라보고, 새롭고 낯선 곳으로 여행을 다니고, 예술 작품을 구경하고, 내 취향에 맞는 충만함을 느끼게 하는 영상을 본다. 청각적인 즐거움을 위해 혼자 있는 공간에선 내가 좋아하는 잔잔한 음악을 듣고, 아이들과는 수다를 많이 떨고, 눈을 감고 의식적으로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음식은 과하지 않게 다양한 맛을 추구하되, 균형 잡힌 영양소는 필수이고 음식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식단도 꾸준히 시도한다. 그리고 항상 주변을 정리 정돈하고 쾌적한 상태로 유지하며 가족들과의 신체 접촉을 늘리고, 마사지도 꾸준히 해준다.
적극적으로 나의 건강한 감정 생활을 추구한다. 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경외감 추구하기에 보다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나의 마음이다. 똑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람마다 상이하다. 내 마음이 부정적이라면 온통 세상은 살기 힘든 곳이 되고, 내 마음이 긍정적이라면 이 세상은 힘들지만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 된다.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옛 말이 진리다. 좋은 면을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그동안 몰랐던 좋은 면을 진짜 발견하게 된다. 내 마음은 위로를 얻고 이게 반복되다 보면 우울할 틈이 없다.
어느 날 아침, 남편에게 멘붕이 왔다. 지금껏 살면서 이처럼 정신 나간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봤다. 이유인즉슨, 국세청에서 갑자기 회사에 세무조사가 들어왔다고 했다. 안 그래도 정신없이 바쁘고 업무가 과중한 상태인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더 크고 민감한 일이 터진 것이다. 정신없이 출근하는 남편이 무척 안쓰럽다. 낮에는 가급적 개인적 연락은 하지 않았다. 너무도 바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힘든 남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힘내라는 말밖에 없을 거 같았다. 예전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그처럼 극도의 힘든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메시지가 나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빨강머리 앤이 생각났다. 긍정의 아이콘 빨강머리 앤. 내가 위로받았던 문장을 하나 찾아서 이쁜 글꼴로 적은 뒤 캡처해서 남편 카톡으로 전송했다. 바로 확인하지는 못하겠지만, 바쁜 와중에 이 문장 하나가 위안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엘리사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걸요"
남편으로부터 답장은 없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읽은 듯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바쁜 남편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좀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에 그 메시지에 대한 일화를 듣게 되었다. 당연히, 그 문장으로 남편은 많은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잠시 숨 고르기를 했고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새로 꾸려지는 회사에 합류하면서 이런저런 다양한 이슈들을 해결해 나가며 바쁜 상황이 갑자기 긍정적으로 보이더라는 거다. ‘정말 멋져!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걸. 하물며 우리 회사는 정말 멋져! 그런 멋진 일들이 너무도 많잖아!!’ ㅋㅋㅋ 그러면서 남편은 웃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가 그의 생각을 바꿔버렸던 것이다. 그리고는 남편은 그 메시지를 회사 직원들에게 전달했단다. 그러면서 다들 이구동성으로 “와우! 정말 우리 회사는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정말 정말 많이 일어나요!!”라고들 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를 전해준다.
내가 바라보는 방식으로 세상은 굴러간다. 누구에게나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단지, 생각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전자이다.
( 경외감 추구하기 )
'삶에는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라는 TED 강연을 한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는 자기 자신을 잊을 정도로 경이로운 순간, 우리가 더 큰 무언가와 연관되어 있다고 느낄 때의 경험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부터 감정에 대한 나의 탐구는 ‘경이로움’ 혹은 ‘감동’에 꽂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만함을 느낄 때 ‘아~~~ 좋다’라고 말한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 남편과 우산을 들고 공원을 산책하며 공원에서 마주치는 장면 하나하나에 감동하며 이 말이 튀어나온다. 제주도 가족여행을 하며 금릉해수욕장의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을 보며, 중문단지에서 바라보는 드넓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아~~~ 좋다’를 연발한다. 이런 순간들이 내 삶에 많이 들어오면 좋겠다 생각했다. 감동과 경외감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었다.
그래서 찾은 책이 <자주 감동받는 사람들의 비밀>이다. 저자는 감동을 광범위하고 압도적이며 파악할 수 없어 받아들이기 힘든 무언가라고 말한다. 이 책에 따르면 대커 켈트너 교수와 조너선 하이트 사회심리학자 겸 윤리적 리더십학과 교수는 2003년에 발표한 획기적인 연구를 통해 이 감정을 구체적으로 정의했다. 이들은 감동을 첫째, 무한하고 광대한 감정이며 둘째, 새로운 정보로 자기 자신이나 세계에 대한 이해 방식을 변경해야 할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정신 작용이라고 했다.
경외감을 측정하는 매개변수로는 위의 두 가지 정의를 포함하여 총 6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 거대함에 대한 경험
2. 이해하려는 욕구
3. 시간 개념 변경 : 감동의 순간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4. 작아직 자아 : 거대하게 밀려오는 감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이 너무도 작게 느껴지고 이기심도 줄어든다.
5. 소속감 : 덜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외향적으로 변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느낀다.
6. 신체적 감각 : 감동은 신체적으로도 경험할 수 있다. 소름이 돋고 전율을 느끼며 입을 벌리고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감동’이 자동화된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라는 사실이다. 마인드풀니스의 중요성은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나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터이다. 시간을 내기 힘든가? 내 일상 속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으로도 마인드풀니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한결 편안해짐을 느낀다.
주변에서 우리가 감동을 느끼고, 경외감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우선 노을, 바다 혹은 숲과 같은 자연을 마주하며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엄지를 치켜드는 최고의 경외감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직접 경험할 수는 없지만 관련 사진을 검색해서 언제든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며 찾아보았던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감동이었고 벅참 그 자체였다.
다음으로 예술이 주는 경외감이 있다. 문학, 음악, 회화 등을 통해 우리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꾸준히 고전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경외감’이고 ‘감동’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죄와 벌>을 읽으며 주인공을 따라 신열에 시달리는 경험을 했고, <싯다르타>를 통해 단순하되 가장 근본적인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 <돈키호테>를 읽는 동안 주인공을 경외감으로 바라보게 된다. 음악과 그림은 또 어떠한가? 보면 볼수록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감동을 커진다.
또한 사람에게 감동을 느낄 수도 있다.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사를 보며 우리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고 감동을 받는다. 기후 1인 시위에 이어 UN에서도 기후 문제에 대한 열정적인 연설을 했던 15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를 보며 우리는 감동한다. 소소하게는 내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전화에 미소를 띠고 가슴 벅참을 경험한다.
그 외 천재성이 돋보이는 세계적 건축물이나 불가사의한 고대 건조물 등 도 경외감을 느끼는 대상이 될 수 있다. 파리의 에펠탑, 이집트 피라미드, 스페인 가우디 성당, 만리장성 등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경외감을 느끼고 싶은 곳은 넘친다.
<자주 감동받는 사람들의 비밀>이라는 책을 좋아한다. ‘감동’ 혹은 ‘경외감’을 주제로 한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다. 이 책에서는 감동 훈련법을 소개한다. 하루 한번, 반드시 산책하기. 하루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기. 하루 한번, 감동을 찾아 읽기. 하루 한번, 감동을 기록하기이다. 나는 오늘도 공원을 산책하고, 벚꽃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으며 감동받고, 이렇게 감동에 대해 기록한다. 내 삶에 ‘감동’과 ‘경외감’, 혹은 ‘초월감’을 항상 곁에 둔다.
( 내가 추구하는 감정들 )
내가 몸담은 가정이, 학교가, 직장이 구성원 간 "감정"을 풍부하게 나누고 서로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며 포용적이고 온정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상상을 한다. 생각만 해도 벅차다. 그럼 과연 나는 각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나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노력하지 않고 바라기만 할 수 없으니 나부터 실천해야지!
가정에서는 사랑하는, 존중하는, 하나 된, 안전한, 행복한, 평온한, 감사하는, 인내하는, 즐거운 감정을 느끼고 싶다. 사랑과 용서는 동의어라는 이어령 선생님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겐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뭐든 마음속으로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자주 말한다. 퇴근한 남편에겐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안아주고 토닥거리고 가벼운 입맞춤을 해준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집에 오면 호들갑스럽게 맞이하고 너희가 있어서 엄마는 행복하다는 느낌이 전달되도록 최선을 다한다. 사춘기가 아직 오지 않은 아들에겐 최대한 스킨십을 시도한다. 칼 세이건도 말하지 않았던가.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자신의 아이를 자주 껴안아 주라고. 포옹하고 뺨에 뽀뽀하고 발도 주물러 준다. 이미 사춘기인 딸에겐 시도하기엔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혼날 생각을 하며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주말이면 다 같이 거실 넓은 좌식 탁자 앞에 모여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웃고 떠들며 TV를 시청한다. 평온하고 즐거운 시간이다. 평범한 것 같지만 나는 오늘도 이 감정들을 느끼고 가족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의식적인 노력을 계속한다. 이런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환경 자체가 감사할 따름이다.
직장에서는 지지, 성취감, 존중, 격려, 유능함, 소중함, 즐거움, 감사함, 행복, 따뜻함의 감정을 느끼고 싶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지지가 중요하다. 뭐니 뭐니 해도 존중과 지지가 최우선이다. 자기 잘났다고 으스대는 사람을 상대로는 실천이 쉽지 않지만 이런 동료들을 통해서는 ‘겸손’을 배운다. 스스로를 낮추되, 유능함으로 인정받도록 한다. 진정성 있는 태도로 일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서로를 격려하고 도움을 받을 땐 적극적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소통하며 즐거운 감정을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한다. 네가 있어서 내가 편하게 일할 수 있다며 서로를 지지해준다. 누구나가 내가 이 조직에서 소중한 존재라고 인정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