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하반기에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어른들의 ‘재미 찾기’가 아닐까.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실질적 메시지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국의 70~80년대 놀이가 전 세계인을 유혹했다. 나 또한 어릴 적 가장 아름답고행복하고 순수했던 순간은 꼬맹이 시절, 친구들과 집 앞 도로에서 오징어 게임, 달고나, 구슬치기, 팽이치기, 고무줄놀이, 얼음땡, 담방구, 고무줄 넘기를 하던 시간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니, 이런 놀이는 어른이 돼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과거를 회상하며 쨘한 향수와 그리움을 느끼며 추억에 빠지기만 했다. 그런 아이들의 놀이에 어른들을 참여시킨 <오징어 게임>의 설정은 전 세계 어른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이는 바로 어른들은 순수한 즐거움의 시간인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늦게나마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어른들이 영화 속 놀이를 따라 한다.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노는 것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놀이는 아이, 일은 어른의 역할인 양. 이제는 안다. ‘놀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그 무엇이다. 왜냐하면 놀이는 인간이 본능이기 때문이다.
( 어른도 재미를 찾을 권리가 있다 )
재미를 추구할 나이는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재미를 찾고 즐거움을 추구하면 된다. 어른이라고 안될 게 뭐가 있겠는가. 순수한 즐거움을 찾을 권리는 어른에게도 있다. 이러한 어른의 재미 찾기를 방해하는 여러 요소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취업이라는 인생 최대의 난관, 그리고 결혼에 이은 육아라는 최대의 고비를 겨우겨우 넘겨가면서 자연스럽게 ‘재미’는 사치스러운 것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좀 더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난관을 빠져나오고 나면 허무함이 남고, 무엇에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이 내 삶을 장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늘더라도 재미로 향하는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의 경우 둘째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일주일 한번 문화센터 그리기 수업에 참여했고, 두 아이를 키우며 대학원 논문을 쓰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회사에서 차세대 프로젝트를 하며 주말도 쉬지 않고 출근하며 젖 먹던 힘을 짜내가며 일에 치어 살 때도 한 달 한번 평일 독서모임은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회사 밖에서 난 항상 뛰어다녀야 했지만.. 그 모든 난관을 헤쳐 나오고 보니 그동안 유지해 왔던 ‘재미 찾기’ 습관은 더욱 단단해져 있었다.
<오징어 게임> 영화 속 마지막 장면, 이정재는 오징어 게임을 주관한 호스트를 대면하게 되고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이런 게임을 만들었냐고. 무엇을 위해 이런 걸 하냐고” 호스트는 대답한다. “재미가 없어서” 그렇다. 어른들에게도 삶에 ‘재미’가 필요하다. 그는 덧붙인다. “나는 돈을 많이 모았네, 그런데 자네, 돈이 없는 자와 돈이 많은 자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가? 재미가 없다는 거야. 나는 돈이 많았지만 삶에 재미가 없었네. 그래서 재미를 찾기로 했지…”
‘재미’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보편적인 욕구다. 그러니 어른들도 적극적으로 재미를 추구해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 충실한 삶을 사는 방법 중의 하나가 ‘재미 찾기’이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어떠한 재미를 추구하고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자.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고? 쉽게 생각하자. 순수한 마음으로 온전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활동이면 된다. 취미를 생각해도 좋다. 어릴 적 내가 느꼈던 순수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활동들 말이다.
(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
<인생수업>을 통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말한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후회는 ‘인생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하는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임종을 앞둔 환자들과 상담을 해오면서 우리는 단 한 번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더 일했어야 하는데.’ 라거나 ‘근무 시간이 8시간이 아니라 9시간이었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텐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취해 낸 것들을 자랑스럽게 회상하면서도, 삶에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중략) 열심히 일했지만 진정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은 삶의 균형 잃은 지루한 것으로 만듭니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 놀이와 서서히 멀어진 것 같다. 이후, 나는 공부나 일만 하는 놀지 못하는 바보였고 그래서 균형을 상실한 채 지루한 삶을 살았다. 나 자신의 재미나 즐거움을 찾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런데 정작 제일 부끄러운 건 놀이의 즐거움을 억누른 대 제대로 놀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어리석은 어른이었다.
나는 이제 놀이를 찾는데 적극적이다. 놀이로 삼을 수 있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것들은 온전히 놀이가 될 수 있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는 말한다. “놀이는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의 생명력입니다. 놀이는 마음을 젊게 하고, 일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며, 인간관계를 잘 맺게 해 줍니다. 또한 젊음을 되돌려 줍니다. 놀이는 삶을 가장 충만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더 늦기 전에 삶을 충만하게 살아 보자.
(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게임을 하러 온 하나의 캐릭터다 )
<운의 알고리즘>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게임을 하러 온 하나의 캐릭터이다. 이 지구 게임에서 나에게 주어진 캐릭터는‘명’이라 할 수 있다. (생략) 이미 부여받은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지금의 캐릭터로 어떻게 하면 지구 게임의 미션을 클리어할지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 지구 게임 참가자들의 첫 번째 공통 미션은 다른 캐릭터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어떤 경험이든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 안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두 번째 공통 미션은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매일 매 순간을 재미있게 살면 두 번째 공통 미션을 클리어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참는 것은 지구 게임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를 즐기면서 사는 것. 즉 ‘현존’은 지구 게임의 두 번째 공통 미션이다.”
지구에 온 두 가지 미션 중에 하나가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이 정도까지 인 줄은 몰랐는데 재미를 추구하는 데 사명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자. 미션 클리어를 위하여~
( 우리는 놀이를 통해 인간이 된다 )
<노는 만큼 성공한다>에서 저자는 말한다.
“인간의 본질은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이다. '눈 맞추기', '정서 조율', '공동 주의집중'과 같은 놀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꿔가는 능력을 배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놀이를 통해 인간이 되고, 놀이를 통해 또 다른 인간들을 키워낸다. “
놀이를 통해서 우리는 성장했다. 그리고 놀이를 통해 인간을 키워낸다. 너무 와닿는 말이다. 놀이는 본능인데,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어느 시기부터 '놀이'에서 손을 떼라고 한다. 살살 구슬리다가 윽박지르기도 하고 급기야 소리치고 혼낸다.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려고 하니 잘 안된다. 특히나 잘 놀지 못하는 어른들이 심하다. 어른인 내가 잘 놀고 있는데, 아이들이 놀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아이들을 혼낼 수 없다. 나도 놀고 있기 때문에^^ 요즘 나의 딜레마 중 하나....
내가 요즘 즐거움을 느끼며 하고 있는 놀이들은 어릴 적 기억과 관련이 있다. 어릴 적 기억은 주로 좋았던,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았던 장면들이다. 그들은 어떤 일관된 영역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하나는 ‘그림’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엔 선정된 몇몇 그림만 학급 뒤편 게시판에 걸렸는데, 내 그림은 항상 빠지지 않고 걸렸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그림에 소질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었다. 미술학원은 딱 2달 다녀봤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1달, 3학년 여름방학 1달 정도로 기억한다. 그냥 평소에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은 혼자서 색칠공부 책에 그려진 그림을 정말 똑같이 따라 그렸다. 내가 봐도 잘 그렸었다. 중학생 시절에는 혼자 몰래 좋아하던 수학선생님의 사진을 연습장에 정말 그대로 그려냈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데생 실기에서 같은 학년 전체에서 내가 제일 높은 점수 98점을 받았다.
어린 시절 내가 좋아하던 놀이들이 평생을 두고 나를 즐겁게 하고 내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이 사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하도록 하자. 아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삶을 누리고 놀이를 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으니…
어느 날 아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했다. 엄마가 책을 읽는 것처럼.. 그랬더니 아들의 대답이 나의 정곡을 찔렀다.
아들 : 엄마한테는 책 읽기가 재미있는 거잖다. 나한텐 게임이 재밌다고. 엄마는 재밌는 거 하면서, 왜 나는 재미있는 거 못하게 해? 불공평해!"
엄마 : (내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들에게 강요했군... 반박을 못하겠다) 그래 너 재밌는 거 해.... 엄마도 엄마 재밌는 거 할게...
(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
뽀로로는 나와 친한 친구들의 우상이다. 뽀로로 노래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구구절절 내 마음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나는 노는 게 제일 좋다. 친구들 모여라. 언제나 즐겁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설렌다. 뽀롱 뽀롱 뽀롱 뽀롱 뽀로롱~~~
“이야 뽀로로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언제나 즐거워
개구쟁이 뽀로로
눈 덮인 숲 속 마을
꼬마 펭귄 나가신다
언제나 즐거워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뽀로로를 불러봐요
뽀로로로 뽀로로 뽀로로로 뽀로로 뽀로로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언제나 즐거워
뽀롱 뽀롱 뽀롱 뽀롱 뽀로롱”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언제나 즐겁다. 긴장을 풀고 소리 내어 뽀로로 노래를 불러보자. 굳었던 얼굴은 활짝 펴지고 가라앉아 있던 마음은 붕붕 떠오른다. 즐겁다. 이제 깨닫는다. 나도 노는 게 제일 좋다고. ‘놀이’는 인간의 본능이다. 본능은 거부하면 안 된다. 본능에 충실해야 한다.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지.
백수 동경, 혹은 놀이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그동안 내가 읽은 책들을 찾아본다.
1. 요한 하위징아는 유희하는 즉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를 주창했다.
"인간과 동물에게 동시에 적용되면서 생각하기와 만들어내기처럼 중요한 제3의 기능이 있으니, 곧 놀이하기이다. 그리하여 나는 호모 파베르 바로 옆에,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수준으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를 인류 지칭 용어의 리스트에 등재시키고자 한다" -요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2. 정재승의 <열두 발 지국>의 네 번째 발자국의 주제가 '놀이'이다.
특히 나에게 와닿았던 한마디
"사람이 놀지 않고 일만 하면 바보가 된다고 하죠?" 인간은 늘 백수에 대한 동경이 필요하다.
"어떻게 노느냐가 그 사람을 규정합니다.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시간도 바로 노는 시간이지요. 놀이하는 동물, 호모 루덴스인 인간에게 놀이는 삶의 화두여야 합니다. "
3.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야>에 나오는 대화를 읽으며 정곡을 찔린 느낌을 받는다.
"너부리 : 취미란 노는 거야. 어른이 '논다'라고 하면 멋없으니까 취미라고 부르는 것뿐이야.
홰 내기 : 어른이 되고 나서도 놀기 위해서 취미란 게 있는 거야. "
4. 김민식 PD의 <매일 아침 싸 봤니>에서도 잘 놀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능동태 라이프를 살라한다.
"앞으로는 인간의 수명이 늘고, 실업률도 높아집니다. 곧 긴 시간 놀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일을 하지 않는 인간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될까요? 놀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도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아주 잘 놀아야 합니다. "
5. 김정운 교수는 <노는 만큼 성공한다>에서 말한다.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내가 행복해하고 재미있어하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적극적으로 삶의 재미를 추구하라”라고.
( 노후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다 )
<노는 만큼 성공한다>에서는 ‘진짜 성공한 사람’이란 노후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 아이덴티티는 외부에 의해 부여된 게 아니라, 스스로 찾은 것이어야 한다.
“살다 보면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불과 몇 개월, 몇 년에 불과한 사장, 은행장, 장관의 지위로 평생을 사는 사람이다.... 진짜 성공한 사람은 노후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한 사람이다. 이 아이덴티티는 자신만의 재미로 얻어지는 것이다.”
나만의 노후 아이덴티티를 항상 생각한다. 나이 든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내가 어느 공간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감정들을 느끼며 살아갈지 상상해 본다. 물론 즐겁고 충만하고 행복한 삶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취미와 관심들은 모두 이 노후의 내 아이덴티티를 위한 밑거름들이다. 이런 지속된 상상은 결국 나중에 그런 삶을 사는 모습으로 나를 이끄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