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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 Aug 13. 2022

책을 읽으며 마주한 감정들, 그리고 감정에 관대해지기

"넌 지금 너의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나?"

내가 현실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은 한정적이다. 매일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의 감정 또한 쳇바퀴 돌듯 굴러간다.


출근길, 바쁜 발걸음 속에서 지하철을 놓칠까 봐 조마조마해한다. 지하철에서 빈자리를 발견하면 기쁘고, 만원이면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사무실에서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쫓기듯 정신없이 일을 처리한다. 상사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들으면 날아갈 듯 기쁘다가도 부족하단 소리를 들으면 수치스럽고 내가 왜 이러고 사나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야근은 일상이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 엄마와 약간의 신경전을 벌이고 저녁에 아이들 숙제를 챙기고 공부를 도와준다. 아이들에게 어김없이 잔소리를 한다. 그러다가도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사랑스러움을 느끼다 아이들에게 화를 낸 나를 책망한다. 밤늦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고요함 속에 생긴 짧은 여유에 감사해한다.


내가 매일매일 느끼는 감정은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된다. 보다 풍요로운 감정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고 영화관에 가고 예능을 시청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고 즐거워한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새로움 속에서 힐링하고 자신을 되돌아본다. 다양한 감정과 기분, 그리고 느낌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것이 잘 살기 위해 필요한 방법 중 하나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감정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는다.


책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특히 고전이라 불리는 책 나의 내면 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핵심 감정들을 끄집어내어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도구다. '감정'에 서툴렀던 나는 책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이들에 관대해지기 시작했다.


유쾌함과 즐거움과 같은 좋은 감정들 뿐만 아니라 후회와 고통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 또한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치 있는 감정들이다. 소설을 통해서, 특히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는 문학작품을 통해 나는 현실 속에서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감정을 간접 체험한다.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감정들은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된다. 황홀한 경험이다. 감사하고도 감동적인 경험이다. 책을 읽으며 마주한 감정들과 그 감정들을 받아들였던 나의 경험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 <스토너>,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삶의 마지막에 느끼는 살아온 삶에 대한 먹먹함 )


'스토너'라는 인물의 일생을 그린 존 윌리엄스의 1965년 소설이다.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업을 공부하려고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문학 수업에 매료되어 영문학도의 길을 걷고 교수가 된다. 책 한 권이 그의 삶 전체다. 스토너의 삶이 묵직하게 나에게 다가온다.


책을 읽으며 수많은 감정을 만난다. 답답한, 애잔함, 안타까움, 화남, 분노, 황홀함, 희열 등. 스토너의 삶은 내 주변의 여느 사람의 평범한 삶 중 하나다. 아니면, 나의 삶과도 닮았다. 내 인생의 많은 결정들 중,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나는 스토너와 비슷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뒤표지의 문구가 진지하게 와닿는다.

"...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


젊은 시절 스토너의 모습 속에 나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고, 점점 주름이 잡혀가며 어깨가 구부정해지는 모습으로 묘사한 40대 중반의 스토너의 모습 속에서 현재의 나를 떠올린다. 스토너는 여타 다른 삶의 낙은 포기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것으로만 삶의 의미를 부여잡고 살아간다. 나는 어떤 즐거움으로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해 보게 한다. 스토너의 생의 마지막 부분... 정신이 맑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자신에게 계속해서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가슴이 먹먹해 온다. 삶의 마지막에 어느 누구나 이런 질문을 던질 것 같다. 나는 내 삶의 마지막,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삶의 마지막에 던질 수 있는 질문.. "넌 너의 삶에서 무엇을 기대했나?" 우선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넌 지금 너의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나?"


사람들은 모두가 제각각이고 서로 다르다. 삶의 경험이 다르고 가치관과 신념이 다르기에, 스토너라는 인물의 삶에 대해서 각자 다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가정생활에 대한 소극적인 모습에서 누구는 그를 비난할 것이고, 학자적인 신념에 대해 박수를 보낼 것이고, 현실적이지 못한 그의 행동들에 답답해할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등의 사회적인 상황에는 무관심하고 오로지 대학이라는 공간에만 머무르는 그를 비겁하게 볼 수도 있고, 캐서린과의 불륜 관계를 통해 그를 이기적인 사람 혹은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진정한 로멘티스트라고 볼지도 모르겠다.


퇴직을 권하는 친구에게 스토너가 답하는 부분은 나를 움찔하게 한다..

"시간이 생겨도 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걸세.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으니까."

젊은 시절에 나도 스토너와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난 그러한 삶이 무의미하고 재미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삶의 '의미'와 '재미'를 찾기 위한 쪽으로 내 삶의 방향을 바꿨다. 시간을 만들고, 그 시간을 재미와 의미로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방향으로...




( <죄와 벌>, 모순되는 감정들 )


러시아의 대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다. 대학생 라스꼴리니꼬프가 주인공이다. 그는 백해무익하다고 생각되는 늙은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죽이고 이를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하지만 그는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데.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마주한 건 대부분이 라스꼴리니꼬프가 내면적으로 겪게 되는 순간순간의 감각과 모순되는 감정들이었다. 자신이 보기에 무익하고 증오스러우면 한낱 혐오스러운 '이'에 불가한 노파를 살해했고, 그의 이론에 따르면 그는 '비범한 사람'이기에 그러한 살해 행동이 죄가 되지 않지만 그의 무의식은 계속 그를 힘들게 한다. 800페이지에 달하는 본문 속에서, 에필로그에 도달하기 전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끝까지 죄의 중압감을 견뎌 내지 못한 자신의 무능력만을 경멸한다.


책 읽기를 멈추는 사이사이 책 속의 많은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사상에 대한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무엇보다 라스꼴리니꼬프가 희생이라고 생각한 그의 행동과 소냐의 희생에 대해 생각한다. 소냐의 희생은 라스꼴리니꼬프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볼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소냐의 희생이 그를 결국 구원했다.


죄와 벌에 대한 심리학적 실험, 죄와 인간의 본성, 선과 악, 사회적 환경과 범죄의 상관관계 등에 대한 인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심오한 소설이다. 완독을 하고 잠시 숨 고르기를 한다. 800 페이지의 활자를 통해 경험한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은 도스토옙스키의 대단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위대한 고전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인간의 보편적이고 다양한 감정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헤처 나가는 방식을 보거나 스스로 생각해봄으로써 나만의 지혜를 찾기도 한다.




( 빌러 버드, 내가 경험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다 )


199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토니 모리슨의 책이다. 몽환적인 소설이다. 책 속 등장인물인 빌러버드의 존재는 현실로는 설명할 수 없다. 소설이라는 장치를 이용한 작가의 상상력이 기발하다. 작가는 이러한 장치와 구성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한다.


주인공은 '덴버'라는 여자 아이를 키우는 '세서'라는 중년 흑인 여성이다. 그들은 유령이 활개 치는 집, 신시내티 블루스톤 로드 124번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나타난 세서의 과거 친구인 폴디. 그리고 또 한 명의 출연자, 자신을 Beloved(빌러버드)라고 소개하는 의문의 아가씨가 그들의 삶에 들어온다. 서서히 밝혀지는 세서의 비밀 아니 그 고장에서 18년 전에 벌어진, 이제는 더 이상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그 비밀이 독자에게 서서히 나타난다.


문제의 장면... 활자를 통해 맞닥뜨린 이 장면의 묘사가 처음에는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왜? 이게 무슨 장면이지? 한동안 그 사건과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연결시키며 내 머릿속은 빠르게 움직인다. 후반으로 가면서 서서히 이해가 된다. 가슴이 먹먹해 온다. 간적접으로 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내용이었다. 노예제도 하에서 살아온 흑인 노예의 삶. 흑인 여성 노예의 삶. 그리고 자식들 또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흑인 노예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들..


이 책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소재로 한다. 1856년 1월, 마거릿 가나라는 한 흑인 여성 노예에 대한 이야기다. 임신한 몸으로 네 명의 자식을 거느리고 도망을 쳤지만 노예 추적자에 의해 다시 잡힌 마거릿 가너는 자신의 자식들이 자기처럼 노예의 삶을 살게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낮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손으로 두 살 백이 딸을 죽인 그녀는 재판에 넘겨진다. 여기서 더욱 어이가 없는 사실은 이 재판이 또 하나의 이슈를 만드는데. 자신의 아이, 혹은 물건으로 취급받는 노예를 죽인 마거릿 가너. 살인죄인가 재물손괴죄인가. 어처구니없는 장면이지만, 과거의 현실이었다. 먹먹하다.


미국의 역사, 흑인 노예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다른 책과 견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한 인간으로서, 엄마로서 느끼는 보편적인 슬픔 또한 느낀다. 책을 덮은 뒤로도 한동안 여러 감정들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아니, 그 감정에 푹 몸을 맡기고 온몸으로 그 감정을 느껴본다. 이런 책이 아니라면 다시는 경험해 보질 못할 감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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