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생각해 보면 내 경우에도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의사결정은 모두 ‘감정’과 무관하지가 않았다. 내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감정이다. 첫 직장을 퇴사하고자 결심한 것도, 유학 준비를 시작한 계기도, 그리고 두 번째 직장인 한국은행을 퇴사한 이유도 모두 ‘감정’이 작용했다. 내 감정에 대한 의식적인 응답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나는 한국은행 2006년도 공채로 입행했다. 금융고시로 불리는 그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서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한국은행’에 들어갔다. 그런 곳을 15년의 근무기간을 채우고 2021년 3월 퇴사했다. 자발적으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는 ‘감정’도 있었다.
( 내가 퇴사한 이유, 조직에서의 감정 생활 )
인사이동이 발표되던 날, 같이 일하시던 차장님의 말이 나의 뇌리에 남았다. ‘나 무너져 버릴 거 같아’ 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친한 과장님은 타 부서로 이동 발령이 났다. 메신저에 찍힌 그의 말이 또 내 시선을 끈다. ‘나 퇴사해버릴 거야’ 이 말들 동료 직원들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매번 무너져 버릴 것 같은 감정, 퇴사하고 싶은 생각을 억누르면서 회사를 다닌다. 모든 직원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 주변엔 그렇게 힘들어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직원들이 행복하지 않다. 나 또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불쑥불쑥 슬픔, 분노, 우울을 느낀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비슷하게 겪는 어려움일 수 있다.
삶은 즐겁고 찬란해야 하는데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면서, 누군가의 험담으로 감정을 해소하는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또한 내가 너무 조직에 소모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감정적으로 점점 힘들었다. 15년 동안 나에겐 일이 넘쳐났지만 주변엔 프리라이드들이 참 많았다. 공기업의 어쩔 수 없는 운명과도 같다고 할까. 그래도 일은 무척 보람 있는 일이었다. 즐겁게 일했다. 이처럼 성취감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런 것들로 내적 동기 부여를 하며 스스로 만족하면서 그렇게 15년을 열심히 일했다. 차세대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초반엔, 팀원들에게 긍정 마인드셋과 내적 동기부여의 필요성을 설파하며 적극적으로 팀워크를 다지는데 혈안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나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미안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에서 저자 김정운은 ‘피터의 원리’를 소개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조직에서 유능하다고 평가를 받는 사람들에게만 지속적으로 일이 몰리게 되어 있다. 그들이 맡겨진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낼수록 승진을 거듭하며, 보다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영원히 이런 성공과 승진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일정 수준에 올라서면서부터 이들에게는 자신이 차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부여된다. 주위의 계속되는 기대에 부응하고, 자신의 직책에 맞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이미 시간은 늦었다. 자신의 역량에 비해 주어진 과제의 도전은 너무 벅차다. 그 순간부터 그는 자신감을 상실하고, 두려움에 젖게 된다. 물론 유능하다는 주의의 평가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사람들의 평가는 언제나 그렇듯이 한 칼로 끝나 버린다.”
한국은행이라는 조직이 사기업과 다른 점은 개인의 성과나 역량이 보상과 크게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다. 칼퇴근하는 직원이나 프로젝트로 주 70시간 일하며 죽어라 바쁘게 일한 직원이나 정해진 승진 년수를 채웠을 때 비슷하게 승진한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고생한 직원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슬프다 못해 좌절한다.
5년간의 바쁜 프로젝트를 끝내고 팀장님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팀장님께서 나를 북돋아 주시면서 말을 꺼내신다. “김 과장은 내가 특진을 요청하려고 해(조직에 받아들여질리는 없다) 그리고 김 과장이 올해 시작할 xx 프로젝트를 맡길까 해” 15년간 나는 항상 바빴다. 일이 넘쳐났다. 최근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다. 나도 여느 직원처럼 좀 여유 있는 직장생활을 해보고 싶은데… 또 프로젝트라… 슬펐다. 나에게 빨대를 꽂았나 보다. 이 조직이. 지금의 나의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내가 이 조직에서 점점 어떤 사람으로 변해갈지 나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지금이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지금 이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감정을 보듬어 주기로 결정했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허우적 대는 상황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퇴사를 했다. 한동안은 또 다른 감정들이 나를 흔들기도 했지만, 1여 년이 지난 지금은 정말 평온해졌다.
친했던 은행 직원들이랑은 아직도계속 연락을 주고받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인사 발표가 있었고, 누군가는 무너져버릴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며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낼걸 알기에 내 마음 또한 속상하고 쓰라리다. 내가 좋아하는 그분이 다시 활력을 찾고 일상으로 돌아와, 우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인생이라는 하나의 큰 모험에서 나는 내 감정에 충실했고,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생의 큰 결정을 했고 그런 결정들에 대해서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1년 전 보다 더욱 감정적으로 풍요롭고 긍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인생은 길다. 내 삶에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잘 판단해야 한다. 나는 퇴사했다. 조직에서 손뼉 칠 때 나는 회사를 떠났다.
( 내가 퇴사한 이유, 가정에서의 감정 생활 )
퇴근해서 집에 오면 아이들과 엄마가 있다. 남편은 바빠서 늘 야근이다. 엄마의 일방적인 대화가 시작된다. “OO는 하루 종일 유튜브만 보고 공부를 안 한다”, “동대문 시장에 가서 싼 맛에 옷 2개를사 왔는데, 이건 좀 나한테 안 어울리지 않아? 환불할까?”, “OO(동생)은 회사에서 일이 너무 많다는데, 남편이 살림을 도와주지 않아서 혼자서 육아며 살림이며 회사일이며.. 왜 걔는 일복이 많은지.. 내가 걔를 임신했을 때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 “부산에 오빠는 월급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밥을 많이 먹어야 일을 잘 해낼 텐데, 회사에서 잘 먹고는 다니냐”… 진짜 일방적이 대화다.
아이들은 지금 중학생과 초등 고학년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와 함께 아이들의 재롱 보며 웃고 떠들며 그렇게 퇴근 후 시간을 보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이들이 점점 자기 방을 찾아 들어가고, 거실에 덩그러니 엄마와 내가 단 둘이 남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엄마와 한 공간에 있는 게 점점 불편해졌다. 내가 식탁에서 저녁을 먹는 동안 엄마는 이렇게 혼자만의 넋두리, 주변 사람들 험담, 아이들 공부시키라는 잔소리를 끊임없이 늘어놓으신다. 몸은 집에 있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긴장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엄마와 나누는 대화에서도 나는 항상 날이 서있다. 엄마는 항상 ‘너희가 걱정돼서’라고 하시지만, 모든 대화에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하지 않다도 되는 걱정들이 가득하다.
나 : 엄마, 애들 여름 운동화 샀어요, 보세요. 시원하겠죠?
엄마 : 불편해 보이네
나 : ㅜㅜ
나 : 엄마 나 마사지 좀 받으러 다니려고. 어깨가 너무 뭉쳐서.
엄마 : TV에서 그러던데 마사지받다가 근육 파열된다더라. 조심해라.
나 : ㅜㅜ
한 번은 엄마에게 따졌다. “엄마는 왜 맨날 부정적이에요?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좋잖다. 신발도 그래. 이게 요즘 유행하는 건데. 조금 불편하게 보였더라도 ‘시원하겠네’라고 말해주면 안 돼?” 엄마는 대답한다. “나는 거짓말은 못한다.” 60~70 평생을 근심, 걱정, 그리고 아빠에 대한 잔소리를 달고 살아오신 우리 엄마. 평생 그렇게 살아오신 부모님이 변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가끔 엄마의 이야기에 정치 이야기라도 담기는 경우 나는 짜증을 낸다. “제발 정치 이야기 그만하세요” 그래도 반복된다. “너희는 듣기 싫겠지만…” 블라블라.. 한때는 사위와 큰소리로 다투기까지… 엄마의 대하는 그렇게 주방과 거실에서 들어줄 상대방을 찾지 못하고 매일매일 그렇게 공허하게 떠돌았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로 힘든 시기에 엄마와의 감정 문제가 점점 극한으로 치닿았다. 나는 급기야 울부짖으며 엄마에게 퍼부었다. “엄마!! 난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고요.. 왜 맨날 걱정하고 부정적인 말만 하세요. 제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지 마세요. 저도 힘들다고요”, 엄마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얘기 할 사람이 딸 밖에 더 있냐” 그렇다. 엄마는 시인했다.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아이들의 육아를 맡기며 엄마와 한집에서 살기 시작한 때부터…
내가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엄마와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결론밖에 없다. 남편과 둘이서 술을 마시며 일생일대의 결정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의 원인을 없애자고 얘기했다. 엄마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삼남매를 잘 키워주신 정말 훌륭하신 분이고, 나는 언제나 엄마를 사랑한다. 하지만 개인대 개인으로서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 서로 맞지 않는다면 가족이더라도 떨어져 살 필요가 있다. 나는 퇴사를 했고 드디어 엄마와의 동거를 끝냈다.
이제는 엄마와의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 함께 여행도 하고, 혼자 고향집도 방문하고, 아이들에 대한 잔소리, 우리들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엄마와 나 그리고 남은 우리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