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감정이다. 모든 순간에 감정은 흐르고 있고, 우리의 행동들 대부분의 숨은 동기가 바로 이 '감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람은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보다 심층적으로 따지고 보면 감정이 판단과 행동의 원인이 된다. 그만큼 '감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나의 인생 화두 중의 하나가 '감정'이다. 늦은 나이에 이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늦었지만 감정을 잘 표현하고 내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감정을 알아채는 능력조차 잃어버려 내면이 무감각해진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 지금 느끼는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 일상의 어떤 부분이 문제였는지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정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다. 감정을 알아채고 이해하고 드러내는 일이 불가능하니 감정 제어는 말할 것도 없다. 감정을 인정하고 수용하기는커녕 무시해 버린다면 이를 다스릴 수도 긍정적인 작용을 기대할 수도 없다.” <감정의 발견>
( 감정표현이 필요한지 늦게 깨닫다 )
어릴 때부터 감정 표현에 서툴렀다. 어릴 적 내 감정에 대해 물어보거나 어루만져 준 사람이 별로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자란 시대가 그런 분위기이긴 했지만 특히 시집살이하는 엄마는 대가족 살림을 사시느라 바빴고, 아빠는 무기력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속 깊은 애어른이었다.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사치였다. 친구 집을 찾아가는 길에 술 취한 어른에게 이유 없이 뺨을 맞아도, 고등학교 등굣길 만원 버스 안에서 성추행을 당했을 때도(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런 상황이었음을 깨달았다는....) 그냥 나는 그렇게 내 생각과 감정을 혼자 감당해왔다.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고 보니 감정에 대해 내가 너무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학생 시절, 친한 친구와 저녁 늦게 캠퍼스가 내려다 보이는 건물 계단에 앉아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는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고 그 친구에게는 위로가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친구를 위로해야 할지 몰랐고, 내 생각과 감정을 나눠도 될지 난감해했던 적이 아직도 기억 속에서 남아있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어렸을 때는 감정쯤이야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도 된다고 생각했다. 나만 그냥 속으로 삼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내 생각이 틀렸음을... 감정은 느껴야 하고 표현해야 한다. 잘 살기 위해서, 나의 삶을 살기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나의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조금씩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부터 "감정"에 대해 처음부터 시작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정의 발견>에서 저자는 말한다. “감정을 표현할 단어를 잘 모른다는 것은 단지 묘사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만은 아니다. 삶을 만들어 가는 ‘작가’로서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해 낼 수 없다면 그것은 단지 나의 묘사력이 부족 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삶을 살아갈 능력 중의 하나가 감정의 이해와 표현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제대로 알고 있다.
(감정을 표현하기 힘든 이유)
"감정"이라는 주제는 인생을 살면서 가장 다루기 힘든 주제 중의 하나가 아닐까? 우리는 시시각각 무수히 많은 감정들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감정이 지금의 나의 감정이라고 받아들이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 감정 이면에는 상반된 감정이 존재할 수도 있고, 관련 없는 수많은 감정들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그래서 어렵다. 내 감정을 알기도 어렵고 표현하기도 어렵다.
내 감정을 표현하기 힘든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니, 나에게 물어본다. 너는 왜 너의 감정 표현을 힘들어하니?
1.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를 충분히 알지 못해서
2. 내가 느끼는 무언가가 '감정'이라고 볼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
3. 또한 그러한 감정을 어떤 단어로 나타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내가 느낀 그 무언가가 나의 모국어인 한글에 존재하는 단어일까?
4. 아니면 "감정"이라는 것의 정의가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아. "감정", "느낌", "기분" 이런 것들이 모두 똑같을까?
5.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내 뒷말하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뭘까?
(목격 직후) 비참함, 상대방에 대한 화남,
(비참함과 화남을 느끼고 조금 지난 후) 나 자신에 대한 실망, 당당히 나서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화남, 상대에 대한 실망, 답답함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무기력함, 비굴함
6. 감정의 방향까지 나타나야 정확하지만, 감정 단어는 그 방향성을 담고 있지 않아 보여. 예를 들어, 상대방에 대한 화남인지 스스로에게 대한 화남인지.
7. 다양한 감정이 공존하기에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워
8. 시시각각 감정의 정도도 바뀌어. 말로 표현하려고 하는 순간 그 감정상태가 아닐 수 있어
9. 감정을 표현하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멀리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감정을 애써 차단하게 돼
10. 누군가에 대해 쌓인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 그가 상처받을 텐데, 난 그걸 원하지는 않아. 주변의 시선이 나에게 용기 낼 수 없게 해
11. 습관적으로 '내가 좀 불편하고, 감정이 상하더라도, 내가 참으면 돼'라고 그동안 스스로를 길들여 왔어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긍정적인 감정이 들 때면 우리는 그 감정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흘려보낸다. 그런데 부정적인 감정은 남아서 나를 계속 힘들게 한다. 그래서 감점을 표현하기 힘든 이유를 물었을 때, 대부분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생각으로 치우쳐져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든 긍정적인 감정이든 비슷한 이유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결론적으로 ‘감정에 대한 이해’와‘내 감정을 경청하고 공감해 줄 상대방'이라는 두 가지 요인으로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감정에 대해 잘 몰라서, 그리고 그 감정을 누구에게 표현해야 할지를 몰라서였다.
(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 )
‘양가감정’이라는 단어는 내 감정을 용기 있게 표현할 수 있게 해 준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양가감정'을 이해하고 나서부터, 나의 마음은 홀가분해졌다. 독서모임을 하던 중, 선생님께서 각자의 양가감정에 대해 소개해 보라고 하신다. 내가 느끼는 대표적인 양가감정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하지만 항상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에 대한 나의 감정에 대해 소개할게요. 제 마음에는 엄마에 대해 '감사함'과 '미움'이 공존하고 있어요. 시집살이하면서 고생만 하셨던 저희 엄마는 제가 아이를 낳고부터 쭉 저희 아이들을 돌봐주고 계세요. 고향이 통영이라 격주로 오고 가고 하시면서요. 엄마의 희생이 없다면 저는 직장생활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말이죠. 저는 또한 엄마를 미워해요. 매일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다 보니, 저랑 맞지 않는 엄마의 행동과 말이 저를 힘들게 해요. 학창 시절 매일 저녁 아빠와 말다툼하시는 모습이 지긋지긋하고 싫었는데, 대학생이 되면서 그 삶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고, 아빠에게 향했던 엄마의 잔소리는 나와 아이들로 향하게 되었어요. 벗어나고자 했던 족쇄에 다시 발을 넣은 느낌이랄까. 점점 그런 상황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어졌어요"
"가끔 엄마랑 의견이 달라 다툴 때가 있다고 하면, 직장 동료들은 이구동성으로 '김 과장 어머니 같은 분은 없어. 김 과장은 엄마한테 정말 잘해야 해!'라고 해요. 그러면 저는 괴로워요. 엄마로 인해 힘든 내 감정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마음속에 꾹꾹 눌러지고만 있어요"
"그러다가 엄마가 고향에 내려가신 주말이 되면, 엄마한테 잘해야겠다 다시 다짐을 해요. 가끔 엄마가 보내주신 문자를 보면, 그래 어렸을 때 우리 엄마 고생 안 하게 해드리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그러면서 엄마에게 통영 집 불편하게 없는지 물어보고, 무심한 듯 에어프라이 하나, 청소기 하나 사드리곤 해요"
"아 이런 감정이 '양가감정' 아닌가요?"
모임에 참석한 멤버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러면서 다들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을 하나씩 풀어낸다. 이 경험은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그래,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이유는 양가감정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기 때문이었다.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다양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 감정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내 감정을 경청하고 공감해 줄 상대방 )
방금 말한 독서모임에서의 경험에서 내가 표현하고자 한 대상 감정은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이었고 감정을 경청하고 공감해 주는 상대방은 ‘독서모임 멤버들’이었다. 오래 묵혀있던 감정이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누그러졌고, 그 감정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도 보다 유연해졌다. 건강한 감정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내 감정에 공감해줄 상대방’을 찾는 게 무척 어렵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끊임없이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만, 많은 관계들이 각자의 필요에 의해 이용되기도 한다. 모임에서 경청하고 공감하기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정작 상대방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가급적 나는 모임에서는 들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이런 노력들이 그들에게 통한다면 그들도 나의 이야기게 귀를 기울여 주지 않을까. 내가 노력하는데도 상대방은 변함없이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라면 정리해도 되는 관계가 아닐까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감정을 경청해줄 누군가를 찾기 위해 나는 아래의 3가지 방법을 이용한다.
1.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고 마음이 잘 맞는 1인과 대화한다
나를 신뢰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상대방 한 명만 있어도 내 감정 생활은 건강할 수 있다. 당연히 2명, 3명이면 더 좋다. 그래서 내 기준으로 진실되게 좋은 사람이라면 평소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나 또한 그들을 신뢰하고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에게 긍정적인 지지를 해 주는 사람들이다. 배우자, 친구, 친한 동료들 중에서 이런 이들을 떠올려 본다. 여러 명이 떠올라 흐뭇하다. 내가 힘들 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나는 힘을 얻는다.
2. 나에게 들려준다
우선 글로 표현한다. 나에게 들려주는 글이다. 일기나 비공개 블로그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대화체로 써도 되고, 넋두리를 해도 좋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상대방이 된다. 나는 나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공감한다. 가끔 조언도 한다. 그렇게 나와 대화하면서 나의 감정은 정리되며 부정적인 감정은 누그러들고, 즐거운 감정들은 확장된다.
3. 또 다른 좋은 방법은 공개글을 쓰는 것이다.
공개 글을 쓸 경우, 누군가가 본다는 사실 덕분에 내 감정을 보다 객관적으로 조망해 볼 수도 있다. 감정에 취우 쳐서 놓쳤던 무언가를 깨달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를 힘들게 한 장본인이라 했지만 알고 보니 그의 선한 의도가 있었음을. 내가 무심코 행한 행동이 마찬가지로 그에게 상처가 되어 그를 힘들게 했었음을 깨달을 수도 있다.
나 또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처음에는 감정을 드러내길 망설였으나 이 제을 감정의 표현하는 매우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주변에 알리지 않고 혼자 몰래 운영하는 블로그가 제격이다. 나의 모든 감정을 표현하되, 글이라는 표현 수단을 이용하기에 정제된 감정으로 나타낸다. 내가 원하는 감정 표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