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을 하루 앞두고 남기는 기록

[나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_chapter2]

by 이진규
나뭇잎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빠르게 불었지만, 그 소리는 천천히 들렸다. 나뭇잎은 아주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온몸을 떨었다. 줄기 끝에서 나뭇잎은 아등바등 버티며 간절히 외치고 있었다. 그 소리는 솔직하고 순수했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 작은 몸짓이 내일을 기대하게 만든다.

‘잎사귀 말이야 담쟁이덩굴에 달려 있는 잎사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나도 가는 거야. 나는 사흘 전부터 알고 있었어. 의사 선생님도 너한테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도 떨었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홀로 버텼던 그 가냘픈 나뭇잎 하나는 배어먼 영감의 붓끝에서 탄생했다. 그것은 강인함의 상징이었다. 심한 폐렴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존시를 살렸다. 따뜻한 마음은 사람을 살린다.

보물은 먼저 발견하는 이의 몫이다. 어제도, 오늘도 나뭇잎은 조용히 속삭이며 소리를 낸다. 태평양을 떠도는 조각배처럼 거대한 바람 속에서 흔들리고, 흘러간다. 그러나 그 소리의 진정한 가치는 귀 기울이는 사람만이 알아차릴 수 있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되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듣게 된 순간, 하루는 새롭게 펼쳐진다. 매일 감사함이 넘친다. 그 마음을 담아 나는 병중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 느낀 감사함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마음속 보석함에 차곡차곡 담아두기로 했다.


창 밖에는 새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고 있다. 층층이 쌓여가는 눈을 바라보니 마음이 괜스레 따뜻해진다. 마치 켜켜이 쌓인 눈처럼, 내 일기장도 포근한 기록들로 가득하다. 눈이 멈추고 겨울이 끝나면 나의 병원 생활도 마무리되겠지. 그렇게 마지막 일기를 써 내려간다. 내일이면 퇴원이다.

[2015년 3월 11일]

싱숭생숭하다

정들었던 것들 과의 이별은 언제나 힘들다. 머물러야 할 땐 머물러야 해서 힘들고, 떠나야 할 땐 떠나기 싫어서 힘들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나조차 나 자신을 잘 모르겠다.

어제는 종이 접기에 성공했다. 조그마한 캐릭터 모형도 완성했다. 마지막 작업치료 시간에 발견한 자신감 한 조각이었다. 웅얼거리긴 해도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다. 혼자 화장실 걸어가는 것도 이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말 퇴원할 때가 온 것 같다.

시곗바늘은 느리게 돌아가지만, 내 가슴은 빠르게 뛴다. 내일이 천천히 달려왔으면 좋겠다. 따분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그려본다. 조용히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두드려본다.

퇴원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리스트.

첫째, 하루빨리 온전히 회복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받은 은혜 갚기.

둘째, 책 많이 읽기.

셋째, 영어공부, 성경공부 하기. 넷째, 교육 봉사활동하기.

그리고, 현재 내 몸 상태와 앞으로 재활 목표.

걸을 때 부자연스러운 팔다리,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눈 그리고 불분명한 발음.


10월 대학원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7월까지 병원에서 매일 하던 자전거 타기와 근력운동을 반복.

안되면 될 때까지.

‘진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쓰던 일기를 멈추고 노트북을 덮었다. 마지막 날이 다가왔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내 생각을 제자리에 멈춰 세웠다. 내 머릿속에서 그려본 미래와 실제로 마주할 미래가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작의 첫 발걸음은 언제나 떨리기 마련이다. 병원에서의 입원 생활이 연습이었다면, 내일부터는 실전이다. 나는 마치 첫 비행을 앞둔 새처럼 내일이 두려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노트북을 다시 켰다. 지금까지 써온 병중일기를 차례차례 훑어본다. 불과 한 달 전의 내가 낯설다.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했던 첫 일기 속 철없던 나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성장해 왔다. 그리고 단 한순간도 혼자가 아니었다. 나를 위해 애써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는 온화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똑바로 걷지 못해도, 눈이 잘 보이지 않아도, 대학원으로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다. 설령 내가 마주할 미래가 예상보다 훨씬 더 어둡더라도 괜찮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곳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다가올 내일이 기대된다.

문득, 언젠가 읽었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서 천사의 고백이 떠올랐다.

“그제야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이 주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

저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자신에 대한 걱정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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