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얼른 일어나! 나와서 아침 먹어!”

[chapter 3 하나씩, 하나씩 돌아오는 마법 같은 시간]

by 이진규


엄마다.

나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창가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처럼 눈부시고 따스한 목소리가 잠을 깨운다. 어린 시절 매일 들어왔지만, 오늘은 다르다. 목소리가 전해지는 공기의 질감이 달랐다. 차갑고 건조하지 않았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일상을 되찾았다.


식탁 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돼지 김치찌개와 노릇노릇 잘 구워진 통통한 삼치구이가 제일 먼저 보였다. 크고 작은 잡곡들이 골고루 담긴 고봉밥과 보기만 해도 아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싱싱한 배추김치에 기름기 좔좔 흐르는 짭조름한 김 반찬까지, 모두 내가 사랑하는 음식들이다.


돌아온 탕자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상다리 부러질 듯한 아침반상에서 엄마의 마음이 보였다. 쉽사리 수저를 들 수 없었다. 당연한 줄 알았는데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반가웠지만 반가워할 수 없었다. 쓰라린 마음을 부여잡고 오늘 같은 아침을 눈물로 기다려왔을 엄마의 안도와 행복이 느껴졌다. 나는 불효를 저지른 효자였다.


“진규야, 너 아침 먹고 오늘부터 아빠랑 집 앞에 산으로 갈 거야"


나보다 더 의욕적인 아빠의 눈에는 열정이 가득했다. 아빠는 어느새 내 새로운 트레이너 역할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아빠의 의욕이 너무 과한 게 아닐까 싶어 조금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기대감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아빠와 철없이 뛰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 속의 따스함과 활기가 지금의 셀렘과 두근거림으로 되살아났다.


흙을 밟는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땅 속에 움츠려 있는 생명의 기운이 발바닥을 타고 전해진다. 헉헉 대는 숨소리와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로 산과 나는 하나가 된다. 상쾌한 아침 산 공기를 깊게 들이쉬며 온몸을 채우고 나면 온몸의 세포가 잠에서 깬다. 기분 좋은 하루가 그렇게 시작된다.


산 중턱에는 여러 운동 기구들이 있었다.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무작정 올라탔다. 빙글빙글 돌며 사정없이 허리를 돌리고 다리를 양 갈래로 가로 짓기도 해 본다. 아빠는 혹여나 떨어질까 노심초사 걱정이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새장 속에서 풀려난 새처럼 자유로웠다. 움츠렸던 날개를 펴고 마음껏 뛰어다녔다.


“아빠, 내일은 농구하러 가자.”

“에이, 아직 안돼. 아직 눈도 완전히 안 돌아왔잖아”


한 달이 흘렀다. 이제 산을 오르는 일이 제법 익숙해졌다. 산 중턱에 설치된 모든 운동기구들에 한 번씩은 내 손 때를 묻혔다. ‘이제 농구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라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만류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농구공을 집어 들었다. 아빠와 함께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나는 어릴 적 말썽꾸러기 천방지축의 모습 그대로였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집 앞 초등학교의 아스팔트 농구코트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모래 위로 허름한 농구 골대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지나간 세월은 잡을 수 없고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학교 운동장도, 그곳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의 나도 그랬다. 그럼에도 자유롭던 예전의 내가 여전히 그대로였으면 하는 마음은 지나친 욕심이었을까. 나는 두 손으로 농구공을 들고 골대를 조준한 뒤, 있는 힘껏 던졌다.


농구공은 허공을 맥없이 날아갔다. 그물에 닿지도 못한 채 코트 구석으로 굴러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멋쩍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빠, 이 농구공 바람 빠졌네.”


이게 바로 현실이었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100점 만점에 60점이면 충분한 듯했다. 나는 농구공을 던질 수 있었고, 남은 40점 천천히 채우면 될 일이다. 필요한 건 단지 오늘을 마주할 용기뿐이었다.


결국,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내일도 모레도 나는 농구공을 던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골을 넣을 것이다. 반드시, 분명히 그럴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마음먹었으니까.




살다 보면 친해지고 싶어도 친해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음악이 그랬다. 음악을 향한 나의 구애는 끈질기면서도 애틋했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나는 피아노, 단소, 기타라는 이름으로 마음을 표현하려 애썼지만, 결과는 늘 잠깐의 스침으로 끝나곤 했다. 음악과 나는 언제나 사회적 거리 두기였다. 가까워지면 멀어지는, 마치 이루어질 수 없는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관계였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고들 했다. 모처럼 여유가 생긴 김에, 음악과 다시 한번 인연을 맺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집 근처 피아노 학원에 덜컥 등록하고,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서 미니 전자 피아노도 구입했다. 기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이번에도 음악과 가까워지지 못한다면, 그땐 정말로 피아노와 작별하겠다고 다짐했다.


“진규야, 너 왜 굳이 피아노를 치는 거야?”

“피아노 치는 게 병원에서 받던 작업 치료랑 제일 비슷하거든요.”

“그래? 그런 거라면 이렇게 열심히 할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사실, 피아노로 반주하면서 노래 부르고 싶어요. 누구나 그 정도 로망은 있잖아요.”


물이 차오르려면 먼저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마중물이다. 메마른 바닥이 조금씩 채워지고 물이 점점 차오르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누구나 마중물을 부어야 한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반드시 견뎌야 한다. 잃는 것 없이 얻는 것은 세상에 없다.


매일 세 시간씩 피아노에 매달렸다. 초등학교가 끝나는 오후 즈음, 떼로 몰려오는 초등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앉아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나보다 훨씬 잘 치는 아이들을 흘끗흘끗 몰래 지켜보기도 했다. 하지만 창피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나는 새롭게 태어났고, 이제 막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지나온 어린 시절 그대로, 한 걸음씩 차분히 밟아 가면 된다.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는 있었다. 슬프지만 사실이었다. 피아노를 칠 때는 즐거웠지만, 피아노 반주는 어려웠다. 기본 코드로 구성된 반주곡 한 곡을 간신히 완주했을 뿐이었다. 멈추어야 할 때를 알아야 멈출 수 있고, 그래야 나아갈 수 있다. 나는 나와 피아노의 인연은 여기에 묻어두기로 했다. 후회는 없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진심을 쏟았기에 미련도 없다. 이제 이 기억은 그저 아름다웠던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처럼.




“여보세요, 거기 OO수학학원이죠? 혹시 수학 선생님 구하시나요?”

“네. 맞는데요, 어디에 누구신가요?”

“저는 요 근처 중학교를 졸업하고 과학고등학교, 포항공대를 졸업한 학생입니다.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 구직 차 연락드렸습니다.”

“... 내일부터 출근하실 수 있나요?”


나는 집 근처 수학학원 여러 곳에 전화를 걸었고, 결국 수학 선생님이 되었다. 출근하자마자 교실 바닥을 빗자루로 쓰는 것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생들까지 다양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아이들에게 내 어색한 발음을 들키지 않으려 또박또박 말하려 애썼고, 아이들은 그런 나를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은 혼자 말하는 것보다 어렵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적절한 표정, 말하기 속도, 어조, 분위기, 그리고 자연스러운 제스처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특히 순수하고 예민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춘기 아이들 앞에서는 누구나 긴장하기 마련이다. 동시에 내게 가장 훌륭한 말하기 연습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언어치료실을 만들어 스스로를 그 안에 몰아넣었다.


왕관의 무게는 무거웠다. 아이들과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몰래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며 써 내려갔던 우리들의 이야기는 한 달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마치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나는 그들의 세계에 녹아들어 그들의 찬란한 순간을 함께 누렸다. 그 시간은 순수하게 빛나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걸었던 길을 다시 걸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 있다. 지나온 자리를 다시금 밟아보며 비로소 맛볼 수 있는 삶의 단맛이 있다. 내가 걸어온 길이라 누구나 겪는 평범한 시간이라고 여겨왔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 시간들은 인생에서 단 한 번 주어지는, 마음 깊숙이 간직해야 할 소중한 선물이었다. 고이 모셔두었다가 삶이 힘들 때마다 꺼내 위로를 받는 그런 선물말이다. 나는 그 선물을 또 한 번 받았다.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그 선물들은 내가 걸어온 길 위에, 잊지 못할 향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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