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신의 아들'이 되다.

[chapter 3 하나씩, 하나씩 돌아오는 마법 같은 시간]

by 이진규


“906호, 편지 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반가운 연락은 설렘을 가져다준다. 문득 집으로 날아든 편지나 택배는 그 설렘을 한층 더 크게 만든다. 막연한 궁금함이 주는 우리의 마음을 기대감으로 채운다. 이전에 받은 편지가 별것 아니었더라도 상관없다. 새해 첫날 솟아오르는 해를 보며 다가올 한 해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는 편지가 있다. 바로 입영통지서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슴 한 켠을 싸늘하게 만드는 그 편지가, 바로 우리 집 앞에 놓여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대학 시절, 몇몇 친구들은 1학년을 마치자마자 군대에 다녀왔다. ‘나도 곧 가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던 중, 선배들을 통해 대체복무요원제도를 알게 되었다. 국내에서 대학원 박사과정을 이수하면 병역 의무를 해결해 주는 제도였다. 학위 과정을 이수하면서 군 복무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매우 매력적으로 여겨졌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병무청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제일 먼저 키와 몸무게를 쟀고, 이어 혈액검사와 소변 검사를 받았다. 흉부 엑스레이를 찍고 심리검사에서 무난해 보이는 보기들을 골라 체크했다. 모든 과정이 끝난 뒤, 나라사랑카드를 손에 쥔 채 판정 결과를 기다렸다.


입시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순간, 한쪽에서 시큰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일 끝으로 가시면 됩니다.”


나는 현역 1급 판정을 받았다. 문 앞 탁자에 반쯤 누운 듯한 자세로 앉아있던 직원은 졸린 눈으로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1급입니다. 다음.”


순간, 마치 시험에서 만점을 맞은 것처럼 안도감이 스쳤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군대를 가야 한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왔다. 마치 특상품 도장을 이마에 찍힌 돼지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오늘, 내 손에는 "현역 1급"이라고 적힌 종이가 들려 있다. 나라의 입장에서 나는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20대 청년이었다. 국가의 부름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진짜 군대에 가야 하는 건가?’


들고 있던 종이처럼 내 머릿속도 새하얘졌다.


“신체검사 다시 받으러 가자, 진규야.”


아빠는 내가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신체검사를 다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아빠는 내가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부터 이미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다.


아빠가 데려간 거실 서랍 속에는 두꺼운 서류봉투가 놓여 있었다. 봉투 안에는 의무기록 사본이 한 뭉치 담겨 있었고, CD 서너 장도 함께 들어 있었다. 아빠는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틀 뒤, 나는 아빠 차에 몸을 싣고 광주로 향했다. 여행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다. 신체검사 같은 걱정은 차를 타는 순간 저만치 밀려났다. 창문 사이로 살며시 들어오는 봄바람이 내 마음을 간지럽혔고, 코끝에는 달콤한 꽃향기가 가득 번졌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결과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상관없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었다. 군대도, 삶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일을 사는 게 아니라 오늘을 살았다.


하지만 병무청 신체검사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조금 움츠러들었다. 대기실에는 이미 수많은 건장한 20대 남성들이 오밀조밀 모여 앉아 있었다. 분명 나보다 어려 보이는 얼굴인데도, 분위기는 전혀 앳되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만이 가득했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살벌한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특히, 화려한 동물들로 수놓아진 그들의 팔과 다리는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마치 맹수 무리에게 둘러싸인 한 마리 양이된 듯한 느낌이었다.


호랑이처럼 날카로웠던 그들이 의사 앞에서는 순한 양으로 돌변했다.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열에 아홉은 한쪽 무릎을 두 손으로 움켜쥔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자신의 차례가 오면,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 나가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것은 작은 법정이었다. 20대 청년은 스스로 피고이자, 변호인이 되어 얼마 전에 있었던 축구 경기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치열했던 경기 도중 상대편 수비수의 태클로 무릎을 다쳤다며, 이제 더는 뛸 수 없게 되었다고 십자인대 파열을 주장했다.


그에 맞서는 의사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검사이자 판사였다. 청년의 장황하게 늘어지는 이야기를 단칼에 끊으며 간단히 말했다.


“MRI와 진단서를 가져오세요.”


준비된 자료가 없던 청년은 당황해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이를 바라보던 의사는 옅게 미소를 띠더니, 아프다고 하는 쪽 무릎을 손으로 눌러보고 크게 외쳤다.


“다음 달에 머리 깎고 봅시다. 다음!”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지는 그곳은 숨 막히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나는 손에 땀을 쥔 채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며, 나중에 할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이진규 씨, 머리를 다치셨네요? 지금 약 먹고 있어요?”


이전까지 반복되는 신경전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한 의사는 심드렁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에, 이 쪽 머리르 수술 해씁니다. 약도 머꼬 이써요."


눈치싸움은 시작됐다. 나는 첫 순간부터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머리가 터질 듯 고민한 끝에 세운 전략이었다. 이 장면을 언어치료 선생님이 본다면 배신감에 몸서리 칠 정도로 실감 나게 연기했다. 나쁜 의도는 없었다. 그냥 몸이 이끄는 대로 따랐을 뿐이었다.


"에휴, 약을 계속 먹어야 해서 못 들어오겠고만. 자, 여기서 여기까지 한번 걸어보세요.”


의사는 내가 준비해 온 입원 기록과 MRI 자료를 넘겨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틈에 의사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어눌한 발음 연기가 제대로 먹혀들어간 것 같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을 차례였다.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뒤뚱뒤뚱 걷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걸을 법도 한데, 일부러 한 번씩 휘청거리며 넘어질 듯 위태로운 모습을 연출했다. 나는 관객 하나 없는 극장 무대 위에서 혼신의 연기를 펼치는 배우가 된 듯했다.


"... 이거 안 되겠네. 자, 그만하시고 이제 가시면 됩니다.”


연극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흰 가운을 입은 심사위원은 애초부터 내 몸짓 따위에는 큰 관심조차 없었다. 그의 시선은 줄곧 모니터 위에서 재생되는 CT 영상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마우스 휠이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낼 때마다, 그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져 갔다.


나는 눈치껏 걷기를 멈췄다. 아빠와 함께 아무 말없이 병무청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향하는 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바깥 햇빛은 쓸쓸하게 내리쬐고 있었고, 공기는 예상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때로는 죽기 살기로 노력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아무런 노력 없이도 뜻밖의 것을 얻게 되는 순간도 있다.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받을 때처럼 말이다. 우리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함께 살아간다.


“906호, 편지 왔습니다~.”


이틀 뒤, 나는 다시 집 앞에 놓인 편지를 열었다. 병역판정 재검 통지서였다. 종이 제일 아래 판정 결과 부분에 ‘1급, 현역’ 대신 ‘5급, 제2 국민역’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마디로, 군대 면제였다.


나는 그렇게 ‘신의 아들’ 이 되었다. 다시 말해, 군대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국가공인 약골남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무언가를 얻은 듯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잃었다. 기쁨의 끝자락에 아쉬움이 감돌았다. 내 마음은 석양이 질 무렵의 하늘 같았다. 붉은빛과 푸른빛이 섞여 있지만, 어느 한쪽도 우세하지 않은 채 무한히 이어지는 어스름의 경계처럼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얻었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낭비한 아까운 청춘이 한때는 너무나 억울했다. 다시 되찾을 수 없는 시간들이 아쉬웠다. 그러나, 모두 돌려받았다. 아니, 넘치게 되돌려 받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여전히 숟가락을 얹으려 했다. 내가 노력하고, 열심을 다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고 계획을 세운 뒤 실행에 옮겼다. 그래야만 주어진 결과 앞에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배웠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때로는 ‘얻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에도 부족한 삶을 ‘빌려’ 살고 있다는 것을.


받을 자격도, 스스로 얻을 수도 없는 나에게 넘치도록 주어졌음을 깨닫는 순간, 나는 진짜 ‘신의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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