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하나씩, 하나씩 돌아오는 마법 같은 시간]
나는 온 세상이 두 개로 보이는 세상에 살았다.
퇴원한 후에도 내가 보는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떨어진 물건을 집으려 할 때, 손잡이를 잡을 때, 젓가락질을 할 때마다 허우적거렸다. 글을 읽는 일은 예전보다 몇 배나 더 힘들어졌다. 몇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금세 어지러워졌다. 아직 갈 길은 멀었다.
그새 머리도 많이 자랐다. 빡빡 깎은 머리에 이제 겨우 익숙해졌는데, 어느새 더벅머리로 자라 있었다. 매일 산을 오르고 운동을 하며 팔과 다리의 힘이 강해진 만큼 머리카락도 자라났다. 이제는 다듬을 때가 됐다. 운동능력도, 머리카락도.
“엄마, 나 자전거 타고 미용실 갔다 올게.”
마침 오늘은 재활 메이트인 아빠가 없는 날이었다. 물체를 또렷하게 응시하면 하나로 보일 때도 있었다. 자주 다니던 미용실까지 거리는 5km. 조금만 조심하면 금방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도 엄마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절대 안 된다며 만류했지만, 나는 이미 신발 끈을 묶고 있었다.
자전거 타는 일은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 같다. 먼저 안장 위에 엉덩이를 올리고, 적당히 힘을 주어 균형을 잡는다. 눈과 귀로 입력받은 시각, 청각 정보를 바탕으로 순간순간 빠르게 의사 결정을 내린다. 그다음엔 팔과 다리가 나설 차례다. ‘움직여라’는 명령을 잘게 쪼개어 작은 근육들까지도 정교하게 조율해 낸다.
조화가 완성될 때 비로소 몸이 균형을 잡고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잠시라도 방심하는 순간, 중심을 잃고 와장창 넘어지고 만다. 마치 지휘를 벗어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엉망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쉬고 자전거 위에 올랐다.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온 내 엉덩이와 눈과 귀, 그리고 팔과 다리를 믿기로 했다. 내 지휘가 서툴더라도 그들은 제 몫을 넘치게 다 해줄 것을 믿는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한 몸이니까.
페달을 밟고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한 순간,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 연주는 마치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떠올리게 했다. 눈부시게 빛나는 푸른 하늘, 솜사탕보다 더 달콤한 구름, 어디선가 불어오는 꽃바람이 온몸의 세포를 살랑이게 했다. 살아 있음을 알리는 듯한 그 몸짓은 경쾌한 리듬을 타고 있었다.
연주는 조화로웠고 순조로웠다. 엉덩이는 들썩였고 팔다리는 미세하게 움찔거리며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선율을 만들어냈다. 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끝까지 집중을 유지했다.
연주는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저 멀리 목적지인 미용실이 보였다. 마지막 관문은 눈앞에 펼쳐진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그것만 넘으면 우리의 도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사람을 피했고, 마주 오는 승용차도 무사히 지나쳤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심호흡을 하고, 내리막길로 자전거를 내질렀다.
“어... 어…”
목적지를 단 1미터 남겨두고, 아쉽게도 연주는 갑작스레 막을 내렸다. 내리막길 끝자락에 움푹 파인 곳이 있었고, 순간 당황했던 내 눈에는 그곳이 두 개로 겹쳐 보였다. 속도를 줄여야 할지, 방향을 틀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찰나, 자전거 앞바퀴는 그곳에 박혀 회전을 멈추었고 나는 그대로 공중으로 솟구쳤다.
“어머! 어떡해, 어떡해!”
결국, 자전거 위에서 펼쳐지던 아름다운 연주는 빨갛게 물들고 말았다. 나는 고꾸라져 넘어졌고 양팔과 다리가 바닥에 쓸려 피가 뚝뚝 흘렀다. 미용실 아주머니는 창 밖에서 자전거가 공중으로 솟구치는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 뛰쳐나오셨다.
“저, 그래도 머리는 안 다쳤어요, 헤헤. “
아주머니는 나를 미용실 안으로 데려가 팔과 다리의 상처를 씻어내고 소독해 주셨다. 나는 민망함을 감추려 별거 아니라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얻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흉터를 지나칠 수 있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 흉터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그 흉터는 영광스러운 살아있음의 흔적이다.
한동안 내 팔과 다리는 거뭇거뭇한 딱지들로 얼룩져 있었다. 첫 자전거 도전은 명백히 실패였다. 하지만, 자전거 안장 위에서 펼쳐졌던 연주는 황홀했고, 미용실을 다녀온 내 머리카락은 예쁘게 정돈되어 있었다. 첫 술에 배부른 것만큼 재미없는 인생도 없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침대에 몸을 던져 이불속으로 쏙 들어갔다. 팔과 다리에 상처도, 살짝 놀랐던 내 마음도 푸근하게 잠들었다. 실패도, 상처도 반짝이는 조각이 되어 마음 한 구석에 조심스레 쌓였다.
“엄마!”
“응, 아들. 일어났어?”
“설마 오늘도 카레야...?”
다음 날 아침 메뉴는 또다시 카레였다. 엊그제부터였던가, 아니 그 전날부터였던가... 몇 끼째 마주하는 카레인지 이제는 세는 것도 포기했다. 엄마표 카레 냄새가 아침부터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가운데, 눈을 뜨자마자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나왔다.
그저 철없는 반찬 투정이 아니었다. 첫날 아침, 점심, 저녁까지는 먹을 만했다. 다음 날엔 김가루를 뿌려 변화를 줬고, 그다음 날에는 달달한 오징어채를 곁들여 먹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는 참기 어려웠다. 목소리에 힘이 실릴 때가 된 것 같았다.
‘오늘도 하루 종일 카레를 먹겠구나.’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반 위, 내 머리보다 큰 냄비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뚜껑을 살며시 열어보니 며칠을 그렇게 먹어댔음에도 누렇고 걸쭉한 그것이 여전히 절반 넘게 냄비를 채우고 있었다.
역시나 카레였다. 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조용히 냄비 뚜껑을 닫았다.
“어... 잠깐만...”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카레 위에 둥둥 떠 있는 건더기들이 둘이 아닌 하나로 보였다. 냄비 뚜껑도, 국자도, 내 손가락도 모두 하나였다. 더 이상 흐릿하게 겹쳐 보이는 세상이 아니었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온 세상이 제자리를 되찾은 듯했다.
“엄마, 나 이제 하나로 보여.”
흔들린 세상에서 지낸 지 어느덧 5개월이 흘렀다. 적어도 1년은 걸릴 거라 생각했다. 아니, 1년이든 2년이든 아무래도 좋으니 제발 원래대로 돌아오기만 바랐다. 평생 둘로 보이는 세상에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이 가장 두려웠다. 대학원에 다시 갈 수 있을지, 번듯한 직장에 다닐 수 있을지, 운전도 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지... 불안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불안이 내 마음 문을 두드릴 때마다 나는 눈 마사지기를 꺼내 들었다. 배터리가 닳을 때까지 눈꺼풀에 갖다 댔다. 누나와 마주 보고 힘껏 째려보기 연습도 했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야속한 현실에 울다 지쳐 잠든 날도 있었다.
그러나, 기적은 늘 가까운 곳에 있었다. 어느 것 하나 헛된 순간은 없었다. 조금 느린 듯해도, 조금 더딘 듯해도 아등바등 살아낸 하루는 밤하늘의 작은 별처럼 여전히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작은 빛들이 모여 가늠할 수 없는 오늘을 환히 밝힌다. 어두운 밤하늘에 쏟아져 내리는 별똥별처럼 말이다.
모든 일에는 실패와 성공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실패와 도전이 있다. 반복되는 도전과 실패 속에서 우리는 경험을 쌓고, 배우고, 성장한다. 그 과정이 충분히 쌓였을 때, 비로소 성공이 다가온다. 어쩌면 진짜 성공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오늘을 살아간다. 오늘은 농구를 하러 가야겠다. 어제보다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힘차게 달려야겠다. 그리고 도전을, 아니 실패를 멈추지 않아야겠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