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오조 오억 년 전, 친구가 남친을 군대에 보내고 고무신이 되어 내조하던 시절이다. 서방님의 안위와 무사귀환이 염원이었던 그 애가 나에게 다소 어려운 부탁을 해왔다. 남친에게 사진을 보낸다는 게 당시 유행하던 포토샵 사진관에서 나와 같이 찍은 사진이었는데, 하필 선임이 그걸 보고 얘(필자)를 소개해 달라 했다는 것.
젊은 시절의 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고(믿거나 말거나) 과학의 기술력과 조명의 매직이 조화를 부리었나니, 여자 구경하기 힘든 군인의 눈에는 좋은 연결고리의 찬스였을 테다. 어쨌거나 이등병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싸이월드 일촌을 수락하게 되었다.
알아보니 좋은 사람이었다는 전개면 지금 안방에서 코 고는 사람이 바뀌었을까. 일촌을 맺고 나서 병장님의 싸이월드를 훑어나가는데 아직 쌓지도 않은 오만 정이 떨어져 나간다. 신이 나서 내 사진과 방명록에 글을 다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가속 페달을 밟아주었다.
* 필자의 잘난 척이 절대 아님을 약간 경고하며, 심신이 미약하고 비위가 약한 사람은 다음 문단 읽기에 주의하거나 넘어가주기를 바란다.*
" 아우, 연애인 갗아요! "
" 쓰니애씨랑 일촌을 맷게 되어 좋읍니다! "
" 친하게 지내고 십어요!"
내가 지금 무얼 읽고 있는 거지.
저마다 '이건 못 참지' 하는 분야가 있지 않는가. 당시 필자는 꼴랑 새내기를 벗어난 2학년이었지만 국문학도로서의 알량한 자존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였다. 많이들 혼용하는 맞춤법의 문제가 아닌, 초등학교 받아쓰기 낙제자 수준의 한글 파괴범에게는 이건 못 참지를 넘어서는 이건 좀 맞자 해야 할까.
친구는 내게 밥을 샀고 간신히 절교를 막았다.
맞춤법과 어휘력, 문해력에 전례 없는 비상이라는 논평과 뉴스가 뜬다. '고지식하다'라는 말을 높은 지식을 가졌다'라고 한다거나 '중식 제공'을 '중국 음식을 제공'한다고 한다든가. '어이없다'를 '어의 없다'로 쓰고 '설거지'를 '설겆이'로 오용하는 것쯤의 실수는 귀엽기도 하다.
한 때는 맞춤법이 틀린 문장을 발견하면 고쳐주고 싶고 지적하고 싶은 마음을, 사력을 다하여 습, 습, 후우 심호흡법으로 다스렸지만 요즘엔 제법 내공이 생겼다. 아무렴 어디 뭐 사람 나고 문자 생겼지, 문자가 먼저 나고 사람 생겼나. 활자 좀 깨쳤다 해서 으스댈 만큼 대단한 高 지식이 아니다.
자, 그렇다면 그다지 높은 지식은 아니니까 배울 건 배우고 가자는 잔소리는 바로 이 타이밍에!
책을 좀 읽어라, 숏츠 대신 활자를 좀 읽어라, 그런 잔소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건대 감히 삼가야 하는 소리라 다시 쑥 집어넣고 시작하겠다. 다만 사소하고 쉬운 맞춤법을 틀리는 문제에 관하여서는 일침을 놓겠다.
사람 나고 문자 생긴 것이 백번 타당하여 작은 실수가 사적으로써는 매우 용납 가능하지만 공적으로는 흠이 되고 질타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자료를 만들면서 쉬운 맞춤법을 틀린다면 공신력이 어찌 그곳에 깃들겠는가.
그러니 인터넷 뉴스라든지 지나가는 잡지든지 그게 무엇이든, 정식 출판사를 통하여 인쇄된 문장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올바른 문장을 만났을 때 나의 구멍을 깨우치고 메우려는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띄어쓰기란 필자도 여전히 어려운 문제고, 맞춤법 또한 검사기를 돌려야 하는 아리송한 단어가 수두룩 존재하지만, 단 한 페이지를 읽더라도 집중해서 읽는 노력이 필요하다.
싸이월드는 이제 사라졌지만 적어도 톡이라든가 인스타 DM을 통해 까일 확률이 줄어들어 성공할 당신의 연애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