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설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서리 Feb 27. 2023

어떤 여정#4

드디어, 이 사람의 멍한 생활에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 이 사람은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생활 이전부터 이 사람은 의미 없는 것들에 곧잘 중독되고는 했다. 이런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그 정도의 행동도 하지 않기는 했지만. 이제 이 사람의 하루에는 자리에 누워있는 시간보다 앉아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고개를 모니터 쪽으로 쭉 빼고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한참을 게임을 하다 눈이 너무 피로하여 뜨고 있기도 힘들 정도가 되면 잠을 청했다. 바닥난 체력에는 이 정도 활동도 무리인지 눕자마자 잠에 들었다. 그리고 깨어나면 다시 게임을 했다. 낮과 밤의 경계도, 오늘과 내일의 경계도 없었다. 이렇게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이 사람의 삶에 무의미한 시간이 흘러갔다. 게임을 통해 이 사람의 삶에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취미로서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것도 아니었고 직업으로서 수입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시간을 조금 더 빨리 흘러가게 할 뿐이었다. 


이 사람은 새삼스레 자신이 유독 더 싫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이 날은 어쩌다 시간대가 맞아 아침에 눈을 떴다. 전날 게임을 너무 열나게 한 탓인지 여전히 피로하여 더 잘까 고민을 했다. 그러나 간만에 아침에 눈을 뜬 것이 아까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일어나 봤자 할 것은 게임뿐이었다. 아주 새삼스럽게 자신의 삶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갑자기 무기력의 파도가 아주 거세게 이 사람을 덮쳤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단순한 행동을 반복하기만 하는 게임을 계속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생각할 것도 별로 없었다. 자신이 게임을 계속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명백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자리에 계속 누워있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으니. 이 사람은 새삼스레 자신을 쓸모없다 비하하며 이불속으로 숨었다. 아침의 햇살이 괴로웠다. 밝은 빛은 자신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스스로가 수치스러웠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는 다른 행동을 실천할 에너지가 여전히 부족했다. 이 사람은 이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여정#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