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강 Dec 19. 2024

기도와 전단지

무엇을 빌고 있을까

      

    

늘 지나치던 전단지 중에 하나였다. 대문과 문틀 사이에 단단히 꽂혀있는. 그날은 바로 폐지함에 버리지 않고 탁자 위에 놓았다. 죄 사함을 받으면 행복하다. 일어나는 순간부터 머릿속에 죄를 많이 지은 날이었다. 내용을 찬찬히 읽었다. 사마리아 여자가 우물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죄 사함을 받은 이야기.

아빠는 한 달에 한 번 가족 대화방에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나 저명한 신부님의 강론을 올렸다. 우리가 세례를 받은 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냉담 중인 우리를 주님 곁으로 불러오려는 나름의 소극적인 전도였다.      


30년 전 그쯤엔 엄마의 산달이 다가온다는 것만 빼면 여느 날과 같은 날이었다. 매일 늦는 아빠가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보다 작은 가죽 책자를 들고 오는 날이 많아진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아빠는 텔레비전 옆에 초를 켜고 손을 모으고 앉았다. 얇은 아빠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중얼거리는 소리와 작은 말소리가 뒤섞였다. 아빠는 우리를 위해. 죄를 많이 지었던 걸까. 아빠의 기도는 책 한 권이 다 넘어갈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그을음 냄새가 열어놓은 방 안으로 들어올 때쯤. 아빠는 거실 불을 탁 껐다. 눈을 감고 누워만 있던 나는 오늘 내가 지은 죄에 대해 생각했다. 숙제를 안 해 간 것. 수학시험에서 7개나 틀린 것. 엄마가 심부름 보낼 때 속으로 짜증이 났던 것.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언니가 미웠던 것. 해도 해도 생각이 계속 났다.


아빠가 매일 밤 속죄하며 비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모른다.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의 아빠 나이가 되자 알게 되었다.


평안하기를. 아무 일 없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늘 어제와 오늘이 내일 같기를.      


전도 전단지를 보고 아빠를 떠올린 건 종교를 믿기 전의 아빠와 그 후의 아빠가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른손에 묵주알을 언제 어디서나 돌리는 사람. 할아버지의 죄를 대신 빌고 있는 사람. 남묘호랭개교를 믿었던 할머니를 연옥에서 구하고 싶은 사람.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 자식의 건강을 비는 사람. 그러나 말로 할 용기가 없어 기도를 하는 사람. 아빠의 기도 속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그 사람 중에 하나인 나는 아빠를 위해 빌어주고 싶다. 건강하라고. 우리를 위해 건강해 달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