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간이 타들어 가고
엄마 아빠를 만나는 날은 한 달에 두 번 또는 세 번, 어느 때는 한 번. 너무 오래 안 봤나 싶으면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는다. 너무 자주 봐도 너무 안 봐도 마음이 껄끄럽다.
엄마 아빠를 도로변에서 기다린다. 가게 앞에 보도블록이 파헤쳐져 있다. 안전모를 쓴 남자들이 땅을 고르고 보도블록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작업이 한창이다. 낮은 구름이 지나가고 햇볕이 그림자를 만든다. 낮은 빌라들이 밀집된 동네에는 한낮에도 주차 자리가 없다. 가게 옆 골목에서 은색 차 한 대가 빠져나간다. 곧 아빠가 운전하는 차가 골목으로 우회전해 들어온다.
가게 안은 열기와 습기로 끈적인다. 셀프바를 오가는 사람과 고기를 뒤집는 사람,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 아빠가 셀프바를 오가며 엄마가 시키는 대로 채 썬 양파와 김치를 가지고 온다. 냉장고에선 고기들이 포개져 누워있다.
연기가 무럭무럭한 서서갈비집에서 우리는 갈비를 먹고 엄마는 돼지껍데기를 시켰다. 양철로 된 의자가 자꾸 한쪽으로 기울었다. 까치발을 하고 나는 고기를 구웠다. 양념에 재운 갈비를 뒤집어주지 않으면 쉽게 탔다. 집게로 고기를 뒤집으면 엄마는 타들어가는 돼지껍데기를 아쉬운 듯 바라보았다. 엄마는 고기보단 부속을 좋아했다. 막창, 곱창, 돼지껍데기. 쉽게 타버리는 것들이었다.
돼지껍데기가 탄다. 엄마는 젓가락으로 돼지껍데기를 뒤집었다. 튀어올라 스스로 뒤집어지는 껍데기를 아빠가 엄마의 앞접시에 놓아준다. 노릇노릇하고 가장자리가 탄 돼지껍데기는 콩가루에 묻혀져 입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여전히 갈비를 뒤집었다. 숯불이 세서 우리는 “탄다, 탄다.”를 여러 번 말했다. 고르지 않은 고기의 표면은 어디는 타고 어디는 설익었다. 아빠는 엄마를 챙기느라 젓가락 대신 집게를 들었다. 그리고 자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씩 고기가 사라질 때마다 상추가 떨어지고 콜라가 줄고, 김치가 바닥을 보였다. 엄마는 자꾸 더 먹으라고 말했지만, 나는 탄산음료를 네 잔 마셨다. 우리가 먹은 자리에 까만 마늘과 점점이 떨어진 양념 국물 잔반의 흔적이 남았다.
콧등에서 땀이 나고 목덜미가 화끈거렸다. 한여름의 열기와 숯불이 가게 안을 데우고 있었다. 한여름의 백사장처럼 뜨겁고, 억지로 휴가에 끌려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서둘러 가방을 메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했다. 아빠가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가방을 멘다. 우리는 가게 앞에서 아빠를 기다린다. 밥을 먹는 사이 가게 앞 보도블록이 새로 깔려있었다. 아빠가 오른손에 핸드폰을 들고 나온다. 허리가 15도쯤 굽은 아빠가 가게 유리문을 연다. 엄마 아빠와 헤어져야 할 시간.
“잘 가. 다음에 또 만나.”
언제가 될지 모를 약속을 한다. 새로 산 플리플랍, 엄지발가락과 두 번째 발가락 사이가 쓰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