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스께끼

여름과 가을의 어디쯤에서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며

by 빨강


버찌가 바닥에 짓이겨지는 계절이었다. 나뭇잎이 무성해 학교로 오르는 길에 그늘을 드리웠다. 우리는 버찌를 따 먹으며 학교로 가는 언덕을 올랐다. 학교에서 방학 특강이 있는 날이었고. 우리는 아침부터 하교할 때까지 졸렸다. 방송실에 모인 우리는 꾸벅꾸벅 졸며 국어 선생님의 문법 특강을 들었다. 사이시옷의 쓰임새 형용사와 부사의 띄어쓰기.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무의도는 바람이 살랑살랑 일었다. 모래는 곱고 부드러워 발이 빠졌다. 모래밭에서 선녀가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바람이 일 때마다. 모래에 물결무늬가 새겨졌다. 바람은 사람들의 발자국을 빠르게 지워나갔다. 저 멀리 갯벌에서 사람들이 맨발로 걸어 나왔다. 물이 붉은 옷을 입은 여자의 발등을 쓸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긴 해안선을 따라 타박타박 걸었다. 놀란 게들이 동글동글하게 갯모래를 파고 구멍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조그만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긴 다리가 기암절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어떤 바위는 거북이를 닮고 어떤 바위는 보살을 닮아 있었다. 긴 다리를 건너 가자 아이스케키를 파는 남자가 목청을 높였다. 바닐라 아이스케키의 값을 치르고 봉지를 뜯어 한입 베어 물었다. 이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우리는 그날도 책에 고개를 파묻다시피 했다.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사 온 건 그때였다. 바 아이스크림이 검은 봉지 끝에 튀어나와 있었다. 우리는 환호를 지르며 아이스크림을 앞다투어 집어 갔다. 아이스크림은 혀에 닿자 빠르게 녹아내렸다. 혀로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그 여름을 견뎠다.


바닷바람이 아이스케키를 더욱 굳게 만들었다. 한입 베어 물때마다 녹아 사라지던 아이스크림을 떠올렸다. 그 여름이 한창이었던 것처럼. 이 가을도 한창이다.

멀리 갯벌에 정박한 파란 어선이 보였다. 곧 물이 차면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을 배가 추워 보였다.




keyword
화, 목 연재
이전 08화숯불 위에서 타들어 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