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술의 밥을 꼭꼭 씹으며
숙소를 나와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작은 가게와 낮은 집들이 까치발을 하면 그 너머를 보여주었다. 웅크린 집들이 모여 앉아 나물을 다듬으며 수다를 떠는 것 같기도 했다.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곧은 길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관성처럼 굽이굽이 흘러갔다. 바다를 향해 곧게 뻗은 해안도로가 나왔다. 오른쪽에는 덤불이 왼쪽에는 바다가 철썩철썩 갯바위 미끄럼틀을 탔다. 작은 물방울들이 현무암 구멍으로 들어갔다가 한꺼번에 물줄기가 되어 흘러내렸다.
바람이 우리의 머리칼을 헤집어 놓고 손빗질을 해서 가라앉혀 놓은 머리칼을 다시 헤집어 놓았다. 머리카락이 공중에서 엉켰다가 풀어지고 그 사이사이를 바람이 파고들었다. 바닷물에 절어놓은 배추 냄새가 옷에 스몄다.
해안도로가에 <밥때>라는 입간판이 보였다. 길 끝에 따뜻한 한 상이 차려져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뚜벅뚜벅 걷는 길에 덤불 속에서 차에 치인 노란 고양이 사체를 보았다. 갈매기가 낮게 빙글빙글 돌며 날았다.
낚시는 하는 사내들이 낚싯대를 바다를 향해 던졌다, 감아올렸다. 양동이에는 반쯤 찬 물이 찰랑찰랑 흔들렸다. 바위에 비스듬히 선 사내들의 알록달록한 옷들이 선명한 점이 되었다가 사라졌다.
말린 생선들이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가게가 나타났다. <밥때> 빨간색으로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가게 안에서는 생선 튀기는 냄새와 고기 볶는 냄새가 났다. 우리는 차례차례 가게로 들어갔다. 넓은 접시를 받아 들고 수저를 챙겼다. 밥을 푸고 반찬을 덜고 생선 한 마리씩을 집어 올려놓고 뭇국을 들고 넓은 식탁에 앉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국을 한술 입에 넣었다. 달큼한 제주도의 무맛이 입안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별말도 없이 먹는 한 상의 밥이 찬바람의 기운을 녹였다.
생선가시를 바르고 쌈장에 찐 양배추를 먹고 밥 한술을 씹어 삼켰다.
우리의 여행이 이런 밥 한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함덕 해안도로를 걸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정해진 일상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며 그 안에 또 행복과 슬픔이 있다. 그걸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밥을 꼭꼭 씹어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