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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김치

엄마 냄새가 그립지 않다

by 빨강


부추김치를 담갔다. 닦아내고 닦아내도 손에서 피어오르던 양념의 냄새. 어느새 내 손끝에도 배어있는 생활의 냄새.


퇴근길의 버스는 8분을 기다려야 했다. 한 번에 가는 버스는 그것뿐이라 버스정류장 벤치 끄트머리에 무거운 가방을 올려놨다. 버스가 오는 쪽으로 고개를 쭉 빼다가 휴대전화의 톡을 확인했다. 세일한다는 인터넷 쇼핑몰. 보이스피싱을 주의하라는 은행. 한 시간만 1+1 이라는 샌들. 무작위로 보내진 이상할 것 없는 톡이었다.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보니 버스 번호 옆에 3분. 저상버스 혼잡. 사람들은 가방을 메고. 정차하는 버스를 올라타고. 사라졌다. 날씬한 여자가 크롭탑을 입고 큰 가방을 메고 있는 게 활력 있어 보였다. 그 옆에선 할머니 할아버지가 바퀴 달린 시장 가방을 끌고 차도에서 서성였다. 버스 곧 도착이 뜨고 나도 가방을 들고 끝차선 대열에 들어갔다. 역시 버스는 혼잡했다. 가방을 어깨에 걸고 나서야 사람들을 비집고 의자 손잡이를 잡을 수 있었다. 다행히 다다음 정류장에서 사람들 반이 내렸다. 검은 비닐봉지를 무릎에 올려놓은 아줌마 옆에 좌석이 생겼다. 아줌마의 무릎을 스쳐 앉으니 좀 살 것 같았다.


버스는 정거장마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고. 앞문이 열리자 출입구가 소란스러웠다. 작은 아이 두 명이 조잘조잘 떠들며. 버스에 소리를 채웠다.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내 뒤쪽의자에 앉았다. 어느 아저씨가 선뜻 자리를 양보했다. 아저씨는 버스의 진동에 흔들리면서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나 창밖 보고 싶어. 언니 자리 바꿔 줘.

싫어.


창밖을 볼 것도 아니면서 무조건 동생의 말에 싫다고 하는 언니. 창가 안쪽에 앉은 아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창문의 높이.

언니가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자 언니의 매몰찬 대답도 잊고. 곧, 동생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작은 자매가 채우는 이 노래는 버스의 진동에 따라 멈췄다. 시작됐다. 노래를 다 부른 작은 아이가 말이 없다. 내 신경이 머리 뒤쪽으로 가 있었다.


왜 자꾸 냄새 맡아.


자매의 엄마가 말한다.


엄마 냄새가 좋아서.


킁킁 소리 내어 버스 한가운데서 맡아보는 엄마의 냄새. 낯선 곳에서 안정감을 주는 엄마의 냄새.


언니와 나를 시장 입구에 있는 풀빵 할머니게 맡겨 두고. 시장 안으로 사라지던 엄마의 손 냄새가 생각났다. 양념 냄새와 로션 냄새가 섞여 있던 짭짤하고 매큼하고 향기롭던 그 냄새.


나는 잠시 자매의 동생이 되어 본다. 엄마 냄새. 자꾸 그리운 냄새. 자꾸 맡고 싶은 냄새. 살아있다는 냄새. 내 손끝에서 나는 부추김치 냄새를 맡는다. 손톱과 손끝 사이에서 나는 매큼하고 짭짤한 냄새.

엄마의 손과 나의 손이 겹쳐진다. 이제는 더 그립지 않은 엄마의 냄새. 날마다 그리웠던 엄마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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