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강 Dec 17. 2024

유모차 할머니

라이브카페에선 지나간 노래가 흘러나오고


언덕길에서 검은 유모차 한 대가 천천히 길을 내려온다. 유모차 손잡이 너머로 머리가 반쯤 걸터앉아 있다. 자글자글한 이마의 주름이 요동친다. 어두컴컴한 양손에는 검버섯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어두운 밤 유모차는 어디를 가는가.


유모차에 차곡차곡 실린 파지. 트리오 골판지 위에 피자 박스가 그 위에 감자칩 골판지가 들쑥날쑥 삐져나와 있다. 큰 길가 버스정류장에 유모차를 세워놓고 할머니는 도롯가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파지를 주우러 간다. 우그러진 파지가 유모차에 실린다.


늦은 밤 산책을 나온 사람들. 집으로 가는 사람들. 만취한 사람들 사이로 할머니의 유모차가 간다. 라이브 카페에선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오고. 절절함 속에 할머니의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번쩍이는 네온사인 밑 출입구에서 취한 남녀가 어깨동무를 하고 나오고. 버스정류장 의자에서 한숨을 돌리는 할머니의 발은 땅에 닿지 않는다.


연이어 버스가 온다. 사람들이 떠나는 자리에서 흔들리는 할머니의 파란 슬리퍼.

프릴이 가장자리에 달린 장미꽃무늬 앞치마. 할머니의 앞치마가 반으로 접힌 자리에 얼룩이 노랗고. 빨갛고. 검다.


버스에서 한차례 사람이 내린다. 할머니는 까치발로 의자에서 내려온다. 가만히 서 있는 유모차에 두 손을 얹고 천천히 민다. 유모차의 바퀴가 보도블록에 두들두들한 자리를 지난다. 파지들이 들썩거린다. 할머니가 지나간 자리를 그림자가 따라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