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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저 혼자 팔랑팔랑

by 빨강 Dec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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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병동 앞에서 A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A가 링거병을 끌고 나타났다. 여름인데도 회색 비니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 위로 검버섯이 올챙이 알처럼 피어있었다. 우리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야윈 손을 보는 내 눈길에 자기 손뼈가 이렇게 생겼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깔깔거렸다. 손가락 마디마다 손 보조개가 들어가던 통통했던 A의 손이 바로 떠올랐다. 마디마디가 푸르스름했다. A는 손재주가 좋았다. 병원에서의 생활이 한 달 두 달 늘어가고 그것마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먹먹해서 목이 자꾸 메였지만 헛기침으로 눌렀다. A 앞에서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둘이 끌어안고 우는 건 왠지 다 포기한다는 말인 것만 같았다. 최대한 우리는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농담을 했다. 병실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의 흉을 보았다. 얼마 남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 꾹꾹 눌러 담았다.

 

차 시동을 켜자, 웅웅거리는 소리가 차 안을 흔들었다. 차창 밖이 뿌옇게 번졌다. 차의 진동을 느끼며 그대로 앉아있었다.


도로를 달리자 차 안은 뜨거운 햇볕으로 달아올랐다. 왼쪽 볼과 목덜미가 뜨거웠다. 차는 가다 서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국도 한편에서 옥수수와 냉커피를 파는 차량이 정차되어 있었고, 사람들의 손이 창문을 빠져나와 노점 상인을 불렀다.


그때 흰 나비 한 마리가 팔랑팔랑 도로를 유유히 건너고 있었다. 정차된 차들 사이에서 저만 홀로 팔랑팔랑.

정차 된 차 보닛에 앉았다가 헤드라이터에 앉았다가 차 지붕에 앉았다가. 내 쪽으로 와서 차창 앞을 서성였다. 한참을 앉을 곳을 찾아 팔랑팔랑 거리더니 불어오는 바람에 날려 와이퍼에 날개가 껴버리고 말았다. 우아하던 날갯짓이 거세지고 쉼 없이 파닥거렸다. 날개 끝이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나비는 날아오르려는 날갯짓을 했다.


나비야 살아라.


오른쪽 와이퍼 쪽을 쳐다보며 핸들을 두드렸다. 쉼 없는 날갯짓이 애처로워 보였다. 차가 앞으로 조금씩 나아갈수록 처절한 날갯짓이 아득해 보였다.

그때 깨진 아스팔트에 바닥에 바퀴가 빠져 차체가 흔들렸다. 나비는 흔들흔들 거리더니. 열심히 파닥거리던 날갯짓으로 와이퍼에 붙잡혔던 날개를 빼냈다. 수만 번의 날갯짓으로 스스로를 구해낸 나비. 크게 날갯짓을 하는 나비. 안도의 숨이 내쉬어졌다. 나비는 도로 위를 벗어나 나뭇가지 사이로 멀어졌다.


차 안에 달궈진 공기를 마시며, 나뭇가지에 쉬었다가 배추밭으로 날아갈 나비를 떠올렸다. 나비를 하나도 닮지 않은 애벌레가 나비를 닮을 때까지 무사했으면 좋겠다고. 길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혹시나 찻길로 나와 쌩쌩 달리는 차에 놀라 날개를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에 뒤집어 진 이파리들이 천 개의 나비떼처럼 보였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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