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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강 Dec 05. 2024

구둣방

닳아 사라지지 않는 시간



스팽글이 앞코에 빽빽하게 박힌 구두는 대형마트 에스컬레이터 옆 촘촘히 진열된 구두들 사이에서 반짝였다. 반짝이는 구두는 내가 진창을 밟아도 반짝였다. 구두를 신고 횡단보도에 서 있으면 꼭 한 명쯤 구두를 어디서 샀느냐고 물었다. 화려한 외관과 다르게 구두 속 사정은 너덜너덜했다. 발가락이 닿는 부분과 앞축 뒤축이 닳아서 수선을 하거나 버려야 했다. 그러나 떨어진 스팽글만큼 남은 스팽글이 반짝임으로써, 빈틈을 메워주었고 여전히 반짝이는 구두였다. 발등은 낮고 엄지발가락이 긴 칼발을 아름답게 해주는 구두였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구두 굽이 닳아 발이 안쪽으로 쏠렸다. 반짝이는 구두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구둣방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러 갈 때마다 본드 냄새, 구두약 냄새가 나던 곳이었다. 구둣방에는 검지 중지를 감싼 천으로 구두에 광을 내는 노인이 꼬박 여덟 시간을 앉아 있었다.

구둣방 앞에서 안을 살폈다. 짧고 흰 머리카락의 자그마한 노인이 다 서지도 못할 공간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노인과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노인은 구두를 받아 들고 안쪽과 바깥쪽을 살폈다. 다 닳아빠진 밑창을 보더니 고무판에 구두를 대고 고무판을 쓱쓱 자르기 시작했다. 앞창과 뒤창이 갈려 나가고 노란 본드가 발렸다. 우리에게는 본드가 마를 때까지의 시간이 주어졌다.      


요즘은 구두 고쳐 신지 않는데 아끼는 구두인가 봐요.

구둣방은 오래 하셨어요?

가족 다 먹고살았지요.      


노인은 본드가 묻은 고무판을 신발 앞창에 대고 꾹꾹 눌렀다.      


아내랑 같이 출퇴근하다가 혼자 온 지 몇 년 되었습니다. 그때가 좋았지요.


노인은 구두 밑창을 구둣솔로 쓱쓱 쓸었다. 잠깐 노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떠나간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색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구두는 새로 지은 것처럼 돌아왔지만 내가 밟고 다닌 시간은 저 멀리 가버렸다. 그 시간을 딛고 새로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뿐. 시간이 지나도 닳지 않는 것들이 있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다 구둣방 앞을 지나가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노인의 앉은 자세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는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서너 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인사를 하는 사이 타야 하는 버스가 지나가고, 다음 버스를 기다린다.

8차선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일제히 붉은 등을 켜고 정차한다. 횡단보도의 파란불이 깜박, 깜박인다. 25초, 짧고 긴 시간이 지나간다. 무리의 사람들이 구둣방 앞을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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