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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나물

간절기의 맛

by 빨강



회사가 밀집해 있는 지역은 밤이 되자 텅 비었다. 대형물류센터로 탑차가 들어가고 나왔다. 사람 소리가 사라졌다. 교회 십자가만이 홀로 거대하게 빛났다. 가로등 밑에 붉은 음식물 쓰레기가 점점이 떨어져 있다. 가까이 가자 능소화꽃이 떨어져 오가는 차바퀴에 짓이겨진다. 멀리서 봤을 때와 가까이 갔을 때 전혀 다른 경우가 있다. 꽃이 지면 쓰레기가 되는 건지, 처음부터 피지 말아야 할 곳에 피어난 건지 알 수 없다.



가지는 모종 하나만 심어도 다섯 개 이상의 열매를 매단다. 보랏빛 가지에서 보라색 가지가 길게 늘어트려져 있다. 식물의 뿌리에서 어떻게 진한 보라색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는지 모른다. 백일홍이 어떻게 색색의 꽃들을 피워내는지 모른다. 여름이 이토록 많은 생명을 찬란하게 하는지 나는 모른다.


가지를 길게 사등분하고 다시 반으로 잘라서 찜기에 넣는다. 김이 오르는 찜솥에서 쪄진 가지는 보라색과 갈색의 중간이 된다. 채반에 펼쳐 놓고 식기를 기다린다. 성질이 급하면 손이 델 것을 감안하고 먹기 좋은 크기로 손으로 찢는다. 반으로 가르자 한여름에도 김이 펄펄 난다.



그릇에 국간장과 마늘, 파, 홍고추, 깨, 참기름을 넣고 찢어놓은 가지를 넣는다. 손으로 보드랍고, 점성 때문에 달라붙는 가지의 속살을 살살 버무린다. 온기가 있을 때 버무려야 간이 나물에 더 잘 벤다. 여름의 반찬 하나가 완성된다.


여름은 나물의 계절이다. 열매나 활짝 핀 잎사귀를 데치고 찌고 볶아서 여름의 기운을 먹는다. 그 안에 이글이글한 여름이 꽉 차있다. 여름의 반찬은 더워만지는 여름을 날 수 있게 해 준다.


하늘이 낮고 어두워진다. 검은 구름이 건물 위로 드리운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하늘에서 난다. 날카로운 번개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 꽂힌다. 비가 쏟아진다. 갑자기 폭우로 변한다. 피할 새도 없이 길바닥이 냇가로 변한다. 하수도구멍으로 물줄기가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간다. 하늘이 맑아진다. 젓은 가로수 잎사귀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젖은 신발에서 쩍쩍 소리가 난다. 바람이 시원하다. 빗줄기에 떨어진 나뭇잎이 바닥에 납짝 붙어있다. 가장자리가 잎줄기를 따라 노란색으로 번져 있다. 가을이 잠깐 왔다 갔다. 여름이 천천히 가고 있다.





그동안 여름의 맛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무한한 감사를 전합니다. 다른 연재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님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모두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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