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평소와 다름없이 식탁에 둘러앉은 허기를 달래며 음식을 먹거나 각자의 하루를 이야기 하는 평범한 저녁식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 나 학교 안 다닐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하게 내던진 딸의 한마디!
너무 담담해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느낌이 들어 나는 내 귀를 의심이라도 하듯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뭐라고?"
순간 집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갑자기 자연스럽게 흐르던 시간이 멈추는 것처럼 느껴졌고, 달그닥거리며 그릇 부딪치는 소리 음식을 씹던 소리 등의 모든 소음도 일순간에 제거되었다.
마치 진공청소기로 모든 것을 빨아당긴듯 공허하게 느껴지는 단 두마디의 대화였다.
“무슨 일있었어?”
나는 애써 차분하게 물었다. 하지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 아니, 갈 이유를 못 느껴. 그냥 안 갈래.”
딸의 얼굴을 바라봤다. 장난기 없는 표정, 흔들리지 않는 눈빛. 가볍게 흘려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이유를 더 묻기 전에 감정이 앞섰다. 딸의 말이 마치 폭탄처럼 가슴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이 폭탄 한방 크게 맞고 와장창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무너지면 안될 것 같았고, 저 폭탄을 그냥 맞고 있으면 안될것 같았다.
그 폭탄을 피한다는 나의 방법이란 고작,,,
"안돼! 얘가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거야?"였다.
딸은 조용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차분한 모습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딸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입술을 두어번 달싹였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밥도 먹지 않고 그대로 일어서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날 이후 굳게 닫힌 방문은 좀처럼 열릴 줄을 몰랐고, 딸은 "자퇴"라는 폭탄을 떨어뜨림으로 우리 집에 "불행"이라는 불청객을 우리 앞에 밀어놓고 방문을 닫은 채 자기의 세계로 사라졌다.
그날 이후, 우리 집에 찾아온 불행은 점점 더 몸덩이를 키워갔다.
불행이 헤집고 다니는 우리 집 구석구석은 빠르게 얼어붙었다.
나는 매일같이 딸아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 설득했고, 때로는 화를 냈다.
왜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려는 건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하지만 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쳐 보였고, 깊은 우물처럼 고요했다.
남편도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우리 사이를 오갔다.
아침이 오면 나는 두려웠다. 오늘은 또 어떤 대화를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나름대로 괜찮은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나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어느 날은 딸과 크게 다투기도 했다. 소리치고, 울고, 감정을 쏟아부었다. 딸도 울면서 외쳤다.
“엄마는 내 마음을 몰라! 나도 힘들어!”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딸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내 상식과 기대 속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것을.
나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나는 딸과 매일 대화를 시도하면서도 어찌보면 핵심은 비켜가고 있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때는 인정하기 어려웠고, 그때는 진실을 마주대할 용기가 없었다.
나는 단지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딸아이의 치기 어린 반항이라고 여기고 싶었고, 그 시기가 그저 빨리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중2병 중3병... 그래 이건 분명 사춘기의 반항일거였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 불안감 속에서 그 답답한 집안의 공기를 참을 수 없어서 나는 집을 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태국의 뜨거운 태양은 아무때나 아무 장소에서나 걷기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때는 그냥 아무때나 아무 곳이나 걸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