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불화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사람의 눈은 진실을 드러내는 창이라고 했다.
우리집에 폭탄이 떨어진 이후, 우리 가족은 서로의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사춘기 자녀들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종이를 활활태우고도 남을 레이저와 같은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딸을 바라보던 내 눈빛은 비난과 원망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놀라운 눈빛 변화는 남편이었다.
늘 가정적이고 따뜻하던 남편은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지금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여전히 방문이 닫힌 채 자기만의 세상으로 들어가버린 딸아이와 무엇이라도 내 뜻을 관철시켜보고 싶던 내가 불꽃 접전을 벌이고 있을 때 하필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고 있었다.
퇴근해서 들어오는 남편의 인기척이 들리자 나는 내 지원군이라도 도착한 양 더욱 소리를 높여 원망과 저주의 말들을 쏟아냈고, 참다 못한 딸아이도 고운 그 입에서 흘러나올수 없는 말들로 나를 공격해댔다.
그때였다.
무언가 별안간 쿵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나더니 이내 여진처럼 크고 작은 몇 번의 소음이 더 나다가 멈추었다.
서로 핏대를 올려가며 싸우던 나는 거실로 뛰어나오고 딸아이도 삐죽 문밖을 응시했다.
거실에서 혼자 돌아가고 있던 선풍기가 벽에 쳐박혀 목이 부러진 채 긱긱 소리를 내며 날개가 힘겹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머~~ 당신 미쳤어?”
내가 놀라서 뛰어나가며 남편을 보자 나는 그 자리에 놀라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고 반쯤은 제 정신이 아닌 듯 한 상태였다.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남편의 눈빛에 나는 공포심마저 느껴졌다.
“에잇! 이놈의 집구석! 내가 아주 집에 들어오기가 싫다니까!!!”
그러더니 이내 침대에 모로 돌아누운 딸에게로 직진해서 딸의 등짝을 후려 갈겼다.
그 때 딸아이의 눈빛은 놀람과 공포에 사로잡혔다가 실망과 절망감으로 바뀌었고, 공허하고 비난을 가득 담은 눈은 이내 동그란 물방울로 가리워지고 있었다.
말리는 나도 막무가내로 밀쳐냈고, 놀라서 자기 방에서 뛰어온 막내아들에까지도 불통히 튀어 괜히 한 대 얻어 맞고는 놀라서 주춤하게 했다.
남편은 그렇게 소위 눈이 뒤집힌 채 한동안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하고 날뛰더니 이내 그 눈빛에서 광기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광기가 사라진 그 자리는 딸과 마찬가지로 눈물로 대체되며 난감한 얼굴이 된 남편은,,,
그길로 집을 나섰다.
혹독하게 뜨거운 태국의 날씨보다도 더 뜨겁게 우리를 덮친 그날 남편의 참았던 울분과 광기가 춤을 추고 떠난 자리는 목이 부러진 선풍기만이 감히 아프다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렇게 선풍기가 쓰러진 날, 가정불화라는 불청객이 찾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