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집에서 벗어나기
폭탄이 떨어졌고, 선풍기가 날아갔다.
불행이 찾아왔고, 가정불화가 일었다.
이게 다 무슨 말인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집과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상관도 없으며 그런 단어가 우리 삶에 끼어들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었다.
행복과 불행이 이렇게도 종이 한 장보다 가벼운 차이였단 말인가?
사랑과 미움이 이렇게도 딱 붙어서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공존하는 것이었단 말인가?
놀라서 우는 막내아들을 껴안아 주고, 돌아누워 더 아프게 우는 딸아이는 차마 위로하지도 못한 채 애꿎은 선풍기 모가지만 들었다 놨다 하다가 슬퍼서 울고, 겁이 나서 울었다.
갑자기 불행이라는 시커멓고 커다란 보자기가 우리 집만을 아주 야무지고 오롯하게 감싼 듯 어둡고 답답하고 두려웠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타는 신호음이 지루하게 느껴질 즈음,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태국어 메시지가 남편 목소리 대신 대답했다.
그 목소리와도 싸울 기세로 휴대폰을 거칠게 다루며 괜스레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아빠 찾으러 갔다 올게.”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일단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해야했다.
일단은 아빠를 찾으러 갔다 오마하고 놀란 막내아들을 달래놓고는 되는대로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무작정 출발했다.
남편을 찾으러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 세상에서 숨기로 작정한 사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남편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있는 것일까?
괜히 나쁜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하나?
나쁜 생각은 더 나쁜 생각들을 몰고 왔고, 머릿속은 철수세미를 쑤셔넣은 듯 꼬일대로 꼬여서 따갑게 느껴지는 듯 했다.
괜스레 정처없이 차를 타고 여기저기 아무데로나 돌아다니다 이내 집근처 호숫가에 이르렀다.
내가 호수라고 부르는 이 곳은 동네 사람들의 식수로 공급되는 저수지였다.
변변한 공원이없던 우리 동네에 얼마전부터 이 저수지 둘레에 두 개의 포장된 좁은 길이 만들어졌다.
자전거도로와 걷기전용 도로였다.
한 바퀴를 돌면 10km가 조금 더 되는 제법 큰 규모의 저수지였고, 그 둘레를 한바퀴 삥 둘러 운동 전용 도로가 생기면서 사람들에게 이 곳은 운동하기 좋은 곳으로 조금씩 소문이 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더운 나라에서 걷고 달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였다.
5분 거리의 편의점도 무더위와 개들과 정비되지 않은 도로 사정이라는 삼박자를 이유 삼아 꼭 자동차에 의지하곤 했었다.
그날 나는 갈 곳 잃어 방황하다 호숫가에 다다랗을 뿐, 운동을 하기위함은 아니었다.
그곳에 멈춰서서 또 다시 눈물을 흘리고 있을 무렵 자동차 유리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은 활기차 보였다.
저마다 형형색색의 운동화 신고 걷거나 달리고 있었다.
표정이 밝고 행복해 보였다.
체감온도 40도를 육박하는 기온이라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그들은 애써 걷고 달리면서도 찡그리지 않고 오히려 웃음이 어려 있었다.
복장을 완전히 갖추고 싸이클을 타는 무리들도 씽씽 줄지어 지나가곤 했다.
그 싸이클 행렬은 활기차다 못해 생명과 행복 등의 긍정적인 것들이 “나 잡아봐라”하면서 도망치듯 사라지는 것 같기도 했다.
마음이 답답했고, 바깥날씨보다 마음이 더 더웠던 나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지만 그 걷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불행이 우리집에 손님처럼 다가오지 않았다면 내가 이곳에서 지금 이 시간 걷고 있을 리 없었겠지만,,,
나는 걷고 있었다. 아니 걸어야했다.
그것만이 지금 이토록 두렵고 불안하고 어지러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