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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과 인생, 닮은 점을 찾다

한 걸음씩 나아가는 법

by 디베짱


“인생은 마치 마라톤 같다.”



이 말은 너무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풀코스를 실제로 달려본 사람에게는 그 말이 새삼스럽게 진실로 다가온다.


짧은 거리를 전력 질주하는 게 아니라 긴 여정을 견디고 버티고 이겨내야만 완주할 수 있는 마라톤.

그것은 곧 인생 그 자체이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부딪힌 건 내 한계였다.

‘이쯤이면 됐다’는 마음, ‘더는 못하겠다’는 체력의 벽, ‘무슨 소용이냐’는 회의감.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 모든 생각은 발을 멈추고 싶을 때마다 고개를 들었고, 매번 한 걸음만 더 내디뎌보자는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인생도 그렇다.

버겁고, 지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포기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주 조금만 더 버텨보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끝이 있거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풍경이 우리를 맞이하기도 한다.


마라톤을 달릴 때는 결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속도로 달릴 수 없다.

때로는 속도를 줄이고, 걸어가기도 하며, 잠시 멈춰 물을 마시고 호흡을 고른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빠르게 앞서가는 것 같아 조급해질 때가 있지만 나만의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리하게 남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지치고, 쓰러지고, 다시는 일어서기 힘들어진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내 삶의 속도를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

느리더라도 멈추더라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리고,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 나아가는 것이라고!



달리는 동안 가장 의지가 되는 건, 함께 뛰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나보다 잘 달린다 해서 나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관계.

옆을 지켜주는 러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달리기는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럽다.


인생도 그렇다.

어떤 시기에는 내가 누군가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고, 또 어떤 순간에는 나를 이끌어주는 손길 덕분에 한 발짝을 더 내디딜 수 있다.

함께 걷고, 함께 달리고, 함께 완주하는 인생.

나는 그 따뜻한 에너지 안에서 자주 울컥했다.



42.195km를 달리는 동안 가장 중요한 건 ‘한 걸음’이다.

다음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느냐, 없느냐가 끝까지 갈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다.

인생의 많은 순간에서도 우리는 ‘전체’를 고민하다 너무 멀어 보이는 거리에 질려버리곤 한다.

하지만 목표가 아무리 멀더라도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눈앞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오늘의 1km, 지금의 10분.

그것을 충실히 채워가는 것이 언젠가 도달하게 될 커다란 변화의 시작이 된다.


달리기를 하며 많은 것들을 놓치기도 했다.

아침잠을 포기해야 했고, 때로는 술자리도 마다해야 했고, 발목 통증과 근육통에 시달리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대가를 지불하고도, 나는 여전히 달린다.

왜냐하면 달리기는 ‘나를 지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흔들려도, 감정이 무너져도, 발을 내디딜 수 있는 힘이 남아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계속해서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한 걸음씩 나아간다’는 말은 어쩌면 너무 소극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가장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

당장은 눈에 띄지 않더라도, 그 걸음들이 쌓이고, 이어지고, 연결되면 결국에는 도달할 수 있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그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배움은 마라톤이라는 레이스를 넘어서,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살아가는 데 큰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었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나의 속도를 이해했고, 멈춤이 결코 실패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며, 고통의 순간에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깨달음 하나, “나아가고 있는 한,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다.”라는 것!


오늘도 나는 천천히, 나의 길을 달린다.

지금 이 걸음은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한 한 걸음이고 더 나아가 인생이라는 마라톤의 또 다른 여정을 준비하는 예행연습이다.


포기하지 않고, 내 속도로.

한 걸음씩, 그렇게 계속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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