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계를 뛰어넘다
달리기를 통해 회복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체력만은 아니었다.
내 안의 무기력함, 견딜 수 없는 불안, 나조차 믿을 수 없었던 자존감을 다시 찾고 싶었다.
마음의 균형을 잃고 방황하던 그 시절, ‘나’는 온데간데없고 껍데기처럼 하루를 소모하며 살았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다시 ‘나’로 돌아가기 위한 길을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의 달리기는 단 1분이 전부였다.
1분을 달리고 나면 숨이 차서 더는 버틸 수가 없었고, 그렇게 1분을 겨우 버텨낸 내 모습이 왠지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그 1분을 쌓아가다 보니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고, 어느덧 10km 대회에도 참가하고 있었다.
10km 대회의 참가는 달리기에 활력을 불러왔고, 다양한 방식으로 러닝의 세계가 무한하다는 것을 알게했다.
기부런이라는 것이 있었고, 진짜 마라톤대회가 있었다.
베트남으로 해외 원정까지 가서 하프마라톤을 참가할 정도로 달리기에 대한 마음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와 우리집의 힘겨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의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이 알게 모르게 나를 살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한 지 2년 반 만에 나는 결국 “2024년 파타야 마라톤 풀코스” 대회에 도전하기에 이르렀다.
나에게는 희망의 도시이자 절망의 도시이고, 내가 10년 동안이나 살아온 그 애증의 도시 파타야에서 풀코스 마라톤을 치른다는 것!
그건 내게 ‘인생 첫 풀코스 도전’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깊은 의미였다.
단 1분도 달리지 못했던 시절을 통과해 마음 근육이 키워진 만큼 이제는 42.195km라는 거리를 온전히 내 두 다리로 완주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회가 가까워질수록 불안도, 기대도, 걱정도 모두 함께 밀려왔다.
솔직히 말해 나는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훈련은 제때 이어지지 못했고, 태국의 무더운 기후는 내 체력을 순식간에 앗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으니까.
이 풀코스를 완주하면, 나는 나에게 ‘잘 살고 있다’는 증명서를 건넬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내 대회 당일!
무더운 파타야의 열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출발선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흘렀고, 이 긴 여정을 내 몸이 감당할 수 있을지 끝없이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내 옆에는 남편이 함께 있었다.
함께 도전하고, 함께 버티고, 함께 완주하자고 약속한 그 순간만큼은 어쩐지 마음이 든든했다.
출발선이 열리고 수천 명의 러너들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숨을 가다듬고 천천히 달려나갔다.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지만 도중에 포기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이 거리를 끝까지 가야만 다시 ‘나’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내 발을 붙잡고 있었다.
첫 10km는 가볍게 흘러갔다.
익숙한 거리, 익숙한 풍경...
다만 첫 풀코스 도전이라는 것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나의 마음이 익숙하지 않은 채 흘러가고 있었다.
20km를 지나며 조금씩 다리가 무거워졌고, 평소보다도 훨씨 좋지 못한 컨디션으로 이제 절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체력이 바닥나버렸다.
늘 옆에서 페이스메이커를 자청하며 좋은 러닝메이트가 되어준 남편이었지만 이날 나의 컨디션을 봐서는 남편마저도 컷 오프 시간에 완주를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반환점을 돌면서 각자의 페이스대로 뛸 것을 제안했다.
잘 아는 우리 동네인 파타야 대회이므로 남편은 결승전에서 만나자며 힘차게 뛰어나갔고, 남겨진 나는 이제부터 진짜 혼자만의 싸움을 이어나가야 했다.
평소에는 차로만 무수히 다녔던 파타야 거리 곳곳이 이렇게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거리였나 싶게 달리는 곳곳마다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30km부터는 땅에 발이 붙는 느낌이었다.
더운 날씨는 체력을 갉아먹고 물과 전해질은 빠르게 고갈됐다.
35km를 지나면서부터는 거의 달리지 못하고 걸었다.
뒤에 쳐지는 러너들이나 부상당한 러너들을 태우기 위한 구급차와 셔틀이 내 뒤를 바짝 따르며 “이제 그만하고 여기 타”라고 나를 유혹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4km를 남기고 시간을 체크해 보니 컷오프 시간인 7시간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2km 정도는 더 뛰어야 했다.
그래서 마지막 힘을 내어 달리기를 시도하기 위해 다리를 들었는데, 그대로 종아리 근육이 뭉치며 통증이 몰려와서 땅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재빠르게 대회 스태프들과 의료진들이 몰려들었고 이내 능숙한 솜씨로 내 신발을 벗기고 근육 이완제 스프레이를 뿌려주며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통증이 조금 사라지자 스태프들이 하는 말소리가 들린다.
“응급차 불러라, 차를 태워라~~~~”
‘아~~ 나 완주해야 하는데, 메달 받아야 하는데~~~’
내가 조금 진정이 되자, 스태프들이 괜찮냐고 물으며 차량에 탑승하라고 한다.
나는 그러면 메달 못 받는 거 아니냐, 나 그냥 걸어갈게~~~ 하니...
그들이 "끄압쫍"(거의 다 끝났어!)라고 말하며 의미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 강제로 차에 태워진 나는 허탈함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아! 이렇게 나의 첫 풀코스 도전은 허무하게 끝나는건가?’
이미 차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과 어색하게 눈웃음을 나누며 남편은 어디쯤 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더니 이내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어 휴대폰이 꺼지고 만다.
배터리가 다 나간 휴대폰처럼 내 몸도 그렇게 힘없이 꺼져버리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1~2km를 가다가 차가 인파에 몰려 잠시 멈춘 사이 나는 다시 도로에 내렸다.
그렇게 휴대폰처럼 꺼져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번쩍 나를 일깨웠기 때문이다.
비록 기록은 의미없게 되었지만, 42.195km 풀코스 여정 중 남은 2km를 온전히 내 발로 디뎌서 피니시라인을 밟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근육이 올라왔던 종아리가 얼얼해서 제대로 속도를 낼 수는 없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뛰는 자세를 취하여 남은 구간을 달려갔다.
거의 꼴찌그룹인 남은 러너들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한층 드높았다
힘을 내라는 사람들의 응원 속에 그리고 멀리서 먼저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의 응원 속에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냈다.
그렇게 6시간 53분.
긴 시간의 고통과 인내 끝에 마침내 나는 피니시라인을 밟았다.
그 순간,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허무함, 벅참, 기쁨, 눈물. 무너진 듯 주저앉은 몸을 안아주는 남편의 품에서 나는 울었다가 웃었다가를 반복했다.
그 울음과 웃음은 단지 풀코스를 완주한 것에 대한 감격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버텨온 시간들,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나 자신을 향한 위로였고, 격려였고, 치유였다.
그렇게 나는 달려서 다시, ‘나’로 돌아왔다.
풀코스를 완주했다고 해서 인생이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크고 작은 고민은 존재하고, 때로는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 다시 길을 잃을지라도 나는 달릴 수 있다는 것.
그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한 걸음 한 걸음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달리기를 통해 나는 무너지지 않는 법을 배웠고, 멈추지 않는 법을 배웠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는 법을 배웠다.
누군가는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힘들게 달렸냐고.
나는 말하고 싶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다시 살아갈 수 있었다고. 다시 웃을 수 있었고, 다시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달린다. 달려서 다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