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어린 시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해마다 선생님들께서 수고하셔서 작은 사이즈의 앨범을 꼭 만들어 주시곤 하셨다. 어린 시절 2년만 다녔지만 대기해서 입학을 위한 면접까지 봤던 통합어린이집에서 아들 얼굴이 크게 나온 액자 하나와 비디오 형태로 된 학예회 동영상, CD로 된 학급앨범을 받았었다.
완전통합이 힘들었던 아들은 부분통합반에서 2년을 지내다 수료해서 다른 어린이집으로 가야 했다. 원래 다니던 강남의 통합교육으로 유명했던 그 어린이집에서 구립○○어린이집으로 전원 했고, 아들 보육하시던 이모님의 강력한 의견으로 1년만 다닌 후에는 한적한 ㅍ어린이집으로 전원 후, 어린이집을 졸업했다. 총 3개의 어린이집을 거쳐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 해마다 남는 것은 그동안 주고받은 알림장과 어린이집 수료식 때마다 남는 사진, 미니 사이즈 앨범이 있었다.
아들 어릴 때는 15년도 전이라 가능한 이야기지만,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2년 정도 해마다 선생님들께서 CD로 된 앨범을 보내주셨다. 그런데,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직장 여러 곳에서는 6학년 졸업앨범 외에는 책 형태로 된 앨범을 만들어 본 적 없다. 보통 일 년 돌아보기로 사진을 엮어서 동영상을 제작해서 학급홈페이지에 올리는 정도였다. 이건 온라인 학급에서 가입한 학생과 학부모 회원들만 볼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강화된 정보보호법으로 학생들의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주소와 같은 민감 정보부터 부모님 성명과 나이 등은 검색조차 안되게 보안 중이다. 부모님이 뭐 하시는지 물어보는 것은 옛날 20여 년 전,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학년말 종업식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한 해 동안 올리던 온라인 학급게시판의 앨범과 소식, 알림장 등을 비공개 전환하고, 비공개 전환 후 1년이 지나면 구성원 정보와 나누었던 톡 내용들이 삭제된다. 비공개 설정을 안 해도, 다음 학년이 되면 다른 클래스로 가면서 탈퇴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시고, 전학을 가면 그 해에 하나의 반만을 가입할 수 있는지 1년 내에도 비공개 회원으로 자동 삭제된다. 이러한 온라인 클래스도 학년 초에 개인 정보 제공 동의를 하신 분에게 가능한 서비스이고, 교사의 초대코드 발급 후, 학부모 스스로 가입 절차를 진행해서 들어올 수 있다. 이렇듯 시대가 달라져 책으로 된 학급앨범은 6학년 졸업반이 아니면 다가가기 힘들어졌다.
11월 중순, 우리 반 학생들에게 12월 크리스마스 전 문구세트 선물과 앨범 중 무엇을 할지 자율시간에 물어본 게 화근이었다.
"얘들아, 이번 해 함께 쓰는 컴퍼스가 손에 맞지 않아서 원 그릴 때 힘들었잖아. 컴퍼스 들어있는 문구세트를 살까? 우리 반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으로 앨범을 만들까?"
"선생님, 먹는 거 선물은 안 되나요? 먹을 거 사주세요!"
오늘도 변함없구나! 이걸 넣어도 괜찮지만, 내 뜻은 문구세트였기에,
"문구세트랑 앨범 중에 골라보자."
갑자기 학급회의 분위기가 되었다.
"그런데, 앨범은 한 명이라도 동의 안 하면 못 만들어."
제발 이건 힘든 과정이 있으니 선택 안 했으면 했다. 우리 반 바름이랑 예술이가 갑자기 일어났다. 적극적으로 한 명, 한 명에게
"동의할 거야? 추억이 중요하지!"
이러면서 동의하도록 이야기하며 다니기 시작했다.
'앗... 큰일이다.'
한 명, 한 명을 설득하는 학생들이 있다 보니 처음에는 80% 정도 찬성하던 비율이 100%까지 올라갔다. 우리 반 달달이의 먹을 것(과자 선물)까지 선택지에 넣어서 물어볼 걸, 손 쓸 틈도 없이 학생들의 만장일치로 앨범을 만드시오!로 의견이 조율되어 버렸다.
그 후 보름동안 옆반 경험 많은 선생님께 여쭤보기, 교장선생님께 의논하기를 거쳐 의견을 여쭤보았지만 대다수 선생님들의 의견은 학급앨범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셨다.
문제 될 수 있는 지적사항으로 첫째, 정보보호법의 강화로 내 자녀가 학급 내에 있는 모습, 학교, 학년 반 등의 정보가 공개되기를 원하지 않는 부모님이 계시면 민원제기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6학년 졸업앨범의 경우, 당사자나 학부모가 희망하지 않으면 촬영부터 안 할 수 있다.
동의 없이 촬영했다가 자녀의 얼굴이 졸업앨범에 나갔다면 소송거리가 될 수 있다.
둘째로, 딥페이크 기술의 발전으로 학생들의 얼굴이 딥페이크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
이번 해에 특히나 이런 문제로 10대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각종 딥페이크 프로그램을 활용해 합성한 음란물, 지인능욕의 소재가 되다 보니 교육청 단위로 가정통신문이 이알리미로 나갔었다.
담임선생님의 학급운영의 일환으로 보면 가능하나, 최근의 각종 사건 사고, 민원의 차단을 위해서 갈 길이 너무 먼 앨범이 되어 버렸다.
일단 학급 내 외부활동(환경단체, 굿네이버스 등),
연극, 난타, 스포츠강사 수업, 영어 시간 역할놀이, 학예회,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우리 반 학생들의 모습 찍어놓은 것까지 다채로운 모습의 사진이 있긴 한데, 온라인 학급앨범에 있는 사진을 다운로드해서 원하는 본인의 사진을 고를 수는 있다.
학부모 사전 정보동의, 외부 업체 이용일 경우 학생정보 파기에 대한 서약서와 확인서까지 줄줄이 많은 과정을 학급앨범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는 여력이 없어서 난감하게 됐다.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인터넷으로 학생용 접착식 앨범을 구매해서 담임선생님이 출력해 온(전산선생님께 말씀드려 포토프린터 하나를 구매하도록 물밑 작업을 했다.) 사진으로 미술시간을 활용해서 학생 스스로 만드는 앨범으로 선회했다. 아직 고학년은 아니고, 소근육 사용이 섬세하지 못한 3학년이라 학생 스스로가 얼마나 만족할만한 앨범이 될지 모르겠지만, 접착식 사진 넣을 때 조심히 넣고, 미리 구매한 스티커로 사진 주변을 꾸미면 좀 나아 보이지 않을까? 이래저래 꾸밀 거리를 11월부터 테* 에서 구매해서 배에 실려 와서 다이어리 꾸미기(일명 '다꾸') 바운더리 종이테이프, 홀린 듯 구매한 컷팅 툴, 컷팅 다이, 금속제로 된 각종 틀, 여기에 스텐실 도구까지...
선생님이 말 한 번을 뱉으면 그 순간부터 일감이 된다. 이제 여러 가지 준비는 되었으니 미술시간이랑 진도 마친 과목의 시간을 이용해 열심히, 부지런히 만들기 시간을 가져보리라 다짐해 본다.
내 아들은 12월 27일 종업식 때, 교육기관에서 담임선생님들께서 작업하신 스냅*라는 사이트를 통해 프린트된 앨범을 가져왔다. 담임선생님께 새해 인사와 더불어 수고하심에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달해야겠다.
아들은 교육기관 입시원서를 쓸 때부터 개인정보제공 동의서를 썼고, 구청에서 받은 예산으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이라 외부 활동 사진을 자주 홍보물로 제작해서 보내주신다. 예산 확보부터 강남구 사업 정산, 각종 사업 홍보를 위해 행사 하나하나마다 동영상을 제작해서 제출했다는 말씀도 들었다.
지금 이용하는 곳처럼 평생교육센터가 더 많이 확충될 수만 있다면, 잘 생긴 내 아들의 얼굴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귀엽다는데 공감한다)은 홍보용으로 제공되어도 감사하리라...
아들의 1년 수료앨범을 아무 노력 없이 받고, 내 학생들에게는 만들어 주기 힘든 상황이 안타까운 주말이다. 그래도 오늘 저녁과 밤에는 usb 하나에 학생들의 사진을 다 모아서 직접 사진관을 방문해 출력하고 사장님께 남은 저장본이 없도록 확인하리라... (아무리 생각해도 포토프린터로 100여 장 넘는 사진을 뽑는 건 힘들 것 같다. 포토프린터가 다음 주에 맞춰 도착하면 좋겠지만) 내일은 남은 학급비를 털어서 인화비에 보탠 후에 사비도 넣어, 기념할 만한 단체사진 몇 장, 학생들의 사진 몇 장씩은 스스로 붙일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
아웅다웅, 컬러풀 우리 반 학생들아, 조금만 기다려서 함께 만드는 앨범으로 우리 추억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자.
추신: 그래도 학부모 사전 동의서는 받아야 되겠지요? 학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한 장으로 끝내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