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보험을 비웃다.
<대문사진: AI로 검색한 일상생활배상보험의 종류,
Banksalad란 사이트에서 나온 내용>
33년 된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주택 관련 보험을 작년 이사와 함께 다시 들었다.
일단 주소지도 바뀌고 10년 만기가 된 보험이라서, 이사 나가야 했던 자가와 현재 전세로 들어와 살고 있는 집까지. 정확하게는 10년 만기 되어 재갱신된 보험 하나와 화재보험 2가지가 있었다.
서론이 길지만, 결국 아들, 남편, 나까지 다른 각각 든 보험, 가족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 4개, 화재보험으로도 커버되지 않는 일이 생겼다. 그건 바로 이사 나온 우리 집에 생긴 누수였다.
자가인 우리 집은 5층이고 이번 주 월요일인 11월 24일부터 윗집의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됐다. 그 첫날에 윗집 바닥 온수파이프 교체를 위해 바닥 철거 작업이 있었다.
강한 진동은 우리 집 세탁실을 타격했고, 전등갓이 빠져서 떨어져 깨지면서 쳤는지 세탁기 온수 호스가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생겼다.
수도꼭지의 온수가 엄청난 양으로 쏟아져 거실이 물바다가 되고 그 물은 4층으로 떨어졌다. 4층 주방, 거실, 작은 방 벽을 온통 적시고, 거실 바닥까지 물이 흥건했단다.
세입자에게 전화가 와서 올라가 보니, 물바다이긴 했지만, 거의 수습이 되어서 물이 빠진 상태에서 본 거였다. 세입자에게 받은 관리사무소에서 찍은 동영상에는 바닥이 잠길 정도로 물이 차 있었다.
언제부터 세탁기 온수 호스가 빠졌는지 알 수 없었으니 6층 진동에 5층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은 빠른 속도로 4층으로 내려갔었나 보다.
월요일 대책을 강구하느라 우리 집을 찾아갔다. 세입자는 1년 6개월 동안 문제없이 살아왔고 평소처럼 출근한 상태여서 자신의 아무런 잘못 없이 사고라 위층 리모델링 업자에게 모든 손해를 물리겠다 했다. 세탁기 호스 빠지는 사고는 누구나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윗집 리모델링 공사라는 확실한 원인이 있으니 우리 집은 확실한 피해자인 것.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잡기 어려웠다. 그때 눈에 보인 게 세탁실 전등갓이 깨져서 세탁기 속에 들어있는 상태였다.
결국 그 깨진 전등갓이 이 사고를 촉발한 원인이겠구나! 그 길로 리모델링 업자에게 전화했고, 누수 사고와는 상관없으니 전등과 세탁기 분해 세척까지만 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세입자는 안될 말이라 황당해했고, 다른 방도를 강구해야 했다. 어떻게 지냈는지 모를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관리사무소를 방문해서 공사중지 요청을 하겠다고 하니 허가를 내줬던 주체가 관리사무소라고 확실한 피해가 입증 안되면 못해 준다 그랬다. 소음 피해 등 피해가 있었냐, 갑자기 중지하면 업자가 공사업체들과 일정이 있는데 손해가 크다는 등의 말만 했다. 입주민의 동의를 받아 진행하는데 우리 집이 입은 손해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2개 층이나 피해가 발생했는데 무슨 소리예요! 행정절차 밟아 주세요."
"인테리어 사장님이랑 공사중지 관련으로 말씀 나누셨나요?"
"업자랑 이야기할 거 없고, 6층 집주인이랑 연락할 테니 연락처 가르쳐 주세요!"
"연락처는 가르쳐 드릴 수 없어요. 인테리어 사장님 통해서 집주인 분이랑 연락하시라 할게요."
"연락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게요."
그날 오전 다른 일정도 있어서 무한정 기다릴 수 없었다.
"제 전화번호 알려드리니까, 집주인 분께 전화하시라고 하세요."
관리사무소의 안일함에 허탈해하며 나왔다.
오전 바느질 모임에서도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별 수 없었고, 세입자가 있는 상황이니 집주인은 빠져있으라는 말만 여러 선배들께 들었다.
결론은 세입자와 멀리서 달려오신 세입자 부모님, 인테리어 사장님 내외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각각 5층과 6층 집주인은 사고 내용과 원인을 따질 때 이야기를 듣는 상황(들러리)이었다.
전날에 공사를 진행하는 업자가 모든 피해를 물어주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듣고 온 터지만, 4층이 입은 피해가 큰지라 합의는 인테리어 업자가 4층의 피해를 전부 보상하고, 우리 집은 전등만 교체해 주는 선에서 끝났다. 세탁기, 거실 바닥은 세입자와 집주인이 합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서로가 피해 사실의 원인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이번 사고의 해결과정에서 어려운 점이었다.
전등 자체가 단종된 제품이었고, 재현 실험도 할 수 없었다. 1차 피해자인 세입자에게 일상생활배상보상이 있었으면 자기 부담금만 업체에서 받고 우리 집 보상 정도 받으면 되지만 없었다. 집주인인 내게 있던 화재보험 특약, 일상생활배상보험은 살고 있는 거주지가 아니어서, 30년 이상인 아파트여서, 세를 놓는 경우에는 20년 이내만 가능해서 등등 보상받을 수 있는 걸 다 피해 갔다. 그래서, 남는 건 피해자와 피해를 준 인테리어 업자 두 당사자뿐이다.
세입자가 합의서를 작성하고 인테리어 사장님, 세입자, 집주인의 확인도장, 싸인이 들어갔다.
4층과의 합의를 위해 인테리어 사장님 내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셨다. 길고 긴 이틀의 시간이 마무리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끝났는데도 석연치 않았다.
집주인이 피해를 안을 필요는 없었지만, 아래층과 엮이기는 싫어서, 서둘러 인테리어 업자분 결정에 따른 것도 있다.
아래층과 엮이는 상황. 그걸 피할 수 있다는 것에 싸워준 세입자와 혼자 있는 자녀를 위해 멀리서 부모님께서 달려와 주신 게 고마웠다.
이 시점에 보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본다. 일상생활배상보험도 그 보상범위에 따라 3가지 종류가 있다. 그중, 가족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은 꼭 들어놓을 필요가 있다. 생계를 같이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지만 자녀의 경우 미혼이면 별거 중인 상태에도 다 된다. 주소가 다른데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이 보험뿐이다.
일상생활배상보험은 13세 미만의 자녀까지, 자녀일상생활배상보험은 자녀만 가능하다.
다 준비했다 생각해도 사고는 정말 요리조리 피해서 찾아온다. 소심쟁이인 내가 아닌 나와 관련된 누군가에게도. 정말 2025년 내가 지지리도 복이 없어서 이런 일이 있나 싶도록.
이런 일로 속을 끓였던 다음날 남편의 큰 고모부님 부고를 받았다. 연세가 89세지만 이렇다 할 지병도 없던 분이 갑자기 댁에서 쓰러지셔서 과다출혈로 순식간에 소천하셨다. 이런 일까지 겪다 보니 세입자와 금액 얼마로 놓고 내 이익 차리기 힘들어졌다. 너무 세세한 세상일에 연연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가 아닌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