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슬붕이 Jun 24. 2024

서로 다른 남녀가 함께 살아가는 법

남편의 필살기, 마이동풍

출처: 위키낱말사전

속담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가 있다.

매번 말하는 사람인 본인에게는 화나는 일이지만 굳이 내 가정에 평화가 있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본인은 쉽게 말하자면 소심하고 뒤끝이 꽤 오래 남는 성격이다. 남이 지나가다 한번 툭 던진 말도 꽤 오랫동안 곱씹으며 생각한다.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빠르고 직업 특성상 여러 명을 동시에 상대하기에 이런 본인의 특성은 꽤 불편할 때가 많다.

사람들 중에는 필터링이란 게 없어서 머릿속으로 생각은 하고 말하나 싶은 말을 쏟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때로는 무의미한 음절의 연속을 유튜브 등을 보고 따라 하기도 한다. 작년에 제일 유행했던 말이 두 팔을 뒤로 젖히며 말하던 "수~~" 였을 정도이니 말이다.

선생님들이 많이 보는 모 네이버 블로그에 작년에 유행했던 말 중 이 관련 글이 있어서 웃다가도 혼자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아~ 우~ 수~ 이런 단음의 연결이 유행어가 되기도 하고 화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신경 쓰다 보면 뒷목을 잡을 일이고, 신경 안 쓰면 자연소멸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우리 집에는 매일 사소한 것에도 심각한 본인과 세상의 대부분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아들, 자기의 흥미 있는 분야에만 지독히 관심 있는 남편이 있다.

옆에서 죽기 살기로 흥분해서 떠드는 내 옆에서 듣는 척하면서 휴대폰 게임인  '네모네모' 상위버전을 깨거나 소리 없이 인터넷 모 유머사이트의 내용을 보다 웃음이 터지는 내 남편이. 지나가던 개도 돌아볼 상황에서 무신경할 수 있는 최강의 둔함을 필살기로 갖춘 남편! 가끔은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싶다가도 그만큼의 멘털 관리가 부러운 사람이기도 하다.


반대로 나처럼 항상 심각하게 모든 사태를 인지하는 사람과 함께 살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드라마 '우리, 집'에 나오는 시어머니 홍사강 여사처럼 아들에게 모든 열의를 쏟고 모든 일에 원인과 결과를 따져 추리한다면? 둘이서 냉장고 속 상한 음식 한 가지에 대해서도 CSI 수준으로 원인과 결과를 따져 누구의 잘못인가를 논하고 있겠지?-드라마 속 시어머니 캐릭터는 성공한 추리소설 작가이며 태생부터 고고한 부잣집 따님이기에 그런 하찮은 것에는 신경 쓰지 않으신다. '우리, 집' 시청자분들께 죄송한 말씀이라 양해를 구한다.


그냥 음식이 상했으니 빨리 버려 냉장고를 비우는 게 우선인 것이 상식이지만 본인의 경우가 좀 이런 경우이다. 사소한 하나도 원인과 결과를 따지고 있다.

그 외에도 물건을 쌓으면서 수많은 생각을 함께 쌓는다. 정리하려면 그 물건과 관련된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라서 버리려다 다시 집어넣을 때가 많다.

솔직히 미련이 많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다. 

그래도 최근에 조금 나아진 것이 이런 모든 일련의 과정에서 완전 외부인인 여사님의 도움을 받아 집안일도 같이 하고 살림 카운슬링을 받기도 한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지 않으셨기에 더 냉철할 수 있고 삶의 지혜가 많으신 어르신의 말씀에 수긍하면서 정리하곤 한다. 이해와 공감, 배려의 화법을 가지신 어르신이시라 내 마음의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에는 원인과 결과를 따지거나 논리를 다 펼치기에는 하찮은 일이 있기 마련이다. 과일껍질이 있는 곳에 초파리가 꼬이면 바로바로 버리면 되는 것처럼 그냥 생각보다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해결책일 때도 있다.

-이론에는 이리 철저하건만 실생활의 실천력이 떨어진다. 일 하나를 시작하기 전에 생각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려 결심한다. 그런데, 결론이 난 일에는 융통성 없이 끝을 보고자 한다.


남편은 세상 대부분의 일에 자신의 생각이나 논리도 있고 교양, 역사, 정치, 소설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함께 살아가면서 가정의 대소사에는 무관심하다.

그렇다고 자신의 생각이 없지는 않건만 의견 자체를 내지 않는 쪽에 가깝다.

남편의 필살기인  '마이동풍'이 언젠가 마음이 여유로워진 내게도 장착이 될지 모르는 기질이지만 현재 성격상 맞지 않는 옷과 같다.

사소한 것에도 심각한 본인이 마이동풍이 생활화된 남편과 스물넷이란 햇수를 함께 지내며 터득하게 된 대화법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평범한 말이 아니다. 가끔 혼자 생각하다가도 머릿속에서 이 소리를 되새겨서 쫓아내기도 한다.

괜히 화날 것 같은 상황에는 일을 주저리 말하지 않고 "멍멍!"또는 "야옹~" 거리며 전화를 주고받는다. 찍 오기로 약속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오면 힘없는 소리로 야옹거리며 전화를 해 본다. "여보세요?"대신 "야옹~"이다.

시간이 필요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그런 대처법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남편은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밖에서 문을 열 수 없게 잠가버리면 손을 고양이발처럼 구부려서 현관문을 긁는다. 처량한 고양이 울음소리는 덤이다.


살다 보면 속상하고 남편에게 따져야 할 일이 생긴다. 미리 약속했던 걸 기억 못 하고 있어서 내 직장 회식날 아들을 데리러 가기로 한 날, 회식 끝난 내 전화에  "어? 오늘이었어?"이럴 때나 시댁에 함께 가기로 한 날 아들이랑 장거리 드라이브를 다녀오는 등 이야기할 내용은 많지만 날 선 감정을 들이대면 도망부터 가는 남편이라 웬만한 건 그냥 잔소리가 된다. 이럴 때는

 "지금부터 잔소리를 좀 해야겠네.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이렇게 이야기하면 남편이 씩 웃으며 일을 도와거나 먼저 이실직고를 하며 미안해한다.

세세한 설명보다 이런 대처가 효과적일 때가 있다.


주말이면 아들이 남편을 끌고 나가 대부분 이런 말을 할 시간도 적지만 알콩달콩 하기에도 짧은 시간이니 아껴서 말하고 쓸데없는 말 줄이고 격한 감정은 고양이나 강아지말을 빌려 쓴다.

지나가던 고양이나 강아지가 들으면 황당하겠지만 말이다.

남편의 필살기인 마이동풍의 최대 수혜자도 어떻게 보면 나이고, 반대로 최대 피해자도 나다. 그래도 가정의 화평을 위해서 한 귀로 듣고 흘릴 수 있는 낙천적인 태도도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고단한 인생 속에 매일이 살얼음판이었을 거다.


이전 09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