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사진: Pixabay. Susan Cipriano 작품>
내가 중학생, 작은 언니가 고등학교 시절이었나...
언니에게 들었던 짧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약국에 토끼 한 마리가 꾸벅 인사하며 들어왔다.
약사가 손님의 등장에 친절하게 웃으며 물었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토끼는 귀엽게 웃으며 말한다.
"당근 주세요!"
"손님, 여기는 약국입니다. 당근은 없어요."
"예. 안녕히 계세요!"
그다음 날 똑같은 토끼가 찾아왔다. 또, 깜찍하게 웃으며 말했다.
"약사님, 당근 주세요!"
화가 난 약사는 당근이 없다며 돌려보냈다.
토끼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약국을 찾아와서
"오늘은 당근 있나요? 당근 주세요!"
며칠을 참던 약사는 급기야 화가 나서 토끼의 앞니에 펀치를 날려 이빨을 뽑아버렸다.
며칠 동안 토끼가 나타나지 않자, 슬금슬금 불안해진 약사는 진짜 당근을 사서 약국에 두고 기다렸다.
오랜만에 나타난 토끼는 바람 빠지는 소리로
"다그즈스 즈세요."
마지막 대사는 다 아시듯 "당근주스 주세요."다.
대학 때까지였나... 이런 썰렁한 이야기가 유행했다. 언니가 이 이야기를 들려줄 때 토끼의 귀여움과 깜찍함을 강조하며 대사를 해서 깜빡 넘어갔다.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내 눈에 그러하지만 언니는 참 예쁘고 앙증맞다. 이야기 속 토끼의 대사를 정말 기막히게 들려줘서 내가 친구들한테 그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그 느낌이 안 났다.
갑자기 늦은 밤에 생각난 옛날이야기 속 토끼는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 생각났다.
내게는 너무 필요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남편은 얼굴 표정부터 왕창 구겨졌다. 지난 1월부터 줄곧 했지만 남편은 경험할 수 없는데 하는 이야기다.
오늘은 약국에 당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일 당근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드나들던 토끼의 심정으로 남편에게 똑같이 "당근 주세요." 같은 느낌의 말을 해 보았다. 내가 찾는 곳에 필요한 그 무언가가 꼭 있을 거 같다.
약국에 없는 당근을 그 토끼는 왜 구하러 갔을까? 토끼에게 필요한 당근은 왜 약국에 없었을까? 약사는 처음 몇 번의 방문에는 친절하게 야채가게에 가보라고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앞니가 뽑히는 고통 후에 약국에도 당근이 준비되었지만, 이미 당근을 먹기 위해 필요한 앞니가 사라진 후였다.
이제 토끼에게 필요한 것은 '당근주스'다.
이 정도 끈기 있는 토끼라면 약국에서 당근주스라도 받아낼 것인가? 웃으라는 우스갯소리에 상상이 더해진다. 요즘 약국 냉장고에는 어린이들의 힘든 병원진료 후에 보상으로 주어질 영양제와 주스 등이 있다. 여기에 진짜 당근은 아니라도 몸에 좋은 당근주스 성분의 마실거리가 눈에 보인다.
남편과 대화 중 내게 필요한 건 당근이 아니라 당근주스라는 걸 깨닫고 지금까지 내가 찾던 당근은 약국에 없었다는 걸 남편한테 이야기했다.
남편은 당근주스도 약국에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지만 나는 비슷한 느낌의 주스가 요즘 약국에 있다고 주장한다.
결론은 지금까지 내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약국에는 당근이 없고, 야채가게나 인터넷 생협이나 가까운 마트에 가면 있다는 거다.
그러한 인식은 남편과의 몇 달 동안의 대화 속에서는 해결이 안 됐다. 내게는 당근이 필요한데 내가 찾는 곳에는 없다는 걸 참 인정하기 힘들다.
당근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온통 당근 생각에, 인터넷 당근 검색, 온갖 선전 속에서도 당근이라는 소리가 들린다면 이른바 '정신 나간 토끼'다.
토끼에게 진정 필요한 건 가까운 당근이 심긴 밭과 당근을 구입하기 편리한 가게, 당근을 구입할 만한 능력이겠지?
내가 만약 금수저 토끼였으면 토끼를 위한 유기농 당근 코너를 마련해서 토끼의 건강을 위한 기능식품으로 토끼나 당근을 애용하는 구매자를 위한 드럭스토아를 열 것 같았다.
<현실용 대체 언어 모움>
1. 당근-몸과 마음의 건강, 해결 방법
2. 약국-지금 내가 생활하는 주변 환경
3. 약사-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 기관
4. 당근 주세요-내 말 좀 들어주세요.
5. 약국에는 없어요-민원인 분, 여기서 이러지 마세요.
6. 당근 사다 놓기-최대한 가능성을 놓고 들어나 보겠습니다.
7. 당근 주스 주세요.- 이제 더 이상 내 노력으로 해결 안되니까 저는 신경쓰지 않을께요. 내 앞니가 없어졌네요. 어쩔 수 없어서 그냥 버틸래요.
8. 야채 가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짜 공간,
근처에는 없어서 여기저기 물어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