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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붕이 Jul 22. 2024

복숭아는 죄가 없어요.

미혹된 내가 잘못이죠

*일상 다반사(내 인생에 또 있지 않으면 좋을 일들)

에 들어가기에는 좀 거시기한... 과일을 왕창 충동구매해 고군분투한 경험입니다.


요즘은 복숭아의 계절이다.

며칠 전 신선 2 복숭아, 일명 망고복숭아를 배송받고 벌크형이라 난좌 없이 수북하게 받고선 뿌듯해했다. 이틀 정도 숙성해서 신문지에 하나씩 싸서 넣으면 2주 정도는 행복하게 매일 까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틀이 지나도 당도가 덜 올라와 하루만 더 놔둔다고 거실에 두고 출근했다.


요즘 장마철에 습도가 높고 또 언제 윗집 누수로 천장이 젖어있을지 몰라 에어컨 제습모드로 돌리고 출근한다. 그날은 마침 여사님께서 방문하시는 날이었다. 비도 살짝 왔지만 다행히 큰비는 아니었고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개방하고 열심히 집안일을 도와주고 가셨었다.


여기저기 정리된 물건 위치를 가늠해 보다 신선 2 복숭아를 보니 반점이 모든 복숭아에 올라와 있었다. 이틀까지는 너무 깨끗했던 복숭아였는데 혹시 망고복숭아라는 별명은 슈가스팟처럼 점이 생겨서일까? 불금 저녁시간대를 복숭아와 씨름하며 보냈다. 5Kg에 달하는 35~36개를 한꺼번에 씻어서 껍질을 까고 과육만 모아 밀폐용기에 넣고 설탕을 뿌려준 뒤 살짝 흔들어서 냉장고에 넣었다. 하나의 밀폐용기를 채우고 두 번째 밀폐용기에는 과육을 넣고 살짝 단맛만 나도록 설탕물을 만들어 부어 보았다.


토요일 아침 일찍, 참을성 없는 아들이 차갑게 된 복숭아를 보더니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설탕물을 부은 쪽이 더 맛있었다. 갈변을 막기 위한 설탕물이라 많이 달지 않고 복숭아 과즙이 우러나와 복숭아 음료맛이 났다. 이번 시도는 성공이긴 하나, 신문지로 감싸 소분하는 작업을 하루 미뤄서 고생한 성과물로는 무언가 손이 많이 간 것에 비하면 먹는 순간이 잠깐이라 수공이 많이 들었다.

금요일밤 1시간여 작업의 성과물이 토요일 저녁까지 대부분 아들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몇 조각은 내가 먹었고 남편은 맛은 보았지만 실제 먹는 데 걸린 시간은 1통당 10여분이 되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대문 사진은 신선 2 복숭아가 아니다.

신선 2 복숭아는 천도복숭아처럼 껍질은 붉고 과육은 노란색을 띤다. 그럼 사진 속의 복숭아는 뭘까? 신선 2 복숭아와 함께 주문해서 배송받은 대극천 소과가 맛있어서 다른 채널로 구매한 3Kg에 달하는 양의 대극천복숭아다.

대극천 소과인 것은 같으나, 그전 신선복숭아가 그러했듯 난좌 없이 벌크로 산 복숭아는 금방 반점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처음 구매한 복숭아가 맛있다고 다음번 기회도 같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양은 3배로 많아졌지만 앞선 복숭아를 먹을 때처럼 맛있지는 않았다.


다시 금요일의 과정이 반복된다. 수북이 씻고 껍질을 까고 과육을 잘라서 밀폐용기에 담는다. 끓인 물에 설탕을 탔는데 이번에는 너무 많이 탔다.

이미 단맛의 복숭아 자투리를 많이 먹어서 단맛의 역치가 올라갔나 보다.

설탕물의 온도가 식길 바라며 기다리는데 아들이 옆을 기웃거리며 컵에 담긴 설탕물을 마실 기세라 기다림 없이 붓고 냉장고에 넣었다. 이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면 시원하게 갈변 없이 복숭아 과육을 맛볼 수 있겠지? 그러나 울 아들의 기다림은 항상 짧다. 아직 식지도 않은 통 하나를 꺼내 하나를 맛본다. 그리고는 자리를 뜬다.


아들은 은근 미각이 뛰어난 편인데 맛있는 건 엄마 아빠 먹을 것 없이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조금 아니다 싶은 건 양보의 미덕을 발휘한다. 하나 먹고 두었다면 맛이 없는 거다.


설탕물 양이 과했나 싶어 따라내어 단맛을 보건만 주인공인 복숭아 자체의 단맛이 하향되었다.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인데! 급히 설탕물을 자작하게 남기고 따라냈다. 이미 과육에 설탕물 코팅은 되었으니 갈변은 안될 것이고... 기다려 볼 일이다.

아무리 소과라 해도 아삭하고 쫀득한 식감의 대극천이라면 그 맛이 살아남아 준다면 좋겠건만 아쉽다. 약간 시큼한 자두 하나를 먹고 한 조각 더 맛보니 복숭아 맛보다 설탕물 맛의 단맛에 입안이 얼얼하다.- 자두의 신맛 때문에 그럴까...


장마철에 싼 값에 나온 복숭아를 덜컹 산 내 손가락과 미혹에 홀라당 넘어가는 내 자신을 탓한다. 아무리 미니어처 수준의 과일이라도 소중한 것을 알기에 누군가의 땀과 열정으로 키워낸 과일을 살려서 먹기 위해 노력했다.


옛 조상들이 맛있는 복숭아를 조금이라도 보관하기 위해 시도했었을 방법 중 하나를 따라 해 보긴 했는데... 인터넷 조회 없이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과일을 먹기 좋은 상태로 보관하는 방법은 쉽지 않았다. 제일 먼저 생각난 방법은 복숭아 젤리를 만들어볼까였다. 집에 젤라틴이나 틀 같은 것도 없고, 한 번의 시도를 위해 들어갈 수고를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났다.


이 글을 인내심을 갖고 읽고 계신 독자분들께 말씀드린다면 제철 과일을 보관하는 방법을 숙지해서 잘 보관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가장 좋은 방법은 비싸더라도 소분된 과일, 특히 복숭아는 그리 하시길 추천드린다. 김치 냉장고에 넣으시더라도 신문지 하나씩 감싸는 수고를 하시면 손상 없이 2주까지는 보관 가능하다는 팁 하나를 드리고 싶다. 그때까지 남아있을 맛있는 과일이 없으실 것 같지만, 보관방법만 잘 지키면 과일도 저렴할 때 최상의 상태로 드실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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