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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나날
12화
말랑이 효과
당신의 영향권 속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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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담
Jul 17. 2023
"언니랑 만나는 날에는
이상하게 항상 비가 오더라"
날씨가 화창하다가도
친한 언니를 만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비가 내리는데,
유독 그 언니가
비를 몰고 다니는 기분이다.
아무런 근거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유난히 먹구름과 친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먹구름을 빨아들이는듯한
날씨 요정인 친구가 있다.
남들보다 유달리
자주 끌어당기는 특정한 상황이
저마다 하나씩은 있듯이,
우리 집 말랑이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토요일 오후 8시,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말랑이와 산책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길가에 있는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자동센서라도 달린 것처럼
말랑이의 발걸음에 맞춰
타이밍 좋게 하나둘씩 번뜩인다.
5년 동안 말랑이와
산책해 본 바로,
'이 또한 말랑이 효과겠거니'
라고 생각하며 웃게 된다.
말랑이와 산책을 하다 보면
혼자 있을 때는 겪지 못할
조금은 특별한 일이
자주 생기곤 하는데,
나는 이걸 '말랑이 효과'라고 부른다.
주말에 본가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보면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탈 때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릴 때부터 봐왔던
이웃의 상당수가
이사를 가기도 했고,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새로 이사 온 분들의
얼굴을 모르는 건 당연했다.
좁은 엘리베이터의 적막함 사이로
유일하게 흘러나오는
광고 소리에 의지한 채
내리는 순간만을 기다리게 되는데,
말랑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어색한 공기가 금방 수그러들면서
굳게 닫혀있던 입이 열리곤 한다.
혓바닥이 쭈욱 나와있는 말랑이에게
날씨가 더워서 지쳤냐는
상대의 물음을 시작으로
그제야 서로의 눈을 보고
대화를 주고받으며,
더 이상 낯선 누군가가 아닌
위 아랫집에 사는 이웃으로
인식이 바뀌게 된다.
말랑이와 함께 있으면
같은 동에 사는 이웃뿐만 아니라
어느 동에서 사는지도 모르는
아파트 단지 내 사람들과도
짧은 연을 만들게 된다.
화단에서 꽃을
구경하시던 아주머니,
무뚝뚝한 얼굴로
집에 가시던 아저씨,
잠깐 분리수거하러
나오신 할머니와
집 앞에서 산책하시던
할아버지까지.
혼자 걸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사람들이지만,
말랑이 덕분에
생전 처음 본 사람들과
좋은 하루 보내시라며
서로의 행복을 빌어준다.
한번은 말랑이와 길을 가다가
말랑이랑 비슷하게 생긴
말티즈 강아지를 만났는데,
보호자 아주머니께서
낯을 많이 가리는
12살 진이라고 소개해 주셨다.
진이와 아주머니와의
짧은 만남을 끝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경비 아저씨가
말랑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시며 물으신다.
"너 진이냐?"
말랑이 덕분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낯선 인연이
그렇게 하나 더 늘어난다.
말랑이가 가져다주는
말랑한 분위기의 영향권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따뜻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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