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나날

by 가담



한 살씩 나이가 들어갈수록
당연했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아지고 있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아침에 눈을 뜨면 반쯤 감긴 눈으로
부모님과 언니와 함께 식탁에 앉아
다 같이 밥을 먹었고,
오후에 각자의 할 일을 끝마치면
하나둘씩 집으로 들어와
집 안의 모든 방을
가득 채우는 게 자연스러웠다.


때로는 가족뿐만 아니라
빠르면 5분
조금 멀면 15분 거리에
살고 있는 동네 친구들이
툭하면 놀러 와준 덕분에
집 안이 자주 북적거리곤 했는데,
어느새 다들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더니
최소 한 시간부터 가장 멀게는
비행기로 10시간을 달려야 하는 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그중에 가장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언니는
3년간의 타지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언니와 이어달리기를 하듯이
이번에는 내가 언니의 이삿짐을
그대로 넘겨받아 집을 나오게 됐다.


자취를 시작한 후부터
가능하면 매주 주말마다
본가에 가려고 노력하는데,
약속이 생겨서 못 갈 때도 있지만
본가에 간다 해도
타이밍이 좋지 않은 날에는
가족들이 전부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혼자 있기에는 조금 큰 집에서
고독하게 밥을 먹을 때도 있다.


이번 추석에는
시골에 가지 않기로 해서
오랜만에 고향 친구도 만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중고등학생 때처럼
친구와 나란히 앉아
소소한 이야기로
하루를 가득 채웠고,
추석 당일에는 네 식구가
거실 탁자에 옹기종기 모여
손수 만든 전을 안주로 삼아
서로의 잔을 부딪혔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엄마와 베란다에 서서
입가심용 아이스크림으로
비비빅과 메로나를 먹었는데,
달이 참 동그랗고 밝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어느 드라마 속
대사가 생각이 났다.


"나이를 먹으면 말이야,
보통의 일이 행복해진다고."


학창 시절 친구와
익숙한 동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가족과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 보낸 이번 연휴는,
과거의 평범한 일상과 닮아있어 그런지
여태까지 보낸 추석 중에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


언제까지나 당연할 줄 알았던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
약간의 노력이 필요해질 때,
그제야 보통의 날이
가장 행복했음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그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오면,
더 이상 보통이 아닌
조금은 특별해진 일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상황과 사람들이
당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지금 이 순간도
특별해지는 날이 올 것 같은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던 그날처럼,
매 순간 특별하지 않아도 좋으니
보통의 나날이 오래오래
길게 지속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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