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게

이름을 가진 모두가 소중하다

by 가담


조금 오글거리고
식상하긴 하지만,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기 전에
창가에 있는 식물에게
"다녀올게 예쁜아"라고
인사하곤 한다.


식물을 키우게 된
첫 순간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고,
아마도 잎들 사이에서
빨갛고 작은 새싹이
조금씩 돋아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였던 것 같다.


잘 키워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막상 시들지 않고
줄기를 뻗어내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어느 식물보다도
가장 예뻐 보여서,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줬으면 하는 마음에
자연스럽게 예쁜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의미를 담아
이름을 불렀던
첫 순간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바자회가 열렸던 날,
운이 좋게도
내가 속했던 반이
전교생들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운동장에 나갈 수 있었다.


테이블 위에
다양한 물건들이
꽤나 많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파란 플라스틱 양동이였다.


겨우 두 뺨 정도 되는
높이의 양동이였는데
두 발로 쭈욱
몸을 일으켜 세워도
끝자락에 손이 겨우
닿을랑 말랑하는
아주 작은 강아지가
나오고 싶어서
어찌나 낑낑거리던지.


하얀색 솜뭉치에
검은색 점박이가 있고
꼬리가 약간 긴
양동이 속 강아지와
가장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사람이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13년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막대한 책임감에
안절부절못했다.


어릴 때 부모님 말씀을
마냥 안 듣는
꼬맹이는 아니었지만,
그때만큼은
내가 부릴 수 있는
고집이란 고집을
다 부려서라도
그 아이를 우리 집의
일원으로 만들고 싶었다.


미리 얘기하고 데려가면
키우는 걸 반대하실 게 뻔했기에,
결국 한마디 상의도 없이
무작정 데려가서는
해피를 키우게 해달라며
철없이 칭얼거렸다.


사실 그 당시에
우리 집에서
해피라고 불리던
존재들이 꽤 많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작명 센스가
별로 좋지 않았던 터라,
그나마 익숙했던
철수와 영희 같은
대표적인 이름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해피라는 이름을
침대 위에 올려진
아끼던 인형에게
툭 붙여주곤 했다.


하지만 점박이 강아지에게
처음으로 해피라고
부르던 그날은
습관적으로 이름을
붙여줬던 여느 때와는
다르게 많이 특별했다.


우리 집에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는 마음을
해피라는 이름에 담아
나의 바람과 애정을 불렀다.


이제 해피가 곁에 없는지
딱 1년이 되어가는데
이름처럼 나와의
시간이 행복했었길,
그리고 내가 없는 그곳에서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전히 해피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누구에게나
불리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에 담긴 뜻이
있는 걸 보면,
이름을 가진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이름을 통해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을
단어로 표현하고자 했던
누군가의 고민의 흔적을 엿보며,
이름을 붙여준 존재에게
나라는 사람의
의미를 짐작해 본다.


15년 동안
해피의 이름을 부르며
나 또한 행복했었기에,
할 수만 있다면
더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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