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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여름잠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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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담 Nov 12. 2023

희망, 하다



"앞으로 뭘 하고 싶어요?"


설마 직장인이 되어서까지
이런 질문을 받을 줄이야...
번듯한 답변을 하기에는
예상치 못한 기습 공격이었다.


학교를 졸업하면 해방일 줄 알았던
꿈이 뭐냐는 질문에서
약간 변형된듯한 팀장님의 질문은
입사한지 고작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나에게는
조금 혼란스러운 주제였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온  
꿈을 크게 가지라는 말을 따라
각종 미디어나
주위에 멋져 보이는 직업들을
본보기로 삼곤 했다.
 

장래희망란의 새하얀 공백.
머나먼 미래와 연결된 작은 칸을
처음으로 마주했던 초등학생 때는
그 당시 좋아하던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을 빌려 적었다.


한 번은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처럼
달달한 디저트를 만드는 파티시에를 적었고,
또 다른 해에는 '히트'라는 드라마에서
멋지게 범인을 잡는 경찰관을 적느라
파티시에의 피읖도 꺼내보지 못했다.


그리고 조금 더 가까운 미래로
다가왔던 중고등학생 때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수의사라는 직업을
종이에 적어 제출했다.


어떠한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조금은 불투명한
희망을 적은 것뿐인데도,  
꿈이 화려하고 높을수록
멋있다고 얘기해 주는
주변 사람들 덕분에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다.


아마 그때부터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번지르르하게 대답해야 될 것 같은
강박 비슷한 게 생긴 것 같다.


팀장님이 질문했던 그날도
어김없이 그럴듯한 답을 내놓으려 했지만,
임기응변이 부족한 터라
머쓱한 웃음과 함께
잘 모르겠다는 무책임한 말로
어물쩍 넘어가버렸다.


비록 어린 시절의 기대와는 다르게
전혀 예상치 못한 미래를 맞닥뜨렸지만  
이루지 못 한 꿈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나를 지칭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명사가 생겼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안주하느라
그 뒷이야기를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이제는 드라마 속 주인공과
그저 화려해 보이는 일을
덜컥 목표로 삼기에는
훌쩍 커버린듯하다.


오전 7시 30분,
지하철로 향하는 길에
근처 스타벅스 유리창 너머로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남몰래 아주 작은 낙서를
끄적인 걸지도 모르겠지만,
이른 아침 한적한 카페에 앉아
빈 종이를 채워나가는 모습이
이렇게나 부러울 줄이야.


그 자리에 나를 대입하여 상상하다 보니
부러운 감정은 이내 설렘으로 바뀐다.


모두가 출근하는 이른 아침에
좋아하는 카페에서
좋아하는 글을 쓰는 것,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인 것 같다.


여전히 어떤 명사가
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장래희망란을 공백으로 남겨둔 채
그저 하루하루 글을 쓰며
미래의 나에게 다가가 본다.


지금껏 손에 잡히지 않는
명예로운 꿈을 잔뜩 꿔봤으니,
이제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나만의 소소한 꿈을 꿔봐야겠다.


어쩌면 기대에 못 미치는
대답일지도 모르겠지만,
2년 전 팀장님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
조금은 자신 있게
이 글에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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