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여름잠 18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담 Jun 30. 2024

행복해지는 건 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행복하지 않은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고 불행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때 참 좋았지'라는 말을 달고 사는 거로 봐서는 '행복했었다'에 가까운 듯하다.  
행복은 늘 제자리보단 손쓸 수 없는 과거 어딘가에 머물렀고, 요즘 들어 너무나도 먼 과거 속을 표류하는 중이라 그런지 행복이라는 감정에 무뎌져버렸다.
나만 이런 건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가족과 밥을 먹다가도, 낯선 사람들 틈에 껴 지하철을 탈 때도.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

민이와 카페를 갔다. 테이블마다 올려진 수국 한 송이며 각종 장식까지, 사장님의 정성이 곳곳에 묻어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펼쳐진 채로 벽에 꼿꼿이 걸려있는 책 한 권. 아마 당당하게 펼쳐져 있는 저 한 장에는 사장님이 좋아하는 글귀가 적혀있거나, 혹은 고심 끝에 고른 내용이 담겨있지 않을까 싶다.     


<행복해진다는 것>
(중략)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중략)


그렇구나. 그동안의 궁금증을 여기서 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인 민이의 행복에 대해서도 알아내야겠다. 뜬금없지도 부자연스럽지도 않게 물어볼 명분이 생겼으니 지금이 적기다.

"행복한 것도,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니야."

애매한 민이의 답변에 풀이 죽을진 몰랐다. 무언가를 바라고 물어본 건 아니지만, 내심 민이를 통해 행복을 빌리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하다.
나도 그렇고 민이도 그런 걸 보면, 어쩌면 행복에 대해 논한 저자의 말처럼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                                                                        

영화 소공녀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의 주인공인 미소를 좋아한다. 미소는 뭐랄까, 융통성도 없고 고집불통이다.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받는 얼마 되지 않는 일당으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이어가는데, 그 하루 속에는 늘 담배와 위스키가 빠지지 않는다. 매년 찔끔씩 오르는 담배와 위스키값에 맞춰 그 외의 것에 허리띠를 졸라맨다. 이를테면 방을 빼버린다든지.

미소의 주변 사람들도, 이 영화를 처음 봤던 나도 수군댔다. 담배와 술을 끊는 게 맞는 선택이지 않냐고. 그런데 왜 손가락질한 사람들보다 잠잘 곳 하나 없는 미소가 더 행복해 보이는 건지. 담배 한 모금에 위스키 한 잔 홀짝이는 모습이 질투 날 정도로 행복해 보인다.

                                          *                                                                        

미소처럼 담배와 위스키는 하지 않으니 나와 민이는 커피 한 잔을 홀짝댄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온 순간 카페에서의 시간은 납작한 과거가 되어버렸다.
그날 저녁 평소와 같이 하루의 마무리로 잘 자라는 인사를 했고, 같이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서 즐거웠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차, 정신을 차려보니 또 '이때 참 좋았지'를 시전 중이다. 정작 당시에는 덤덤하다가 이제 와서 좋았지 싶어진다.
그러니까, 민이랑 함께 커피를 마셨던 그 순간은 행복으로 둘러싸여 있던 게 분명다.

민이랑 커피를 매일 마실 수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원두의 고소한 향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 엉망진창 흘러가는 대화까지, 아마 매일같이 행복하겠지. 미소가 그토록 담배와 위스키 근처를 서성였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미소는 그것들을 통해 하루하루의 행복을 부지런히 만들어 가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                                  

행복해진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만족과 기쁨을 주는 주체를 찾고, 또 이를 지켜내는 것. 상당한 정성이 필요하다.
우선 지금의 나로서는 위 건강에 신경 쓸 필요가 있을 거 같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민이랑 커피를 마시러 가야 되니까. 거기에 밤새 얘기해도 끄떡없을 만큼의 체력을 틈틈이 다져놔야겠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한창 어지러울 나이다. 어쩌면 지금은 행복을 찾아 방황하는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행복했었다가 아닌 '행복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까지의 탐색전, 그 비스무리한 것.
미소가 그랬듯 이거다 싶은 행복을 맞닥뜨리는 순간, 누가 뭐라 해도 꿋꿋이 고집부릴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인 거다.
    
다음에 또 행복하냐고 물어볼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꼭 웃으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우리가 되어있길 바라본다.                                    

이전 17화 희망, 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