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담 Jul 14. 2024

도망치려 했던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진중한 성격이라 나중에 잘하실 거 같아요."


한 달 남짓이면 서로를 대강 파악하기 충분하다.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두 시간 반 동안 꼬박 붙어있었으니 당연했다. '커피 선생님은 털털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커피 선생님 또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미 정의를 내리셨다.


여태 들어온 수식어와 비슷한 걸로 봐선 정확하게 보신 것 같다. 내색은 안 했겠지만, 불과 몇 년 전의 나였다면 꿍해졌을 게 뻔하다. 조용한, 차분한, 내성적인과 같이 어쩐지 축 가라앉는 듯한 단어들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으니.

음, 정확히 말하면 싫어했던 쪽에 가까웠다.


                                         *


중학생 때 딱 한 번 반에서 부회장을 맡은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얌전해서.

어쩐지 얌전하다는 건 착한 사람 또는 모범생의 동의어로 여겨지곤 했다. 공부를 잘한다거나 리더십이 훌륭하다는 이유였다면 영광스러웠을 텐데, 얼떨결에 얻어걸린 직책이라 그런지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칠판에서부터 게시판까지 목소리가 닿는 것마저도 그 당시의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부러운 마음은 삐뚤어지기 쉽다. 나와는 다른, 목소리가 크고 외향적인 친구들처럼 되고 싶다는 욕심은 틈만 나면 내향적인 됨됨이를 삼킬 기회만 호시탐탐 노렸다. 리드미컬한 멜로디에 관심을 갖거나, 호탕하게 웃기 등 평소의 나와는 거리가 먼 행동을 기어코 하게 만든다.


사람은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이것 참 다행이다. 크림이 잔뜩 삐져나온 찌그러진 슈크림빵처럼 본성이 자꾸만 새어 나와 방해질이다. 마음만큼 잘 안될 땐 남 탓을 해버리는 것만큼 속 편한 일도 없다. 보는 눈이 많아서 눈치 보여 잘 안되는 거라고.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곳에선 얼마든지 새로운 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확 외국으로 나가버릴까 보다!


                                         *


고등학생 때 부러운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이민까지는 아니지만 그 언저리를 몸소 실행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사연의 주인공은 언니의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20살이 되자마자 주변의 모든 연락을 끊고 다른 지역으로 홀랑 이사를 가버렸다고.

인간관계를 끊어버린다는 것만 빼면 새출발하기에 꽤 괜찮은 전략 같았다. 어쩌면 이민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타지살이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건 이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릴 적 꿈을 이룰 기회는 그리 늦지 않게 그리고 갑작스레 찾아왔다. 집에서 출퇴근하기엔 무리가 있는 거리로 첫 직장을 잡아버렸으니. 마음의 준비할 새도 없이 단 하루 만에 자취방 계약을 끝마쳐야 했다.

어딜 가나 모르는 사람투성이다. 나고 자란 곳은 근처 가게에 들어가기만 해도 익숙한 얼굴이 잔뜩이었는데 이곳은 아니다.

어쩐지 더 움츠러드는 느낌, 본격적으로 작전을 펼치기도 전에 실패의 기운이 물씬 났다.


                                         *


생소함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어색함은 편안함으로, 낯선 얼굴은 익숙한 얼굴이 되기 마련이다. 이곳에서 생활한 지 3년 동안 골목 구석구석과 다양한 얼굴들이 제법 친숙해졌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커피 선생님. 어디까지나 배우고 알려주는 관계이다 보니 우리의 주된 대화 주제는 커피였지만, 그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서로를 드러냈다. 내가 왜 커피를 좋아하고, 선생님은 어쩌다 커피와 가까운 삶을 살게 됐는지와 같은.

아마 선생님이 나에게서 찾은 진중함은 편안하고 친숙한 틈을 타 자연스레 묻어 나온 그 몇 마디이지 않을까 싶다.


도망쳐온 곳엔 새로운 나는 없었다. 지금껏 그래왔듯 조용하고 차분한 내성적인 나만 있을 뿐. 이 동네 저 동네로 옮겨 다닌다 한들 시끌시끌하고 들뜬 외향적인 나는 앞으로도 평생 만나지 못할 거다. 내가 도망치려 했던 건 물리적인 무언가가 아닌 나 자신이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으니 작전 변경이다. 잔잔하다 못해 가사 하나 없는 노래를, 호탕함보단 침묵으로 귀를 기울이는 쪽을 택하기로 한다. 가장 나다운 모습 그대로를 마음껏 즐겨본다.


자그마한 카페에서 털털한 사람과 진중한 사람이 서로 인사를 나눴다. 그동안 수업 듣느라 고생 많았고, 수업 준비하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그리고 언제든 또다시 만나자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비록 누군가를 배꼽 빠지게 웃기진 못하지만, 커피는 잘 내릴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 다정함에게 돌아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