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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choice Aug 07. 2023

다대포, 자유와 낭만이 물드는 곳

부산 서핑트립 1일차

다대포는 생각보다 아주 멀었다. 장장 세 시간을 달려 부산 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했는데, 거기서도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은 더 가야 했다. 나는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 다대포까지 가는 길을 확인했다. 종합버스터미널은 부산 지하철 1호선의 첫 역인 노포역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 종점이 바로 다대포 해수욕장역이었다. 다행히 노선을 갈아탈 필요는 없었지만, 종점에서 종점까지라면 생각보다 먼 거리임이 틀림없었다. '다대포? 뭐할려고? 부산 사람인 나도 멀어서 잘 안가는데~ 구석이라 관광도 못한다 그기는!'이라던 부산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미 목적지를 바꾸기엔 늦었다. 다대포 서핑샵에도 미리 렌탈을 예약해버린 상태였다. 이대로 작은 캐리어 하나와 함께 지하철에 덜컹덜컹 실려가는 수 밖에 없었다.


오전 8시 반에 출발했는데, 다대포 해수욕장역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두 시였다. 대한민국 남쪽 땅 끝에 위치한 부산의 햇살은 뜨거웠고 바닷바람이 불어와 공기가 습했다. 바닷가 앞에는 공원과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어 바다가 가까이 보이지는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라곤 아파트 몇 채, 지하철역, 상가 빌딩들 뿐이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정말 부산의 끝자락인 듯 했다. 부산의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려면 한 시간 이상 걸렸기에, 그냥 서핑으로 오후를 보내기로 했다.


서핑샵 앞에 도착하자, 직원의 안내에 따라 병아리처럼 쫄래쫄래 문을 나서는 강습생들이 보였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오른쪽 어깨에는 리쉬를 메고 약간 들떠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저렇게 서핑을 시작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리쉬 메는 법을 몰라 우왕좌왕했던 아이는, 이제 파도를 따라 낯선 곳에 와서 혼자 바다에 나갈 준비를 할 수 있는 서퍼가 되었다.


처음 방문하는 서핑샵이었지만 나는 익숙하게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렌탈 장비의 위치를 안내받았다. 장소가 달라져도 서핑의 기본은 어디에서나 같다. 슈트, 리쉬, 보드. 세 가지를 후다닥 챙긴 후, 강사들을 따라 바닷가로 이동했다.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


바닷가로 향하는 동안 모래알이 발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남쪽의 강한 햇빛에 오랫동안 데워져서인지 바닷물은 꽤 따뜻했다. 슈트를 입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 그냥 반팔, 반바지, 래시가드 등의 가벼운 옷차림으로 서핑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반팔에 청 반바지를 입은 사람도 보았다. 라인업으로 가는 길에, 나도 조심스레 보드에서 내려 바닷물에 몸을 담궈 보았다. 상반신이 닿는 윗부분은 따뜻하고 아래쪽 반은 시원해서 마치 에어컨을 틀어놓고 두꺼운 이불을 덮는 듯한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다대포는 무척 넓었다. 양 옆으로도, 눈 앞으로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계속됐다. 멀리,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수십 명을 한꺼번에 태울 수 있는 길고 넓은 파도가 끊임없이 생겨났다. 일렁이는 파도가 가까워지며 날을 세울 때 쯤, 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보드를 돌리고 패들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누구도 부딪히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따라 파도를 탈 수 있었다. 초심자부터 실력자까지, 모두에게 기회를 주는 포용적이고 따뜻한 바다였다.


강원도에서 주로 서핑을 해 온 나에게 이런 풍경은 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강원도에서의 서핑은, 약간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비슷했다. 모두가 검은색 웻슈트를 단단히 껴입고 차가운 바닷물 정도는 악으로 깡으로 극복하며 서핑을 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파도를 잡아야 내 것이 되었기에, 잇몸까지 꽉 깨물고 극한의 패들을 선보이는 서퍼들이 곳곳에 있었다. 그러나 다대포의 넓고 따뜻한 파도는 사람들을 조금 더 자유롭고 여유롭게 만드는 듯 했다.


2023 부산 바다축제 - 다대포 해수욕장

해가 저물고 다시 찾은 다대포 해수욕장에는 여름의 습기가 가득했다. 2023년 부산 바다축제를 기념하며 마련된 푸드트럭과 천막 아래에서 아이들은 뛰고, 어른들은 웃고 떠들기 바빴다.


그 중 가장 놀라웠던 건 해수욕장 한가운데서 열린 오픈 댄스파티였다. 간이로 마련된 무대에서 흥겨운 라틴 음악이 흘러나오고, 현장에 있는 누구에게나 댄스 파티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졌다. 나는 다대포 사람들이 모두 E인줄 알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관광객보다는 로컬들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참여율이 정말 높았다.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가릴 것 없이 올라가서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췄다. 아마도 서로 모르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오래도록 함께 연습해 온 사람들 같았다.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마음과 신체의 합을 맞춰 춤출 수 있다니. 다대포는 자유와 낭만이 물드는 곳이구나. 술을 마시지 않고도 취할 수 있는 여름밤이었다.


2023 부산 바다축제 - 다대포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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