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가 ‘포기’ 가 되지 않기를

by 하나시라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크게 무너지고는 한다. 그러나 무너짐이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으리라.

이것은 무너졌던 이의 이야기이다.

어릴 때는 잘 걷지 못하여 무너지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법을 배운다.

청소년 때에는 작은 무너짐이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느껴지고는 하는데,

이것은 약속할 수 있다.

그보다 더한 무너짐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대의 무너짐은 끝나지 않는다.

가족과의 관계, 이별의 고통, 시험의 고통, 사람과의 관계 등이 그대를 괴롭힐 것이다.

어떻게 다시 일어나느냐에 따라 다음의 무너짐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갔을 때 마주하는 무너짐은 너무나 다양하다.

또다시 가족과의 관계, 이별의 고통, 시험의 고통, 사람과의 관계 등이 그대를 괴롭힐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의 무너짐은 어릴 때 무너지는 것과 많이 다를 것이다.

말은 똑같은데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

그것은 이제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이 왔기 때문이다.

‘책임감’ 이것은 청소년기와는 다르게 사회의 일원으로서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기에

그대가 견디지 못한다면 또한 무너지리라.

그렇게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다하다 보면 어느새 어른이라는 반열에 오르게 된다.

여기서부터 무너짐의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가족과의 관계, 이별의 고통, 사람과의 관계, 자금의 문제, 사기 등이 그대를 괴롭힐 것이다.

이것 또한 성인 때와는 다를 것이다. 선택하고 책임을 다하지만 이제 짊어지는 무게가 다르기에

그대는 수없이 무너졌고 일어났으며 다시 또 무너짐으로 점점 감정이 무뎌지고 일어나는 게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점점 완전히 무너진다.

어른이 되면서 느끼는 감각 중에 가장 지옥 같은 감정은 ‘실패’이다.

내가 실패했다.

내가 하지 못했다.

내가 어리석었다.

내가 잘못 살았다.

등등의 감정이 그대를 덮칠 것이다.

그렇게 무너졌을 때는 다시 일어나기가 너무나 두려워진다.

상황을 회피하기도 하고 남 탓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자책하며 무너진다.

그렇다. 스스로가 선택한 책임과 인생이었기에 거짓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른의 무너짐은 보다 처참하다 볼 수 있다.

정신과를 가서 상담과 약 처방을 받기도 하고 신앙심으로 기도를 하기도 하며 어찌저찌 오늘이 내일이 되니 그저 살아가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저 살아가는 행위’

이 문장이 와닿는다면 그대는 필히 무너진 사람이리라.

나는 그래서 어떻게 다시 일어서야 하는가에 대해서 쓰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기에,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닿지 않을 수 있기에.

그저 숨만 쉬고 처참히 무너진 이에게 신앙심으로 기도해 보아라,

어릴 때처럼 다시 일어서보아라라고 어떻게 그 사람 앞에서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대의 무너짐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으나 먼저 무너진 이가 여기 함께 있으니 하루하루를 숨만이라도 쉬어라고. 그렇게 무너짐이 무뎌질 때에 무감정으로라도 삶을 이어 갈 수 있으리라.

죽음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것은 무너진 자의 고백이기도 하다.

모든 것에서 무너지고 바닥을 기었을 때 누구도 도와줄 수 없었고 도와주는 손길 한 번 없었으며

지금도 그저 살아가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그대여, 혼자 무너진 그대여.

여기에 먼저 무너진 자가 있으니 나는 그런 그대에게 말하고 싶다.

그대의 무너짐은 언제고 자유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너진 자유 속에서 삶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실패’가

‘포기’가 되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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