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하루, 나에게 선물하는 한 잔

킬리카눈 더래키 (Kilikanoon The Lackey Shiraz)

by 그리니

유독 지친 날이 있다.

터덜터덜 지친 발걸음

낡은 구두

하루종일 애썼으나

무엇 하나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기운 빠지는 날.

오늘은 혼술 한 잔 해야겠다.


킬리카눈 더래키 쉬라즈 (Kilikanoon The Lackey Shiraz) 2019

계획없이 마주했으나

열자마자 과실향이 가득 느껴져

기분이 좋아졌다.

부드러운 산미와 잔잔한 탄닌

과일 향이 나지만 그렇다고 달콤함 와인은 아니다.

무게감이 꽤 있다.

블랙베리와 다크초코

스모키한 오크..


향이 강한 한식과 잘 어울린다기에

오늘 메뉴는 치킨과 골뱅이다.

나는 그릇을 참 좋아한다.

빵 한 조각을 먹어도, 배달음식을 먹어도

절대 그대로 먹는 법이 없고

꼭 어울리는 그릇을 찾아서 예쁘게 담아 먹는 편이다.

그런 내가 치킨을 박스에서 꺼낼 기운도 없었나 싶게

대충 차려먹은 느낌.


도수가 있고 무게감이 있다 보니

역시 강한 음식들과도 잘 어울렸다.

다음에는 스테이크와 함께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특별한 계획 없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날

혼자 가볍게 즐기기에 적당했다.

심지어 가격대를 생각한다면 훌륭했다.


노동자의 술

나의 노동주.



킬리카눈 더래키 쉬라즈 (Kilikanoon The Lackey Shiraz)

종류: 레드와인

생산국: 호주

생산지: 남호주 킬리카눈

품종: Shiraz 100%

ALC: 14.5%

구입처: 이마트

가격: 1만원대 후반


'래키(Lackey)'는 하인을 뜻합니다. 호주에서 래키는 열심히 일하지만 그들의 가치만큼 대가를 지불 받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와이너리에서는 '가격 대비 훌륭한 와인'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 같습니다. 더 래키는 킬리카눈의 엔트리급 와인이기도 하니까요. 가성비 있는 노동자라니.. 참으로 슬픈 이야기네요.


1997년에 설립된 킬리카눈(Kilikanoon)은 호주 남부 클리어 밸리(Clare Valley)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클리어 밸리의 떼루아 특성을 잘 표현하여 파워풀하고 우아한 와인을 만드는 데 목적을 두고 다양한 라인업의 와인들을 생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데일리 급으로 킬러맨즈런 시리즈가 있습니다. 킬리카눈에는 1860년에 심어진 포도나무가 900그루나 있는데 지금도 그 포도를 수확하고 있다고 합니다. 와인 메이커인 케빈 미첼(Kevin Mitchell)은 클리어 밸리에서 와인을 만든지 100년된 집안 태생이라고 하니, 브랜드는 어리지만 역사와 전통을 지닌 와인메이커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쉬라즈(Shiraz)=호주 와인 이라고 생각했는데 원래는 프랑스 남부 품종인 시라(Shrah)에서 왔다고 하네요. 그래서 시라, 쉬라즈 두 가지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은가봅니다. 쉬라즈는 프랑스 남부 품종이기는 하나 호주의 다양한 토양과 기후에 적응해서 성공적으로 자리잡아 호주의 대표 품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시라(Shrah)는 산미와 스파이시한 느낌이 강하고 호주의 쉬라즈(Shiraz)는 볼드하고 스윗한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호주 쉬라즈가 인기있는 것 같아요.


'래키(Lackey)' 라는 슬픈 이름에

지쳐있는 듯한 레이블을 하고 있지만

열자마자 환한 과일향으로 반겨주는 이 녀석은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참으로 짠한 느낌이네요.


꽤나 묵직하고 바디감 있음에도

거부감 없는 과일향과 적당한 산미의 밸런스는

부담스럽지 않고 캐주얼한 혼술에

함께하기 좋은 와인인 것 같습니다.


일주일 중 가장 기운 없는 날은

바로 목요일인 것 같아요.

할만큼 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남았다니..

하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보아요

주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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