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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소 May 03. 2024

나를 찾아 떠난 여행

번아웃, 여행이 답이 될 수 있을까.

나를 찾아 떠난 여행 vs 도피로서의 여행


떠난 이유는 명확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야만 했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언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져야만 했다. 한국에 있으면 아무래도 조급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들을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방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나' 뿐이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될 자유를 갖고 싶었다. 아무도 나의 나이를, 직업을 모르는 상황은 나에 대해 생각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일단은 현실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발리로 떠났다.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외국인과 함께 요가 수업 듣기, 서핑 배우기, 마사지받기, 인스타그래머블한 관광 투어 다녀오기, 혼자 카페 가서 책 읽기 등. 그동안 여러 여건과 마음적인 여유, 시간적인 상황 등으로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최소한의 일만 하면서 나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의 일이 나에게 잘 맞는지, 맞지 않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일을 통해 바라는 최종 목적지는 무엇인지 등 ‘일’과 관련한 나의 생각과 목표에 대해 돌아보고 싶었다.


또한 ‘나’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불편한 상황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늘 상대에게 의견에 맞추는 편이었다. 덕분에 부드럽고 유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질문을 받으면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나의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이 익숙했기에 개인적인 취향이랄 게 딱히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나는 언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지?’, ‘나는 정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등의 가벼운 질문에도 확실하게 답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발리로 떠나오고 나서야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스물아홉과 서른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20대에는 꿈이라는 것이 있었고, 아직은 시간도, 가능성도 많다는 기대감 혹은 안도감이 있었다. 하지만 서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내가 생각할 때 서른이면 뭔가 이미 인생에서 많은 것을 이루고, 안정된 삶을 살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불완전했다. 그런 막막함 속에서 떠났던 여행은 사실 '도피로서의 쉼'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에 떠난 것이었다. 일상을 벗어나 돌아왔을 때, 어느 정도 해결되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법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즐겁고 행복했던 발리에서의 기억들로 현실이 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행은 그 자체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여행이 결코 우리의 일상이 아니기에. 여행을 다녀온 뒤, 진짜 우리의 삶이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가 여행에 환호하는 이유는 일상을 떠나 비일상의 시간을 피부로, 온몸으로 생생하게 직접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얼마나 오래 떠나 있든 우리는 결국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곳에는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역할들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내가 만들어온 작고 귀여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삶의 양면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예측하지 못한 사건사고는 계속 터질 것이고, 업무 스트레스는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장기간의 휴가를 갖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했다. 고작해야 2박 3일 혹은 4박 5일의 휴식이 가능하겠지. 그렇다고 휴가만을 기다리며 매 순간을 참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나는 여행을 통해 진정 어떤 변화를 원했던 것일까. 한 달만으로 나의 삶이 달라지길 기대했던 것일까. 여행을 할 때는 즐겁고 행복했는데 왜 돌아와서는 오히려 우울해지거나 슬퍼졌던 것일까. 좋은 쉼이었다면 회복하고 돌아와서도 여전히 기분이 좋거나 이전보다 더 긍정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어떤 것이 좋은 쉼인지, 쉼이란 어때야 하는지, 일상에서 잘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기 시작했다. 행복하고 즐거운 미래를 상상하며 현실을 희생시키는 방법은 지금까지 줄곧 해온 방법이었다. 이제는 다른 방법을 써야 할 때다. 그렇게 나는 매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회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하나씩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원하는 미래를 그려가면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 이곳에서도 행복하고 싶었다. 그렇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하나씩 던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일상에서 보다 만족감을 갖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일에서 주도권을 갖고 성취해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계속 성장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한 삶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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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이어 보기> 나만의 중심을 잡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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