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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소 Apr 26. 2024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

앞만 보고 달린 결과, 번아웃이라니.

나는 잘 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쉬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혹시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굳이 또 할 일을 찾아내 채워 넣곤 했다. 휴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휴식은 항상 뒷전으로 밀리곤 했다. 오히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들 속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 말이다. 어쩌면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을 잘 쓰지 못하는  것 같고, 뒤처지는 것 같고, 생산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를 압박 속에 계속 밀어 넣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나는 잘하고 있는 거라는 이상한 위로를 하곤 했다.


한때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라는 단어가 국내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워라밸은 개인의 일과 생활이 균형을 유지하는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일을 해오면서 '과연 워라밸이 가능한 것인지' 늘 의문을 품어왔다. 제대로 쉴 줄 몰랐던 나는 일을 시작하고 일정한 목표를 이룰 때까지 즐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에 계속 열심히 해야 한다며 나를 몰아세웠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현재는 늘 열심히 해야 할 때였다. 살면서 미래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는 한순간도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나의 목표에 미치지 못했고, 그래서 현재를 즐길 수가 없었다.


일이 늘 우선순위였던 나는 친구와의 약속, 가족과의 만남, 주말의 휴식조차 반납한 지 여러 해였다. 쉬는 날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주말까지 일하는 것이 기본이었고, 더 이상 체력적으로 심적으로 버티기 힘들 때가 오면 쉬곤 했다. 모두들 주말의 계획을 세우고, 당연하듯이 주말의 일정을 물어볼 때면 마음속 한편이 답답하고 속상했다. 물론 나도 규칙적으로 쉬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감의 압박에 일을 내려놓기가 불안했고, 잠시 쉬고 오면 밀려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인해 무리되는 일정을 소화하곤 했다.


쉬지 못하고 계속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음먹고 쉬려고 하더라도 핑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쉬면 뒤쳐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쉼을 즐기지 못하도록 막는 여러 이유들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이러한 생각이 만성적이 되다 보니 일 외의 것은 다 귀찮게 여겨지고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집안일도 귀찮고, 요리하는 것도 귀찮고, 가족 행사들은 왜 이렇게 자주 돌아오는지.. 때로는 관계마저 소원해지기도 했다. 분명 일만이 인생의 목표는 아닌데 이상하게 일에만 매몰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워라밸은 무슨.. 일만 있는 삶 같은데..’ 마음이 자꾸만 불만을 토로했다.


그제야 나는 찬찬히 나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일 때문에 인생의 다른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활을 위한 일은 필요하지만 너무 과도한 건 아닐까?’, ‘왜 나는 쉬지 못하는 걸까?’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나의 마음은 계속 무언가에 쫓기는 듯했다. 캘린더에는 늘 해야 할 일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고, 해야 할 일, 친구들과의 약속까지도 모두 철저한 계획하에 움직였다. 계획이 있어야 안심이 되었고, 모든 것에는 이유와 의미가 있어야 했다. 그래야 마음이 안정되고 일상이 정돈된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달려온 덕분에 나의 20대 후반은 겉으로 보기엔 꽤나 성공적인 길로 진입하고 있는 듯 보였다. 삼성동으로 사무실을 이동했고, 빌딩숲이 하늘로 드높게 솟아있는 테헤란로가 불과 몇 분 거리에 있었다. 24시간 카페가 즐비한 강남역 주변을 낮이고, 밤이고 원할 때 마음껏 활보하고 다녔다. 테헤란로를 따라 빌딩숲을 산책하는 것은 나에게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나는 중간 관리자로 일하며 사업을 키워가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전보다 조금 나아졌을 뿐, 주변의 성공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노력하고 잘해온 나를 칭찬해 주기보다 ‘다음 목표를 향해 뛰어야겠군..’이라고 말하며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쳇바퀴 같은 일상으로 나를 데려갔다.



소규모 집단에서 중간관리자의 역할은 생각보다 외로운 자리였다. 나의 고민이나 어려움은 나누기 어려웠고 대표와 팀원과의 관계, 회사와 거래처와의 관계를 늘 우선해야 했다. 나를 돌보기보다는 늘 타인의 요구와 필요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나는 뒤늦게서야 나를 희생자의 입장에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지금 희생해서 일하는 거고,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은 일까지 떠맡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더 편하게 일하는 것이라고. 그만큼 내가 짐을 더 많이 지고 있는 거라고. 여기에 부모님들의 기대 또한 은근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런 기대에 부흥하려면 더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데.. 사회가 요구하는 기대, 자식으로서의 기대, 그리고 의무처럼 따라오는 수많은 역할들에 잠식할 것 같았다.


이런 태도는 나의 컨디션이 괜찮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마음에 불만이 누적되었을 땐 서운함과 서러움이 폭발했다. 마음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억울함과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최악인 것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나는 의미가 없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결국 자존감의 하락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런 격동의 시기를 수차례 겪고 나는 결국 번아웃을 겪었다. 더 이상 마음이 움직이기 싫다고, 이해하기 싫다고 파업을 선언했다. ‘왜 나만 계속 열심히 해야 하냐고. 그래봤자 누가 인정해 주냐고. 나는 도대체 언제 즐길 수 있는 거냐고.' 더 이상 버티기 싫다며 두 손 두 발 다 들고 드러누웠다.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고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하루하루의 고단한 일상, 끊임없는 스트레스, 그리고 인간관계 문제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반복될수록 나는 지쳐갔다. 겉보기에는 잘 살아가는 듯 보였을지 모르지만 사실 마음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완전히 엉망이었다. 불안함과 두려움, 답답함과 좌절감에 압도되어 갔지만 쉴 수가 없었고, 계속 나를 쥐어짜내며 문.자.그.대.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만 했다. 그 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마음속의 분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고, 예상하지 못한 때에 수시로 찾아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도에 국제질병분류의 직업 관련 현상에 ‘번아웃'을 포함시켰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2018년에는 '케렌시아'(Querencia: 피난처, 안식처, 귀소본능이라는 뜻으로 집처럼 편안하고 안전한 곳을 뜻하는 스페인어), 2019년에는 '슈필라움'(Spilaum: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나만의 놀이 공간을 뜻하는 독일어), 2020년에는 '오티움'(직장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휴식을 즐기는 것을 강조하는 라틴어) 등 꾸준히 휴식과 관련한 새로운 용어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쉼이 자연스럽기보다는 쉬는 것 또한 시간을 내고 배워야 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다행인 것은 번아웃에 지치지 않는 일상회복력 기르기 위해 우리는 잘 쉬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배워야만 한다.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적은 바로 우리 내면에 있다. 우리는 충분히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서도 일 때문에 많은 것들을 포기한다. 목표치까지 일단 달성하고 보자는 식이다. 하지만 그런 목표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고, 우리의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을 공들여야 할 수도 있다. 이런 결정은 지금의 삶을 살지 못하고 행복을 먼 미래인 언젠가의 영역으로 미루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스스로를 끝없는 고통으로 밀어붙일 뿐이다. 엄청난 노력 끝에 원하는 결과를 얻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당신도 알 것이다. 결과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서 최선의 준비를 하고 대비하는 것뿐이다.


우리를 변화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두려움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자. 단지 우리 머릿속에서 예전의 경험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신념들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이다. 실제로 예측 가능한 일들이라면 계획을 세우고 대비하면 된다. 우리의 통제밖에 있는 일들로 지레짐작 겁먹을 필요는 없다. 지나고 나면 우리를 괴롭혔던 걱정거리들은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당장 지난달에 걱정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나는가? 정말 당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상황이 나빠졌는가? 잠시 생각해 보자.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의 삶을 사랑한다. 결코 우리의 삶이 나빠지도록 두지 않는다. 그러니 나를 좀 더 신뢰해 보자. 나를 믿고 진정 내가 원하는 삶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보자. 내면에 방해꾼이 있는 경우에는 보다 적극적인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은 우리에게 쉴 시간을 주지 않는다.
쉬는 시간은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알렉스 수정 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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