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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유니 Jun 28. 2024

Bravo My life !

Bravo Your Life !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길, 

"자식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

한번쯤은, 이런 속언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식을 농사에 비교하여 이야기하는게 과장된 부분이기도 하지만 옛날 어르신들이 빗대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편하면서도 심오한 뜻이 담겨 있으리라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10달동안 뱃속에 품으며 각오를 하게 된다. 

내 아이 만큼은 정말 잘키워야지! 

내가 못했던 것들을 누리게 해줘야지! 

자식에 대한 애정은 변해가는 사회문화적 분위기에 따라 양상이 변형되기도 하지만 마음만은 같은 형상에서 출발하는것 같다. 


몇일전 일이다. 

둘째인 아들이 유치원 하원을 하고 와서는 대뜸 이야기를 꺼낸다. 

아들: 엄마! 나 오늘 친구랑 5시에 만나기로 했어요! 

엄마: 머라구? 5시? 5시면 엄마는 너희들 저녁 준비도 해야해! 그리고 누나의 숙제풀이도 봐줘야 하고!

아들: 싫어요! 나도 친구랑 만나서 놀고 싶단 말이예요!

엄마: 어디서 만나기로 했니?

아들: 친구네 아빠 가게에서요!

엄마: 머라고? 친구 아빠가 일하시는 가게에서 보기로 했다는거야!?

아들: 왜요? 않돼요?

엄마: 그럼! 당연하지! 친구 아빠가 일하는 곳은 아빠가 업을 하시는 곳인데 어떻게 거기서 놀 수 가 있겠니?!

아들: 친구가 태권도 끝나고 아빠 가게로 5시에 온다고 거시서 만나기로 했단 말예요!

엄마: 않돼! 놀이터에서 따로 만나기로 한거면 엄마가 그 놀이터로 가서 만나게 해줄 수 있지만 아빠가 일하는 곳에 우리가 가면 친구 아빠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야!

아들: 그게 무슨말이예요? 왜 아빠한테 우리가 피해를 줘요? 친구랑 만나기로 약속했단 말이예요!

엄마: 너는 엄마한테 허락도 받지 않고 막무가내로 친구랑 약속을 하면 어떻게 하니!

아들: 엄마 미워요! 누나는 친구들 만나게 생일파티까지 초대 했으면서 왜 나는 않되는건데요! 저두 친구랑 따로 만나고 싶단 말이예요!

엄마: oo 아! 너 정말! 그렇게 니맘대로 할꺼야?!


아이들을 잘 키워보자는 각오는 고사하고 

찰나의 감정조차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체 감정적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일이 다반사다. 아들과 대화하는 짧은 순간에도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가며 상호적인 대화를 이어가기는 커녕 버럭 화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먼저 때어난 큰 아이인 딸에게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첫 아이라 잘 키워보자는 욕심이 크기도 했다. 호기심 가득하고 체력이 왕성한 아들 같았던 딸을 키우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리고 결국, 큰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얻은 건 우울증 뿐 이었다. 무슨일이든 늘 아이가 우선순위가 되었기에 내 자신을 없었다. 아이를 잘 키워 보자는 각오는 어느새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서 툭하면 눈물을 흘렸다. 널뀌기 하듯 널뛰는 감정들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불안해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둘째인 아들을 임신했고, 나의 정서적 불안과 우울증은 날로 심해져만 갔다. 이유를 알지도 못한체 남편과의 대화는 늘 싸움으로 끝났다. 


큰 아이인 딸이 어느정도 성장한 이후에도 우울증은 계속 있었지만, 아이를 잘 키워보자는 나의 집착은 멈추지 않았다. 모든 스케줄을 아이에게 맞추어 일상을 보냈고, 아이 친구의 엄마가 유일하게 만나는 지인들이었으며, 일부러 아이들이 함께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자 집으로 큰아이 친구들을 초대하는 일도 많았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결국, 큰아이를 위해 공들였던 시간. 돈. 인간관계는 모두 끝이 났다.(지금까지도 잘 지내는 이웃 관계도 있지만 일부에 속한다.) 그때는 처음 아이를 키웠던 거라 모든일에 미숙했다. 엄마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도 쉽지가 않았다. 내가 기준이 되어 만났던 인간관계가 아닌, 큰아이가 기준이 되어 맺었던 인간관계를 무탈하게 유지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 싸움 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아이를 잘 키워보자는 각오하나로 나는 많은걸 잃었다. 내 자신조차도.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런 성장통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게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운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아이로 부터 독립을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딸을 키웠을 때보다 아들의 교유관계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 않은게 사실이다. 올해 7살이 아들은 자신의 주장이 강해지고 있다.(미운 7살ㅋ) 때문인지 과거 엄마에게 서운했던 일들을 우연한 계기를 통해 불쑥불쑥 내뱉을 때가 있다. 누나와의 비교를 통해 본인이 서운하게 느끼는 점들을 가끔 토로하는 것이다. 그럴땐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하고, 아이도 나도 서로 만족할 만한 합의점을 찾는다. 물론 아직은 부족한 어른이자 엄마이다.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할때도 많다. 그럴때마다 반성을 한다. 그리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다. 큰아이때처럼 모든걸 아이에게 맞추지 않는다. 큰아이 키울때와는 방향성이 다른 육아방식으로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큰아이에게도 이렇게 한다. 

자식농사 참 어렵다. 하지만 조금씩 수정해 가고 방법을 찾아가다 보면 아이도 나도 잘 성장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고 있다. 미숙한 부분이 아직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성장하고 있다. 


" 자식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 는 속언을 

" 내 자신의 농사부터 잘 지어야 한다" 로 바꾸면 어떨까 싶다. 


Brove My Life !

Brove Your Life !

For everyone's Lif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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