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어떤 위기나 난관에 부딪혔을때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이 두려움의 감정이 증폭될수록 몸과 마음은 불안정한 상태가 되고 결국, 스스로 도출하는 합리적 비판에 의해 게으름 이라는 감정을 유발시켜 나태한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어떤 위기나 난관이 없어도 두려움과 게으름 사이의 감정을 수도 없이 오가는 나날들이 많다. 거의 하루 걸러 하루 느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나에겐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그렇다. 나만 엄마인것도 아니고 나만 남매를 키우는 것도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 생각과 반대의 결과가 나올때가 그렇다. 최선을 다해서 돌보았는데 느닷없이 아이가 아프거나, 내가 바라는 아이의 이상적인 모습과 실제 아이가 반대의 행동을 하게되면 이제까지 난 머했나? 싶을 정도로 회의감과 무기력감이 든다.
그리고 가장 힘든건 내 몸 하나 온전히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다. 내가 하고싶은 것과 돌봄 노동 사이에서 적정선을 타협하거나 또는 엄청난 자기조절력이 필요하다. (새벽기상을 한다거나 아이들이 잠들고 난 뒤 따로 시간을 갖는 등) 여느때는 아예 돌봄노동에 올인해야할 때가 많다. 그렇게 내 이상향과 현실의 괴리감에 빠져 내 감정에 몸과 정신이 동요되고 만다. 그렇게 수도 없이 두려움과 게으름 사이를 오고가는 줄다리기를 할때가 많다.
'내가 무슨 일을 하겠다고, 아이나 잘 키워야지.'
'아니야. 아직 늦지 않았어. 될때까지 해보자.'
'그런데 얼마나 더 어떻게 해야 지금의 나를 이겨내고 성장 할 수 있을까?'
'역시 난 못해, 그냥 포기하자.'
'그래도 해보자. 늦어도 끝까지 포기하지는 말자.'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지만 정말 열심히 살아왔던 걸까?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감정에 동요되어 최선을 다했다고 착각 하는 건 아닐까?
나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의 기준을 세웠던건 아닐까? 내려놓고 나를 좀 더 유연하게 대해 보자.
결국, 내가 도출해 낸 결과값은 정말 내가 원하는것, 내가 잘 할 수 있는것, 힘들지만 그래도 즐거운 것 을 쫒아보자 였다.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마음의 울림에 다시한번 귀 귀울여 보기로 했던 것 이다.
그러니까 '포기 '가 아니라 '잠시 부재중' 입니다 라고...
<에필로그>
백영옥 에세이: 빨간머리 앤이 하는말
심리학에는 '행복의 평균값'이란 용어가 있는데, 이 말은 인간의 행복이 적정선을 넘어서면 더 이상 증폭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행복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중에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것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우리가 의도적으로 해야 할 것은 '뭔가 하기 위해' 달리는게 아니라, '뭔가 하지 않기 위해' 때때로 멈춰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