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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유니 Jun 21. 2024

희망고문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희망고문' ? 그리고 '소명'

'희망'

쫒아내려 해도 절대로 쫒아내어 지지가 않는 내 맘 속 언저리에 내 허락도 없이 걸터 앉은 녀석이다.

이 녀석은 아주 성질이 고약해서 아무런 댓가 없이 무엇인가를 내어주질 않는다.

어둠이 지는 밤이 될즈음 노을이 지는 아름다움을 감상할 틈도 없이, 날카로운 얼굴을 들고 나를 찾아온다.


'고문'

사시미로 생선을 포떠서 저미듯 1초에 망설임도 없이 그리고 아주 느리지만 정확하고 날렵하게 내 마음을 저며버린다.

나는 이 녀석에게 방어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문을 당한다. 어장속에 생선이 살아남기 위해 팔딱팔딱 온힘을 다해 발악을 해보지만 어림도 없다.


'매일'

나의 '희망'은  온갖 '고문'을 당한뒤 달빛을 향해 처절한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걸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건 무엇일까?

나는 지금 어디쯤 도착해 있을까?

이렇게 해서 내가 얻는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렇게 해서 내가 잃는 것은 무엇일까?


그럴때 마다 나는 내가 태어난 이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에서 내가 풀어나가야 할 '소명' 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명이란?: 나의 달란트와 세상이 필요로 하는 교차점이 나의 소명이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것일까?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알지 못한채 그저 성질 고약한 '희망'이라는 녀석의 발길을 저 만치 물러 뒷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녀석을 따라가는 길이 어디쯤에 도달해 있는지, 그리고 길의 끝은 어디인지, 끝이 있기나 한건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불을 보면 맹목적으로 뛰어드는 불나방도 아니고 (불나방은 오히려 용기가 가상하다. 자신의 모든것을 바처 불에 뛰어들 수 있기때문에) 거북이 처럼 느리더라도 꾸준함을 잃지않는 성실한 근성또한 없다.


어느날 우연히,

명강사 김창옥 선생님의 강의를 유투브로 들었던 적이 있다. 김창옥 강사는 말한다. 열장과 권태는 똑같은 특징이 있다고 한다. 열정도 권태도 꾸준히 지속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고자함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계단 처럼 오르고 내리는 곡선을 그리지만 그 그래프는 우상향 곡선을 그린다고 한다. (경제지표를 보신적이 있다면 조금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프가 오르고 내리는 지점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 그래프는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린다.)


열정도, 각오도, 포기도 이제 나에게는 중요치 않다. 그저 길을 걷다 지치면 잠시 벤치에 앉아서, '희망' 이녀석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그 뒤를 따르는 내 발자국이 어디쯤 도달해 있는지 확인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늘 '희망고문'을 당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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